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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유라시아 특급 열차를 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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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11-14 22:14:58 수정 : 2013-11-14 22:3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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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이익 창출 위한 새 전기 마련
북핵 반대·한반도 평화 지지 확보
톨스토이, 닥터지바고, 연해주와 고려인 그리고 고르바초프에 이르기까지 러시아를 떠올릴 때면 우리 마음속에는 끝없는 설원에서 펼쳐지는 예기치 못한 사건과 때로는 그 사건이 역사적 숙명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구소련과 러시아는 정치적으로 언제나 우리 주변을 맴도는 가까운 나라였지만 동시에 지리적으로는 선뜻 셈이 잘 되지 않는 먼 이국이었다. 그나마 나이 든 세대에게 구소련은 한반도의 운명에 깊숙이 파고든 잊을 수 없는 나라였지만 젊은 세대에게 러시아는 잠시 이런저런 외교관계 사실을 따져봐야만 구체적인 관계설정이 가능한 조금은 이질적인 문명의 대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20여년 동안의 탈냉전기 역사에서 러시아는 과거 세계 초강대국의 지위에서 자연스럽게 내려와 유럽국가로서의 정체성을 차곡차곡 쌓아왔던 것이 사실이다.

미국과의 냉전 대결에서의 패배, 15개 독립국가연합으로 쪼개진 총체적인 국력의 감소,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한 국제정치적 발언권의 약화, 이런 객관적인 조건이 러시아가 걸어온 지난 20년간의 현실이다. 그랬던 러시아가 돌아오고 있다. 글로벌 에너지 수급불균형으로 많은 이익이 발생했고, 유럽국가와의 관계설정이 대체로 안정적인 국면으로 접어들게 됐다. 더욱이 작년 4월 푸틴 대통령 재집권 이후 지난 20년간의 유럽국가적 정체성에서 다시금 탈피해 세계 핵심 국가로서 재도약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박근혜정부가 집권 이후 한국을 방문하는 첫 4강 국가지도자로 푸틴 대통령을 택했다는 점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풍부한 전략적 고려가 깔려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전략적 고려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새로운 유라시아 시대를 맞이해 한·러가 다양하고 호혜적인 국가이익을 창출해 보자는 것이다.

이번 한·러 두 정상이 공동선언문에서 강조한 합의사항 중 특히 두 가지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우선 경제적인 실익을 확실히 다졌다는 점이다. 우리 정부는 푸틴 대통령의 러시아가 야심차게 내세우는 ‘신극동전략 2025’를 전략적으로 충분히 활용한 측면이 인정된다. 나진·하산 프로젝트 참여에서 기대되는 향후 경제적 효과를 포함해 북극해 개발에 따른 각종 공동사업, 액화천연가스(LNG)선 발주 및 극동지역 항만개발 사업 등이 모두 현실화한다면 실로 막대한 이익이 기대된다. 물론 외교관계의 모든 관행이 그렇듯 양 정상이 합의한 사안을 어떻게 현실적으로 구현하느냐의 문제는 글로벌 경제전쟁에 참여하는 우리의 다양한 구성원의 의지와 역량에 달려 있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국제정치학
두 번째로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한 러시아의 확답을 분명하게 받아냈다는 점이다. 북한 문제는 우리 문제이면서 동시에 국제사회의 문제이다. 북핵문제에 대한 러시아의 단호한 입장과 한반도문제 해결을 위한 평화로운 노력의 지지는 결과적으로 박근혜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대한 분명한 성원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성과는 궁극적으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동북아평화협력구상’ 그리고 ‘유라시아이니셔티브’가 서로 조화를 이루며 연계되는 과정에서 한반도와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를 지지하는 국제사회의 목소리를 확산해 나가는 의미 있는 결실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세계 초강대국에 둘러싸인 우리의 지정학적 조건은 우리나라의 유전자(DNA)와 같은 거부할 수 없는 숙명적 현실이다. 때로는 ‘숙명’이라는 단어가 조금은 엄숙하고 무겁게 받아들여지기도 하지만 결국은 우리가 극복하고 긍정적인 미래로 전환해야 할 숙제와 같은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푸틴 대통령의 방한을 계기로 박근혜정부의 집권 첫해 외교구상과 전략이 서서히 마무리되고 있다. 머지않은 미래에 부산을 출발하는 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와 영화 닥터지바고 속의 끝없는 백야(白夜)를 여행할 날을 꿈꿔본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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