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마저 물질주의에 투영된 현실 취업,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고 해 ‘3포세대’라 이름 붙여진 20대 후반 젊은이를 만나 이들의 고민과 갈등, 불안과 부적응 등을 인터뷰하던 중 결혼과 관련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요즘 자신들 세대는 양가 부모의 상견례 후 남자가 여자에게 결혼 프러포즈하는 관행이 유행이라는 것이다.
예전 결혼 당사자 사이에 합의가 이뤄진 후 부모가 상견례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겼던 터에 상견례 후 프러포즈라는 요즘의 절차가 참으로 낯설기만 하다. 하지만 당사자의 처지가 돼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들 세대로선 최선의 현명한 선택일 수 있겠다 싶다.
일단 양가 부모의 상견례가 프러포즈보다 앞서게 된 건 ‘부모 반대를 무릅쓴 결혼은 하지 않겠노라’는 이들 세대의 실용주의가 한몫하고 있는 듯하다. 현실적으로 부모 도움 없이는 결혼식 비용도, 최소한의 전셋집 마련도 거의 불가능한 세대로선 부모 의사를 최대한 존중할 수밖에 없기에 자신들의 절박한 마음을 상견례 후 프러포즈란 관행에 담아내게 됐으리란 생각이 든다.
자녀의 결혼비용을 거의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부모 입장에서도 상견례가 프러포즈보다 앞에 오는 것이 되레 마음이 놓이기도 할 것이다. ‘대체 뉘 집 자식을 데려올 것인지’ 알 수 없는 불안한 상황보다는 상견례를 통해 장차 사돈될 분의 집안이나 인품도 살펴보고 며느리 혹은 사위 후보가 어떤 가정교육을 받고 자랐을지 미리 파악해보는 것이 밑질 것 없는 장사(?) 아니겠는지. 대신 자식에게 물려줄 것 하나 없고 의지가 돼 줄 형편도 못되는 부모의 경우는 자식 결혼에 거의 아무런 영향력을 미칠 수 없다는 우울한 소식도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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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
이처럼 관계를 이벤트화하는 것이야말로 상대와 깊이 있는 몰입을 두려워하고 낭만적 사랑을 성숙한 신뢰로 승화하는 데 서툴기 만한 현대인의 불안이 전형적으로 투영되고 있는 것 일 게다. “솔직히 저희 세대는 한 사람과 결혼생활을 지속할 것이란 믿음이 희박하다”는 고백을 자연스럽게 하는 세대로선, 연인 관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지금의 관계가 건재함을 확인하고픈 열망이 이전 세대에 비해 더욱 절실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관계조차 그 의미와 가치가 주고받는 물질의 양에 따라 재단되고, 부모 자식 간에도 물려줄 재산의 양에 따라 부모의 의견과 영향력이 좌지우지되는 상황은 진정 아쉽기만 하다. 연인, 부부, 부모자녀 등 친밀성을 기반으로 한 관계가 냉정하고 각박하기 만한 이 시대에 특별하게 다가오는 건 돈으로 살 수 없는 이타주의와 조건 없는 사랑, 약자를 향한 희생과 헌신, 그리고 공동체적 가치를 실현하고 있기 때문임을 기억할 일이다. 상견례 후 프러포즈라는 신결혼풍속도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 속에 암암리에 투영되고 있는 과도한 물질주의만큼은 우리 모두 경계해야 마땅하리란 생각이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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