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함인희칼럼] 세종시의 숨은 고민 ‘생이별 가족’

관련이슈 함인희 칼럼

입력 : 2013-09-15 22:52:14 수정 : 2013-09-15 22:52:14

인쇄 메일 url 공유 - +

교육·생활의 질 고려 홀로 지방행
가족 모두 이주할 여건 조성 시급
추석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이맘때만 되면 며느리 명절 증후군이 단골화제로 등장하곤 했는데 최근 몇 년 사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듯하다. 며느리들 마음속에 시어머니 자리가 없어지면서 고부갈등도 옛말이 돼가고 있다는 소식까지 들려오는 마당이니 세태의 변화가 눈부시기만 하다.

명절 증후군은 우리네만 겪는 현상은 아니다. 서구에서도 명절이 가까워 오면 우울증을 호소하는 이들이 부쩍 늘어가는 현상을 일컬어 명절 증후군이라 부른다. 다만 우울증을 호소하는 이유가 우리네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서구의 명절 증후군은 가족을 둘러싼 일련의 환상으로부터 연유한다. 가족이란 사랑과 평화가 넘치는 애정 공동체여야 마땅한데, 정작 자신의 가족은 서로 갈등하고 틈만 나면 상처를 주고 가족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소원한 관계에 있는 경우, 이상과 현실의 괴리로 인해 심각한 우울증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함께 모인 사람 사이에 친밀하고 화기애애한 대화가 오가면 ‘가족 같은 분위기’라 표현하지만, 정작 자신의 가족끼리는 살갑게 대하지도 않고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는 현실을 일컬어 가족은 ‘문화적 위선’(cultural conspiracy)이라 재치있게 명명한 학자도 있다.

그렇긴 해도 명절은 우리들로 하여금 가족의 가치와 미덕을 되새기도록 함이 분명한데, 요즘 들어 새삼 고민이 깊어가는 가족이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2014년까지 세종시 이전을 완료해야 하는 공무원과 정부출연 연구기관에 근무하는 이들이 그 주인공인데, 만나는 이들마다 곧 닥치게 될 ‘생이별 가족’에 대한 가슴앓이를 호소하곤 한다.

자녀가 학령 전 아동이나 저학년인 경우, 혹은 자녀가 대학생이거나 이미 장성한 경우는 다행히 ‘생이별 가족’을 면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물론 배우자의 적극적 동의와 협조를 전제로 하지만 말이다. 반면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고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경우는 꼼짝없이 ‘생이별 가족’을 감내해야만 한다. 실제로 학령기 자녀 경우는 학년이 높아질수록 전학에 따른 위험 부담이 커지는 만큼, 언감생심 말도 꺼내지 못한 채 가슴앓이를 하는 것이 요즘 공무원들의 솔직한 속내라는 게다.

세종시 현장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론 이미 아파트를 분양받은 공무원들이 자신 몫은 전세나 월세를 놓고 서너 명이 어울려 자취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집이 버젓이 있음에도 자녀 학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이별 가족’이 된 공무원들의 눈물어린 자구책인 셈이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일찍이 자녀의 조기유학 때문에 생이별을 해야 했던 기러기 가족의 선례가 있긴 하지만, 자녀 교육으로 인해 부부가 생이별을 해야 하는 사례는 그 어느 문화권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것 같다. 우리네 가족이 서구의 부부중심가족과는 달라서, 가족의 자원을 한데 모아 가족 구성원의 성공과 출세를 위해 집중 투자하는 가족 공리주의적 성격이 강한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도 ‘생이별 가족’의 양산만큼은 이대로 방치해선 안 될 것 같다. 생이별의 근본 원인이 자녀교육 때문이라면 행정중심 복합도시의 비전 못지않게 수월성을 갖춘 교육환경에 대한 청사진이 제시돼야 할 것이요, 가족의 삶의 질을 담보할 수 있는 건강한 지역공동체를 향한 다양한 프로그램 또한 구체화돼야 하리란 생각이다.

‘생이별 가족’은 너나없이 경제적 부담에 더해 불안정성을 경험하게 될 것이요, 그로 인해 공무원의 사기도 하향곡선을 그릴 것이 분명하다. 곧 ‘생이별 가족’으로 넘쳐나게 될 세종시 풍경은 생각만으로도 우울하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기고·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이민정 '반가운 손인사'
  • 이민정 '반가운 손인사'
  • 송지효 '바다의 여신'
  • 김다미 '완벽한 비율'
  • 조보아 '반가운 손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