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강유정의 시네마 logue] 줄리아의 눈

관련이슈 강유정의 시네마 logue

입력 : 2011-04-07 17:54:48 수정 : 2011-04-07 17:54:48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석연찮은 언니의 죽음 추적… 오랜만에 만난 스페인 스릴러
‘줄리아의 눈’은 오랜만에 만나는 스페인 스릴러이다. 스페인 스릴러 영화 중 가장 낯익은 작품이라면 아마도 ‘떼시스’와 ‘오픈 유어 아이즈’일 테다.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의 출세작이라고도 할 수 있을 이 두 작품은 할리우드 스릴러에서 볼 수 없었던 이채로운 질감을 선보였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판의 미로’ 역시 마찬가지였다. ‘줄리아의 눈’에 대한 기대감은 바로 이 스페인 스릴러에 대한 궁금증 위에 놓여 있다.

‘줄리아의 눈’에서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또 다른 요인은 바로 ‘눈 멂’이라는 소재이다. 스릴러 영화의 주인공인 쫓기는 자가 눈이 멀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 긴장감을 높여준다. ‘눈 먼 자들의 도시’에서처럼 눈이 먼 자는 우선 자기 방어적이 될 수밖에 없다. 시각 장애를 지닌 여성 피해자는 절대적 약자를 연상케 한다.

언니의 죽음을 알게 된 줄리아는 그녀의 죽음이 어딘가 석연치 않다고 느낀다. 어떻게 죽었는지 확인했지만 아무래도 왜 죽었는지 이유를 납득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녀는 탐정이 되어 언니의 죽음을 추적해간다. 탐색의 과정 중 눈길을 끄는 것은 시각장애인들만의 독특한 자기연대이다.

줄리아는 언니가 시각장애인 동호회에 출입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모임이 이루어진 곳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연히 그들끼리 나누는 대화를 엿듣게 된다. 언어장애인들이 수화로 대화를 나누듯 그들 역시 나름의 육체적 언어로 의사를 전달한다. 보이지 않는 빈 동공을 들어 서로 눈도 마주치고 않고 나누는 그들의 대화는 사뭇 선정적이며 독하기까지 하다. 사람들은 종종 대화의 뉘앙스를 눈빛으로 전달하곤 한다. 눈빛을 상실한 그들은 지독한 어휘와 표현으로 그 느낌을 강화한다. 그들 가운데서 몰래 이야기를 듣던 줄리아는 이 원색적 폭력성에 놀라고 만다.

언니 리사를 죽인 살인자는 보이지 않는 자로 불린다. 어디서나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너무도 평범한 남자이기에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못한다. 조연이나 단역처럼 그는 늘 그렇게 인생의 사각지대 한 편에서 살아가고 있다. 물론 세상에는 이렇듯 보이지 않게 살아가는 인물들이 있다. ‘여고괴담’의 진주처럼 말이다. 사각지대의 차가 백미러에 보이는 차보다 더 가까이에서 우리를 위협하듯이 그들 역시 보이지 않게 우리 곁에 밀착해 있다.

문제는 이런 매력적 소재들이 소재 자체로 머무른 채 겉돌고 있다는 점이다. 보이지 않는 자의 결정적 비밀은 영화가 진행되면서 반전을 통해 밝혀진다. 하지만 이 반전의 장치는 히치콕의 대표작 이후 너무도 오랫동안 애용해온 관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놀랍다기보다는 억지스러운 깜짝쇼에 더 가깝다는 인상을 지우기는 힘들다.

범인의 캐릭터도 상투적이다. 그는 여러 가지 콤플렉스와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인물이다. 그런데 그가 왜 그러한 콤플렉스나 트라우마를 갖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영화는 아무런 암시도 주지 않는다. 유일한 이유라면 그가 세상 그 어떤 여자에게도 충분히 사랑받았다고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다. 심지어 엄마까지 말이다. 아무도 그를 주목하지 않았던 것이 그가 지닌 상처의 원인이다.

눈에 띄지 않는 이 인물은 아이러니하게도 눈이 보이지 않는 자들 곁에서 스스로의 존재감을 확인한다. 잠자는 미녀를 바라보는 아쿠다카와 류노스케의 소설 속 노인처럼, 박스에 헬레나를 가둔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의 외과의사처럼, 그는 그렇게 절대적 보호자로서 여자 곁에 머물고자 한다.

스릴러라는 장르적 규칙을 따라가지만 막상 관객을 압도하는 것은 ‘눈’에 대한 공포이다. 눈이 멀지도 모른다는 것, 시야가 상실되는 순간의 현기증, 눈을 향해 다가오는 날카로운 칼의 이미지들이 평범한 스릴러적 구성보다 훨씬 더 강렬하다. 스페인식 스릴러에 대해 기대했던 것 역시도 이 강렬함이다. 기예르모 델 토로의 영화들은 공포를 드러내는 순간 망설이지 않고 관객들의 감정적 마지노선을 넘어선다. 그런데, ‘줄리아의 눈’은 기예르모 델 토로가 제작하긴 했지만 연출한 작품은 아니다. 기예르모 델 토로의 작품을 기대해서는 안 될 듯싶다.

영화평론가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엄현경 '여전한 미모'
  • 엄현경 '여전한 미모'
  • 천우희 '미소 천사'
  • 트와이스 지효 '상큼 하트'
  • 한가인 '사랑스러운 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