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어느새 10년… 배우와는 멀어졌지만, 세상과 가까워진 세월

입력 : 2012-10-18 21:08:25 수정 : 2012-10-18 21:08:25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7년만에 두번째 장편 ‘용의자 X’ 내놓은 방은진 감독 배우로 사랑받던 이들이 연출에 도전하면 상당수가 고개를 갸웃한다. 안정적 자리를 벗어날 정도로 그 일이 매력적인가. 은연중의 저평가를 감수할 만큼 창작욕이 넘치는 걸까. 18일 두 번째 장편 영화 ‘용의자X’를 내놓은 방은진(47) 감독은 순전히 “연기를 잘하고 싶어서” 메가폰을 잡았다고 밝혔다. 그는 배우 출신으로 연출력을 인정받은 몇 안 되는 인물이다. 소박하게 시작한 인연은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30대에서 40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만난 굉장히 까다로운 벗이자 좋은 스승”으로 자리 잡았다. ‘용의자X’는 그가 벗이자 스승과 엎치락뒤치락해온 세월이 쌓인 결과물인 셈이다. 

영화 ‘용의자X’
“1998∼99년쯤 연기를 잘하고 싶어서 연출에 관심을 가졌어요. 영화를 만드는 쪽에 서면 연기하는 배우도 보이니까 공부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죠. 당시 단편영화를 많이 봤어요. 김진한 감독의 ‘햇빛 자르는 아이’라는 단편을 좋아했는데 김 감독이 동네에 살고 있었어요. 비디오 가게에서 만나 ‘나 연출부 시켜 달라’고 그랬더니 ‘방 선배, 차 안 갖고 다니고 라면 끓여먹을 수 있느냐’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6개월 동안 일했죠.”

스태프 일은 그의 기질과 잘 맞았다. 배우로서 밤샘 촬영을 할 때면 그는 코 골고 조는 스태프를 보며 ‘도대체 뭐가 좋아서 저럴까, 나는 스크린에 나오기라도 하지, 보이지도 않는데 어쩜 저렇게 이리 뛰고 저리 뛸까?’ 하고 궁금해했다. 이 물음도 밤잠 못 자고 대가 없이 열심히 하는 스태프가 되면서 저절로 풀렸다. 

영화 ‘용의자X’
‘용의자X’의 방은진 감독은 “필요할 때는 자세히 설명하고 그렇지 않은 장면은 배우에게 맡기다 보니 배우들이 ‘시원하다’ ‘콕콕 꼬집어준다’ ‘가려운 데를 긁어준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것 같은데 반면 내가 보는 게 긴장된다고도 한다”며 “배우 출신 감독이란 건 항상 독도 약도 되는 양날의 칼”이라고 말한다.
연합뉴스
“기웃거리다 보니 ‘영화에서는 배우도 소도구이자 한 부분이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 ‘이렇게 세상을 더불어 사는구나’ 하고 세상에 대한 시각까지도 달라졌죠. 연출로 내 시점을 바꾸니 인생에 대해 많은 것들이 보였어요. 배우가 자기와의 치열한 싸움 속에 희로애락을 경험한다면 (연기를) 훌쩍 떠나오니 원경이 보였어요. 영화가 저를 인간적으로 성숙하게 해주고 숙련시켰죠. 이런 것들 때문에 연출이 저한테 던져주는 숙제나 질문이 많았던 것 같아요.”

연출로 그는 집요함·치열함을 터득했다. 인내심도 배웠다.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 건 2001년부터다. 우여곡절 끝에 2005년 마흔 살에 ‘오로라공주’로 데뷔했다.

“‘오로라공주’ 때 이창동 감독님이 최종 시나리오를 몇 번 검사하고 개입해 주셨어요. 제 데뷔에 깊게 관여하고 기회를 주고 멘토링을 한 분들이 이창동·강우석 감독과 명계남 대표예요.”

‘오로라공주’로 성공적인 데뷔를 치렀지만 차기작은 부침을 거듭했다. 슬럼프에 빠졌다. 두 번째 장편 ‘용의자X’를 선보이기까지 7년이 걸렸다.

일본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용의자X의 헌신’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원작의 두뇌싸움 대신 멜로에 방점을 찍었다. 훌륭한 소설에다가 원작에 충실한 일본 영화도 이미 나온 상태였기 때문이다.

‘용의자X’에는 옆집에 사는 화선을 몰래 짝사랑하는 소심남 석고가 등장한다. 그는 수학천재이지만 지금은 고등학교 교사로 정체된 상태다. 화선이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을 살해하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석고는 자신이 지켜주겠다며 아무도 풀 수 없는 알리바이를 만든다.

“석고가 살인사건이 벌어지는 짧은 순간에 굉장히 고민하잖아요. 두려움보다 옆집 벨을 누르는 순간 남의 인생에 깊숙이 개입하는 거니까 망설인 거죠. 석고가 화선의 인생에 개입한 이유를 파고들다 보면 사랑이라는 감정을 떠올릴 수밖에 없어요. ‘헌신’이라는 제목을 가능하게 하는 사랑이죠.”

그는 “소설에서 숨겨지거나 슬쩍 표현됐지만 상상할 수 있는 감정을 영화로 보여주기로 결론 내렸다”며 “저는 사실 멜로적인 감성이 있는 사람은 아니에요”라고 밝혔다. 방 감독은 현장에서 체력 안배가 늘 숙제라고 토로했다. 그는 “아무리 강철 체력이어도 여자가 남자보다 체력이 조금…조금 약하겠죠. 물론 훨씬 약한 사람도 있겠죠”라고 주저하듯 말했다. 강한 성격이 엿보였다.

그는 세 번째 장편 ‘집으로 가는 길’을 준비 중이다. 배우 하정우와 작업한다. 앞으로 감독으로서 드라마가 살아 있는 액션 등 다양한 장르를 만들고 싶다.

“가장 중요한 30대 중반의 시기에 감독 준비를 하면서 배우의 길과 점점 멀어졌어요. 제가 선택한 길을 간 거죠. 어느 만큼 와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때로는 험난하고 때로는 진짜 신나는 길이기도 하고. 튼실한 상업영화를 만드는 게 목표예요. 더 많은 관객이 신뢰하는 감독이 되고 싶어요. ‘이 감독 작품은 괜찮아, 두 시간 동안 몇천 원을 주고 봐도 그다지 실망하지 않을 거야’ 이런 정도의 연출자가 됐으면 좋겠어요.”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엄현경 '여전한 미모'
  • 엄현경 '여전한 미모'
  • 천우희 '미소 천사'
  • 트와이스 지효 '상큼 하트'
  • 한가인 '사랑스러운 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