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장 ‘낙하산인사’부터 없애야 우리나라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이명박 전 대통령이 공기업 선진화를 공약으로 내걸고 취임 초 공기업 민영화와 구조개혁을 단행하려 했으나 강력한 공기업 노조의 반발로 무산되기도 했다. 그 결과 295개 공공기관 부채가 지난해 말 493조원에 이르렀다. 여기에 지방공기업 부채를 합하면 부채규모는 573조원이나 돼 한국경제의 또 하나의 뇌관이 되고 있다. 부채가 이렇게 많으니 지난해 30대 공공기관이 지불한 이자비용만 7조원에 달했던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서도 아직도 일부 공기업에서는 퇴직금 누진제가 남아 있고, 적자에도 불구하고 성과급이 지급되고, 임금도 인상돼 온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게다가 일자리 대물림까지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도를 넘은 공기업의 도덕적 해이가 세간의 지탄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의 청년실업률은 7%를 넘고 대학을 졸업해도 좋은 일자리 갖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운 실정이다. 그런데 ‘신의 직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임금·복지·근로조건·고용안정 면에서 우수한 공공기관이 직원들에게 일자리를 대물림할 수 있도록 특혜를 주고 있다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는 많은 청년들로서는 큰 좌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전국 65개 공공기관은 단체협약에 고용세습을 명시하고 있고 11곳은 인사규정에 슬그머니 자녀특채를 규정해 놓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단체협약이나 규정에 따라 강원랜드 등에서 22명이 실제로 채용돼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현대판 음서 제도라고 할 만하다.
민영화나 구조조정으로 부채를 줄이기는커녕 방만 경영과 도덕적 해이가 이처럼 기승을 부리는 가장 큰 이유는 감독당국이나 정치권의 낙하산인사가 문제다. 낙하산인사로 내려가면 가장 먼저 노조의 출근저지투쟁에 직면하게 되고 부득이하게 적당히 타협하고 출근하는 과정에서 구조조정은 공염불이 되고 과도한 노조의 주장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얼마 전 구조조정이 필요한 기관으로 내려간 어느 낙하산인사는 출근하자마자 구조조정은 없다고 공언하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현재 공공기관의 80% 내외의 기관장이 낙하산인사인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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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근 전 고려대교수·아시아금융학회장 |
일자리 대물림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낙하산인사를 근절해야 한다. 낙하산이 아니라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아무런 거리낌없이 당당히 노조와의 협상을 통해 일자리 대물림 같은 잘못된 단체협약이나 인사규정을 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감독당국의 인사가 피감독기관으로 내려가는 경우 감독이 제대로 될 수 없다. 낙하산인사로 찍혀 출근날부터 저지를 받고 구조조정은 없다고 합의하며 감독마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음으로써 공공기관은 방만하게 운영되고 그 결과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것이다. 감독당국의 인사가 피감독기관으로 내려가지 않으면 자연히 피감독기관에 대한 규제도 완화된다. 감독당국으로서는 실익도 없는 규제에 집착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경영자가 되고 규제도 완화되면 공공기관의 효율성도 그만큼 높아져 부채도 줄어들게 될 것이다.
오정근 전 고려대교수·아시아금융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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