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관련 법 개정 추진…교사·학교 권한 강화 '부천 초등생 시신 훼손'과 '부천 여중생 시신 방치' 사건에 이어 '큰딸(7세 미취학 여아) 암매장' 사건이 잇따라 불거지면서 아동 문제 관련 법과 제도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부모가 자녀를 학대하고 때려 숨지게 한 이들 사건에서 우리 사회의 안전망은 철저하게 무기력했다.
뚜렷한 이유도 없이 몇 달에서 몇 년씩 결석하는 아이들을 찾는데 학교와 경찰, 지방자치단체 사이에 유기적인 공조는 없었다.
학교를 비롯한 관계 당국이 결석 이유나 소재 파악, 학부모 면담 등에 더 적극적으로 나섰더라면 안타까운 희생을 사전에 막지 않았겠냐는 지적은 그래서 뼈아프다.
◇ "법은 있는데…" 숫자로만 관리되는 사라진 아이들
현행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은 학생이 정당한 사유 없이 7일 이상 결석하면 학교가 해당 학생의 부모에게 출석 독려서를 보내고 이를 거주지 읍·면·동장에게 통보해야 한다.
읍·면·동장은 해당 아동의 집을 찾아가 다시 출석을 독려하고 그 결과를 학교와 지역교육청에 알려야 한다.
하지만 학교의 출석 독려는 전화와 가정통신문 발송으로 이뤄지고 교사의 가정 방문은 의무사항이 아니다.
동 주민센터 직원이 결석 아동의 집을 찾아가도 이미 이사했거나 사람이 없으면 이 사실을 통보하는 것 이외에 아이의 행방을 쫓는 더 이상의 조치는 없다.
교육 당국은 무단결석 일수가 90일을 넘기면 장기 결석 아동으로 분류해 교육행정정보시스템에 '정원외'로 관리하는 게 전부다.
부천 여중생 시신 방치 사건도 경찰이 가출 신고된 지 1년 가까이 집에 돌아오지 않는 점을 수상히 여겨 해당 아동의 시신을 찾아내지 못했으면 여전히 교육 당국의 시스템에 숫자로 올라 있는 장기 결석생 중 하나로 묻혔을 가능성도 있다.
일선 교사들은 문제 행동을 보이는 학생의 부모에게 상담을 요청하면 이런저런 사정을 들어 불응하는 경우가 많은 데다 이를 강제할 방법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부천 초등생 시신 훼손 사건 역시 담임교사가 학년 부장교사와 함께 피해 아동이 숨지기 전 집을 찾아갔지만 아무도 만날 수 없었다.
당시 전화를 받은 피해 아동의 어머니는 "직장에서 전화 받는 일을 해 자리를 비울 수 없다"고 답했지만 교육 당국은 뚜렷한 범죄 의심 징후가 없는 상태에서 수사를 의뢰하지 않았다.
한 교육계 인사는 18일 "학부모에게 학교 상담을 오시라 하면 '네가 뭔데 우리 아이 일에 참견하느냐'는 식으로 대꾸하는 경우도 많다"며 "지금도 1년에 두 번 학부모의 수업 참관이 의무화돼 있지만 오지 않아도 강제할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아이를 찾아 나섰다가 '사생활 침해'를 주장하는 부모들의 거센 항의를 감수해야 하는 건 경찰관들도 교사들과 마찬가지다.
◇ "선진국은 달라"…미등교·문제 학생 부모 상담 의무화
교육계 안팎에서는 우리 사회도 선진국처럼 가정에서의 자녀학대를 사회적 시스템의 문제로 접근할 것을 주문한다.
미등교 학생과 문제행동 학생의 '학부모 상담 의무제'와 자녀 교육 상담 활성화를 위한 '학교 참여 유급 휴가제' 등을 법제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진국은 학교, 경찰, 가정의 역할 구분이 분명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한 탓에 문제가 발생하면 모든 책임이 학교, 교사에게만 넘어오는 경향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전문가들은 학부모가 상담에 불응하면 미국처럼 행정·사법 처벌을 제도화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국은 학부모가 상담에 응하지 않으면 경찰에 고발하도록 한 '학부모 소환제'가 있다.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지역교육청에 출석업무만 담당하는 감독관과 담당 변호사, 공무원이 따로 있어 학부모에게 과태료 처분을 내린다.
또 아동의 행방이 불분명하면 교직원이 아닌 학교출석감독관이나 경찰관 등 전문인력이 나서 소재를 파악한다.
캐나다의 경우도 학생의 유급 권한을 교사에 부여하고 있다.
현행 초중등교육법은 '취학 의무 이행을 독려받고도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한 자, 의무교육 대상자의 의무교육을 방해한 자, 학생을 입학시키지 않거나 등교나 수업에 지장을 주는 행위를 한 자'에게 교육감이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게 돼 있다.
그러나 이에 따른 과태료 부과 사례는 전국적으로 한 건도 없다.
일선 교육청의 한 장학사는 "기존의 교육시스템은 학교와 교사의 권한이 미약해 결석아동에 대해서도 전적으로 부모의 처분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열성적으로 결석아동의 행방을 쫓는 교사들은 이를 간섭으로 여기는 부모들로부터 신변의 위협마저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 초·중등교육법 개정 추진…행방불명 아동 수사 의뢰
교육부는 학대·방치로 인한 아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취학대상 아동의 행방이 불분명하면 교육감이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8월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현재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교육감이 7일 이상 등교하지 않는 학생에 대한 교육장의 보고를 받은 뒤 학교에 다시 다니는지 수시로 확인하고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아동 학대나 다른 범죄 피해가 의심되지 않는 경우 장기 결석이라도 수사기관에 신고할 의무가 없다.
전문가들은 학생 보호의 책임을 교사와 학교에게만 묻지 말고 학부모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제안한다.
최근 경기도 한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기간제 교사 빗자루 폭행 사건에서 보이듯 교권 추락으로 인해 학교 현장에서 학생, 학부모에 대한 지도·감독 권한이 땅에 떨어진 마당에 학대 아동 방임에 대한 책임을 교사에게만 지울 수는 없다는 것이다.
결국 장기 결석 아동 대책과 교권 보호 대책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일각에서는 학부모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조치가 아동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만큼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지자체와 지역사회의 역할이 커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서소정 경희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지자체에 이미 설치된 육아종합지원센터를 통해 출생신고 단계부터 모든 부모에 대한 교육을 의무화해 자녀를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하는 인식을 확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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