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용의자X’ |
스태프 일은 그의 기질과 잘 맞았다. 배우로서 밤샘 촬영을 할 때면 그는 코 골고 조는 스태프를 보며 ‘도대체 뭐가 좋아서 저럴까, 나는 스크린에 나오기라도 하지, 보이지도 않는데 어쩜 저렇게 이리 뛰고 저리 뛸까?’ 하고 궁금해했다. 이 물음도 밤잠 못 자고 대가 없이 열심히 하는 스태프가 되면서 저절로 풀렸다.
영화 ‘용의자X’ ‘용의자X’의 방은진 감독은 “필요할 때는 자세히 설명하고 그렇지 않은 장면은 배우에게 맡기다 보니 배우들이 ‘시원하다’ ‘콕콕 꼬집어준다’ ‘가려운 데를 긁어준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것 같은데 반면 내가 보는 게 긴장된다고도 한다”며 “배우 출신 감독이란 건 항상 독도 약도 되는 양날의 칼”이라고 말한다. 연합뉴스 |
연출로 그는 집요함·치열함을 터득했다. 인내심도 배웠다.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 건 2001년부터다. 우여곡절 끝에 2005년 마흔 살에 ‘오로라공주’로 데뷔했다.
“‘오로라공주’ 때 이창동 감독님이 최종 시나리오를 몇 번 검사하고 개입해 주셨어요. 제 데뷔에 깊게 관여하고 기회를 주고 멘토링을 한 분들이 이창동·강우석 감독과 명계남 대표예요.”
‘오로라공주’로 성공적인 데뷔를 치렀지만 차기작은 부침을 거듭했다. 슬럼프에 빠졌다. 두 번째 장편 ‘용의자X’를 선보이기까지 7년이 걸렸다.
일본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용의자X의 헌신’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원작의 두뇌싸움 대신 멜로에 방점을 찍었다. 훌륭한 소설에다가 원작에 충실한 일본 영화도 이미 나온 상태였기 때문이다.
‘용의자X’에는 옆집에 사는 화선을 몰래 짝사랑하는 소심남 석고가 등장한다. 그는 수학천재이지만 지금은 고등학교 교사로 정체된 상태다. 화선이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을 살해하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석고는 자신이 지켜주겠다며 아무도 풀 수 없는 알리바이를 만든다.
“석고가 살인사건이 벌어지는 짧은 순간에 굉장히 고민하잖아요. 두려움보다 옆집 벨을 누르는 순간 남의 인생에 깊숙이 개입하는 거니까 망설인 거죠. 석고가 화선의 인생에 개입한 이유를 파고들다 보면 사랑이라는 감정을 떠올릴 수밖에 없어요. ‘헌신’이라는 제목을 가능하게 하는 사랑이죠.”
그는 “소설에서 숨겨지거나 슬쩍 표현됐지만 상상할 수 있는 감정을 영화로 보여주기로 결론 내렸다”며 “저는 사실 멜로적인 감성이 있는 사람은 아니에요”라고 밝혔다. 방 감독은 현장에서 체력 안배가 늘 숙제라고 토로했다. 그는 “아무리 강철 체력이어도 여자가 남자보다 체력이 조금…조금 약하겠죠. 물론 훨씬 약한 사람도 있겠죠”라고 주저하듯 말했다. 강한 성격이 엿보였다.
그는 세 번째 장편 ‘집으로 가는 길’을 준비 중이다. 배우 하정우와 작업한다. 앞으로 감독으로서 드라마가 살아 있는 액션 등 다양한 장르를 만들고 싶다.
“가장 중요한 30대 중반의 시기에 감독 준비를 하면서 배우의 길과 점점 멀어졌어요. 제가 선택한 길을 간 거죠. 어느 만큼 와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때로는 험난하고 때로는 진짜 신나는 길이기도 하고. 튼실한 상업영화를 만드는 게 목표예요. 더 많은 관객이 신뢰하는 감독이 되고 싶어요. ‘이 감독 작품은 괜찮아, 두 시간 동안 몇천 원을 주고 봐도 그다지 실망하지 않을 거야’ 이런 정도의 연출자가 됐으면 좋겠어요.”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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