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메르스는 종식됐지만 언제 또다시 발생할지 모르는 신종 감염병에 대한 당국의 방역망 정비는 이제 시작이다. 전문가들은 메르스 사태의 원인과 진행과정을 철저하게 규명하기 위해 연구 중이다. 의문의 실타래들도 하나씩 풀리고 있다.
◆‘병원 밖(지역사회) 감염’ 있었다
13일 메르스 역학조사팀에 따르면 지난 6월11일 119번째로 양성 판정을 받은 평택경찰서 A경사는 ‘병원내 감염’이 아닌 ‘지역사회 감염’으로 결론이 났다. 기모란 대한예방의학회 메르스위원장(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 교수)은 “A경사의 신용카드 사용내용을 파악해 동선을 복원하고 방범용 폐쇄회로(CC)TV를 분석한 결과, 그가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병원 앞을 왕래한 영상이 발견돼 병원 외부에서 감염된 것으로 결론 내렸다”며 “지역사회 감염이 없었다던 보건당국의 발표와는 배치되는 결론”이라고 말했다.
보건당국이 ‘병원내 감염’을 강조하면서 ‘지역사회 감염’ 가능성을 일축한 이유로는 감염병 위기경보단계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는 메르스 사태가 진행되는 동안 국내에서 유행한 메르스가 “병원 내 감염에 국한돼 있고, 지역사회 감염은 일어나지 않았다”며 통제 가능한 상황임을 거듭 강조하며 감염병 위기경보단계를 ‘주의’에서 ‘경계’로 격상하지 않았다. 최보율 메르스 역학조사위원장(한양대 예방의학과 교수)은 “지침이라고 할 수 있는 감염병 위기경보단계를 당국이 지키지 않은 것은 지침이 잘못됐거나 당국이 지침을 위반한 것”이라며 “감염병 위기단계를 보다 명확하게 정의하고 앞으로는 철저하게 적용해야 혼란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감염경로 미궁에 빠진 환자
178번째 환자 B(29)씨는 역학조사에도 감염경로가 파악되지 않아 미제로 남게됐다. B씨의 아버지는 지난 5월 18∼29일 메르스의 첫 진원지였던 평택성모병원에 입원했다가 평택박애병원으로 이송된 뒤 6월6일 간암으로 숨졌다. B씨는 5월30일부터 아버지의 임종까지 아버지가 입원한 4층 병동에 머물러 같은 시간 병원 4층 병동에 입원했던 22번째 환자(39·여)로 부터 감염됐을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병실도 달랐고, 22번째 환자가 거동이 불편해 침상에만 있었기 때문에 동선도 겹치지 않는 것으로 분석됐다. B씨의 아버지는 평택성모병원에 입원한 전력때문에 두차례에 걸쳐 메르스 검사를 받았지만 모두 음성으로 나왔고 의심증상도 없었다. 이 때문에 B씨는 방역당국의 관리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뒤늦게 발견됐다.
메르스 역학조사팀은 B씨의 아버지가 평택병원에 입원했을 당시 첫번째 메르스 환자(68)가 전날까지 입원했던 8104호 병실, 같은 침상을 사용했다는 사실 때문에 B씨가 아버지로부터 감염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만 할 뿐이다. B씨의 아버지가 메르스 증상이 발현됐지만 양성 판정을 받지 못하고, B씨에게 메르스를 전파한 뒤 숨을 거뒀다는 것이다.
◆평택성모병원 환자, 27초만에 감염
연구 결과에 따르면 단 27초의 접촉만으로도 메르스에 감염된 환자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2m 이내 한 시간 접촉’이라는 사태 초기의 의심환자 분류 기준은 방역당국의 뼈아픈 실수로 결론이 났다.
메르스 역학조사팀이 첫 번째 메르스 환자가 입원(5월16∼5월18일)했던 평택성모병원의 CCTV를 분석한 결과 5월16일 8105호실 입원환자의 보호자였던 19번째 환자 C(60)씨는 첫 번째 환자와 8층 병동에서 1∼2m 거리를 두고 27초간 접촉했을 뿐이지만 메르스에 감염됐다. 같은 날 8112호 입원환자의 보호자로 병원을 찾은 17번째 환자 D(45)씨 역시 8층 병동에서 첫 번째 메르스 환자와 2∼3m 거리에서 34초간 접촉했다가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고, 9번째 환자 E(56)씨도 1∼2m 거리에서 3분26초라는 짧은 시간 동안 첫번째 환자에 노출된 뒤 양성판정을 받았다.
당국은 세계보건기구(WHO)의 메르스 대응지침이라는 이유로 ‘2m 이내 한 시간 접촉’이라는 의심환자 분류 기준을 고수한 탓에 상당수의 메르스 감염자를 방역감시망에서 놓쳤고, 메르스가 확산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미국 질병예방통제센터(CDC)는 △감염자와 2m 이내 또는 같은 방에 머무른 경우 △마스크 등 보호구 착용 없이 감염자와 오랜 시간 같은 공간에 머무른 경우 △감염자의 분비물(타액 등)을 직접 접촉한 경우 등을 밀접 접촉자로 분류해 보다 포괄적인 기준을 제시했다. 기모란 교수는 “WHO의 대응지침은 권고사항이고 최소한의 방침이라 선진국에서는 보다 엄격하게 기준을 적용하기 마련”이라며 “운 좋게 메르스 첫 번째 감염환자를 찾으면서 사태를 쉽게 통제할 수 있을 거라고 안이하게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첫 번째 메르스 환자가 입원했던 평택성모병원에서 환경검사를 실시한 결과 첫번째 환자가 머물렀던 8104호 병실은 15㎝ 이상 열리지 않는 작은 창문으로 들어온 바람에 의해 환자의 비말(작은 침방울)이 병동 복도와 복도 건너편 병실까지 퍼져나갈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8104호 병실에는 급·배기구가 없었고 병실 복도에도 환기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에 8104호에서 발생한 메르스 바이러스가 보다 멀리 퍼져나갈 수 있었을 것으로 역학조사팀은 보고 있다.
◆정확하고 투명한 소통의 중요성
‘지역사회 감염 발생’ ‘2m 이내 30초 접촉으로 감염’ 등은 방역당국이 메르스를 얼마나 안이하게 파악하고, 대처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메르스를 직접 맞닥들인 의료계와 국민은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전문가들은 신종감염병 사태가 발생하면 당국은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대중과 투명하게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를 위해서는 현 상황에서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가 실시간으로 파악돼 있어야 하는데 정부는 이마저도 실패했다. 감염환자가 발생한 병원 이름은 알았지만 이를 공개할지 말지를 놓고 정치적 실익만 따지다가 첫 환자가 파악된 지 18일이 지나서야 대중에 알리는 뼈아픈 실수를 범했다.
최보율 교수는 “메르스 사태 초기에 정부는 우리나라 의료는 중동에 비해 안전하기 때문에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게 하겠다고 했는데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라며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은 나중에 사실관계가 파악됐을 때 다시 설명할 수 있지만 오르는 것을 안다고 하면 다음에 설명을 번복할 수가 없다”고 정확한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재호 기자 futurnalis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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