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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요 왜 영어가사 일색일까?

입력 : 2013-07-31 20:40:15 수정 : 2013-08-01 08:3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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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마다 과도한 영한 혼용 현상, 아이돌 댄스 음악 주류로 굳어져
가요계 순환주기 빨라지다보니 신곡 발표 후 즉각 반응 와야 생존
주옥같은 가사 대신 ‘치장’에 몰두… “음악인들 노력 부족한 것” 지적

“넌 내 마지막 You’re my last 언제까지나 You’re my last…Early in the morning 오늘도 역시 The sun is hiding/ 빛은 사라졌지.”(비스트 ‘섀도우’ 중)

“Everybody I don’t want to stick at home, now/ 날 따라 Follow…벗어나 Day Life/ 다같이 Let’s say Ready Go.”(크레용팝 ‘빠빠빠’ 중)

최근 인기몰이 중인 두 곡의 노랫말 일부분이다. 두 곡 모두 영어와 우리말을 뚝뚝 섞어 썼다. 노래 중간에 영어가 불쑥 끼어드는 일은 새삼 이 곡들만의 특징은 아니다. 두세 문장을 연달아 영어로 말하는 일은 가요에서 이미 예사가 됐다. ‘베이비’ ‘에브리바디’ ‘컴 온’ 등의 단어는 일종의 감탄사처럼 굳어졌다.

노랫말의 과도한 영한(英韓) 혼용 현상은 아이돌 댄스 음악이 주류가 되면서 더 심해지고 있다. 영어 가사가 난무하다 보니 맥락·문법에 맞지 않거나 조악한 조어까지 등장한다.

해외 팬들마저 K-팝의 어색한 영어 가사를 지적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음악인들은 디지털시대에 노래가 인스턴트 음식처럼 소비되는 한 이런 현상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지난달 26일 KBS2 ‘뮤직뱅크’에 출연한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 화면 하단의 자막에는 수시로 영어 가사가 등장한다. 이처럼 국내 가요에서 영어 가사가 과도하고 불필요하게 쓰이는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음악도 빨리빨리… 심혈 기울인 가사 힘들어

영어 가사가 범람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가요가 서양음악이기 때문이다. 서양문화에 뿌리를 두었기에 ‘멜로디에 착 달라붙는 우리말’을 찾기가 영어보다 어렵다. 그룹 ‘사랑과평화’ 출신의 음악감독 송홍섭은 “우리말은 억양이 세고 들쑥날쑥해서 노래로 만들면 매끄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말은 자음·모음이 차지하는 두께가 굉장히 크다”며 “악기 소리가 5개라면 이 중 두세 개를 희생해야 간신히 노래가 들어갈 자리가 생긴다”고 밝혔다.

노랫말의 라임(압운)을 맞추려면 영어가 훨씬 편한 경우도 많다. 영어로 말하면 세련되거나 맛깔스럽게 들리는 경우 대체할 우리말을 찾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다수의 곡을 만든 한 음악인은 “일부에서는 영어 가사가 멋있다고 생각해서 치장하듯이 영어를 쓴다”며 “영어 가사를 해석해 보면 ‘아빠가 출근할 때 뽀뽀뽀’ 수준으로 말도 안 되게 촌스러운 때도 있다”고 전했다.

이런 현상의 기저에는 음악이 빨리 소비되고 버려지는 세태가 자리 잡고 있다. 강태규 음악평론가는 “요즘 가요계는 순환주기가 빨라져서 신곡 발표 후 즉각 반응이 와야 살아남고 ‘루저’는 퇴장당한다”며 “음악을 바로바로 가공해내는 경향이 팽배하니 노랫말을 고심해서 고르기가 불가능하다”고 짚었다. 그는 “주옥같은 가사와 멜로디로 세월을 견디는 음악이 아닌 바로 피드백을 얻을 공격적인 가요를 내놓아야 하는 환경에서 깊이 있는 가사나 철학을 찾을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결국 음악인들의 노력 부족”

가요계에서는 음악적·산업적 한계가 있더라도 노랫말을 짓는 데 신경 써야 한다고 주문한다. 송홍섭 음악감독은 “힘들더라도 되도록 우리말로 작사해야 한다”며 “결국 음악인들의 노력이 부족한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밴드 안녕바다의 보컬로 다수의 곡을 작사·작곡한 나무는 “한국에서 음악을 하고 청소년에게 많은 영향을 주는 음악인들이 책임감을 갖고 우리말로 표현하려고 애써야 한다”며 “우리말 랩조차 영어처럼 꼬아서 발음하는 세태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나무는 이 문제에 대한 모범답안으로 힙합계 대부 가리온을 꼽았다. 가리온은 1990년대부터 우리말 랩을 고수해 왔다. 가리온의 멤버 MC 메타는 “힙합문화의 저변에는 서로 더 멋진 걸 보여주려는 선의의 경쟁이 깔려 있다”며 “가리온은 우리말로 충분히 멋있는 랩을 해서 일본어·영어 래퍼를 넘어서겠다는 자세를 갖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그는 한국적인 요소를 힙합으로 구현할 수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우리말 랩을 시도했다. 한국어에 미개척 영역이 많다는 생각에서 경상도 사투리로만 곡을 만들기도 했다.

MC 메타는 “1990년대 언더그라운드에서는 우리말 랩을 고집하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서서히 변하더라”며 “자국어로 랩을 하는 건 힙합음악인이 가져야 할 기본태도”라고 못박았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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