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풀러턴 캠퍼스에서 도예에 입문한다. 하지만, 자꾸 한국에 끌렸다. 4학년 때 무작정 경기도 이천 등지를 찾았다. 한국의 전통자기를 배우기 위해서다. 그리곤 한국에 머물기 위해 홍익대에 편입을 한다. 28일부터 11월17일까지 이천을 중심으로 여주, 광주에서 열리는 ‘2013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 전시감독을 맡은 홍익대 도예유리과 이인진(56) 교수의 이야기다.
그는 대학원을 졸업한 후엔 일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장작가마 안에서 타는 나무의 재가 유약을 대신하는 소성을 공부하기 위해서다. 유약을 바르지 않고 일주일이나 열흘간 불을 지펴 구워내는 방식이다. 오래 불을 때서 재가 기물에 붙어 유약 역할을 하게 된다. 신라 토기의 영향을 받은 오카야마 비젠지역의 후지와라 유 도방에서 오래전의 우리 전통을 배운 것이다.
“유약으로는 커버할 수 없는 맛이 있어요. 거칠지만 자유로운 질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는 다시 중국 제1의 요업도시 징더전(景德鎭)으로 떠난다. 한·중·일의 도자문화를 섭렵하기 위해서다. 시안(西安) 병마용 조사가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그의 여정은 결국 우리 전통 찾기다. 중국에서 흘러오고 일본으로 흘러간 것들을 중국과 일본에서 다시 발견하고 있는 셈이다.
“전통은 핏속에 스며들어 있는 것이기에 얽매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어느 순간 툭 터져나오게 마련입니다. 세월이 흘러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요. 시대가 변해도 자연은 그다지 크게 변하지 않는 것과 같지요.”
그는 일본의 도자문화를 분명 우리가 배워야 할 대상으로 삼고 있다.
“얼마 전에 뚜껑이 있는 작은 그릇을 일본의 지인에게 선물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바로 김치를 담아 식탁에서 쓰면 좋겠다고 너무 좋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국사람 같았으면 귀엽고 예쁘니깐 장식용으로 대부분 쓰겠다고 했을 겁니다. 쓰임과 조형성이 하나로 조화를 이루는 일본의 도자문화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지요.”
조형작업과 쓰임(생활도자)이 완전히 분리되고, 전통과 현대도자도 양분법으로 가르는 한국의 도자문화를 생각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지난 20여년간 그는 장작가마가 주는 자연의 미감을 살려 흙집인 토우(土宇)를 만들어 왔다. 경기도 안성의 작은마을 일죽에 있는 그의 작업실 주변엔 토우들이 널려져 있다. 비바람에 놓여져 이끼가 피어나기도 하고, 청개구리가 별장 삼아 머무르다 가기도 한다. 자연에 동화되어 자연에 귀의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인공물들이다.
“비바람 속에서 진정한 완결에 이르는 것입니다. 집이지만 집이 아닌 무의미한 것으로 자연의 순리, 무위자연을 표상하고 싶었습니다.”
노자(老子)의 말이 불현듯 스친다. 기준이나 목적의식을 덜고 또 덜어내고, 약화시키고 또 약화시키고 나면 결국 무위의 경지에 이른다고 했다. 무위의 경지란 ‘멋대로’ 하는 상태다. 그러면 안 되는 일이 없다고 했다.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얘기다.
“멋대로 하는 힘은 욕망에서 나옵니다. 이성적 존재가 아니라 욕망의 존재로 살 수 있을 때 거기서 상상력과 창의력이 비로소 움을 틔웁니다.”
그는 오전 6시면 작업실로 들어선다. 숨겨놓은 애인을 만나듯 늘 설레는 마음이다. 자신이 하는 일과 자신의 욕망 사이에 거리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사람은 더 헌신적이고 더 창의적일 수 있다. 윤리적 힘도 바로 거기서 나온다. 그의 모습이 바로 그렇다. 2시간 정도 아침작업을 끝내고 학교로 향하는 것이 그의 일상이다.
고등학교 시절 특별활동으로 레슬링을 했던 그는 상대방 선수를 안아 치듯 흙과 씨름하는 것을 즐긴다. 고됨이 아니라 그저 희열이 있을 뿐이다.
그는 욕망에 충실한 작가다. 그동안 우리는 이성의 신화에 갇혀 욕망을 부정적으로만 받아들여 왔다.
“저는 오직 저에게만 있는 고유한 충동, 힘, 의지, 활동성, 비정형의 감각 등을 욕망으로 부릅니다. 욕망은 차라리 의식 이전의 무의식의 덩어리일 수도 있습니다. 비율에 맞게 계산되기 이전의 종잡을 수 없는 충동 같습니다. 거친 황무지며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의 힘입니다. 자기 자신마저도 알아듣기 힘든 상태로서 아직 언어도 아닌 야생의 어떤 소리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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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인진 교수는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는 한국도자계의 평론, 기획, 국제교류인력을 키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며 “30∼40대 유능한 작가들의 대거 등장과 더불어 국외 러브콜이 이어지는 결실을 가져왔다”고 평가했다. |
“저는 이것들이 인공적인 예술이 아닌 자연의 섭리를 추구하는 예술이기에 더욱 정이 갑니다. 단순하고 소박하지만 검붉은 색과 투박한 기물의 표현들은 제가 작업한 시간만큼 깊이를 더해 줍니다. 흙을 만지며 살아가는 삶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게 해주지요.”
그는 흙과 불의 본질 자체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으로 비슷한 작품을 수없이 반복하여 제작한다. 굽과 전을 변형시키고 형태의 비례를 재구성하면서 새로운 느낌의 기물을 발견해 낸다. 때로는 예리하면서도 섬세한 형태 속에서 자연스러우면서도 친근감 있는 기물들을 얻어내기도 한다.
“흙과 불이 만남으로써 생성되는 독특한 질감과 색상뿐만 아니라 물레에서 빚어지는 다양하고 풍부한 선들을 즐기기 위한 나만의 작업철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작업 중에 갑자기 흙 묻은 손을 쭉 내민다. 영락없는 개구쟁이 모습이다.
“장난이라고 표현할 만큼 흙과 불을 다루는 것은 제겐 묘한 중독입니다. 이 장난에는 반복되는 노동력과 지루하리만큼 긴 시간이 소모되지만 이를 통해 얻어지는 자신감과 새로운 배움의 비전은 오히려 나에게 작업을 계속할 수 있는 활력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도 그는 그 중독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삶이 너그러워지고 편안해지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힘든 노동이 그를 행복한 삶의 길로 인도해 주고 있는 것이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사진=허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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