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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석의 진료실 옆 영화관] 브로큰 임브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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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12-03 22:17:59 수정 : 2009-12-03 22: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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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져도 놓칠 수 없는… 세 남녀의 치명적 사랑 대학 시절 매년 여름 한센인 정착촌을 찾아가 틀니를 만들어드리는 동아리 활동을 했다. 첫 소록도 진료를 나간 1학년 여름 때 일이다. 당시 영화에 푹 빠졌던 필자는 아르바이트비를 모아 장만한 캠코더로 소록도에서의 일주일을 기록하겠노라고 욕심을 냈다. 틀니를 만드는 작업이 상당히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 데다 일주일이라는 단기간에 많은 틀니를 잘 만들어야 했기에 상복하달의 엄격한 규율은 필수불가결한 것이었다. 그런데 알아서 박박 기어도 시원찮을 1학년이 캠코더 들고 설치는 모양새에 동아리 선배들은 물론 동기들도 모두 어이없어 했다.

주변의 살벌한(?) 눈치 때문인지 정작 중요한 과정은 한 장면도 담지 못했다. 결국 준비과정과 일이 다 끝난 뒤 뒷정리 과정만 담긴 테이프는 방 구석 한 귀퉁이로 직행했다. 지난주 오랜만에 동아리 후배들을 만나게 되었다. 10여년 전 소록도에서의 캠코더 이야기가 나왔고 후배들은 테이프를 주면 디지털로 보존하겠다고 했다. 집에 와서 먼지 쌓인 구석을 한동안 헤집어서 13년 전의 그 테이프를 꺼냈다.

영화 ‘브로큰 임브레이스’는 다큐멘터리 화면으로 시작한다. 영화를 찍는 현장. 배우들의 모습이 보이고 곧 주인공 레나(페넬로페 크루즈)와 마테오(유이스 오마르)가 주변의 눈치를 보며 눈빛을 교환하는 모습이 보인다. 가난으로 재벌 에르네스토의 정부가 된 레나는 배우가 되고 싶은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감독 마테오의 오디션을 찾아간다. 레나에게 반한 마테오는 그녀를 주연을 발탁하고 질투심을 참지 못한 에르네스토는 메이킹 필름을 만든다는 구실로 자기 아들에게 레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촬영할 것을 지시한다.

에르네스토의 아들은 자신이 찍는 것을 진짜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하면서 먼발치에서 충실하게 레나의 행동을 차곡차곡 담아낸다. 그리고 영화 시작의 다큐멘터리 장면이 다시 이어진다. 머뭇거리던 레나는 눈물을 흘리며 마테오에게 에르네스토가 자신에게 한 끔찍한 일들을 말하고 둘은 키스를 한다. 에르네스토는 자신의 집에서 그 화면을 보고 절망에 빠진다. 질투심에 눈이 먼 에르네스토를 피해 레나와 마테오는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나지만 곧 비극적 사고가 터지고 마테오는 실명한 채 홀로 돌아온다.

영화의 마지막. 과거와 단절하며 살아오던 마테오는 에르네스토의 아들이 촬영한 그 사고 현장의 화면을 손으로 느끼면서 14년 전의 고통스러운 기억에서 비로소 헤어나오게 된다. 에르네스토의 아들이 촬영한 것들은 에르네스토의 질투심을 불러일으킨 결정적 단서였다. 하지만 마테오는 그 화면들로 인해 자신의 기억에서 지워진 것을 다시 느끼게 되면서 삶을 긍정할 수 있게 됐다.

1학년 때의 테이프를 돌려보니 13년 전 소록도의 여름은 지금까지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것보다 더 뜨거웠고 아름다웠다. 당시는 느끼지 못했던 구성원들 간의 관심과 배려가 화면 밖으로 생생히 전해졌다. 디지털로 자료화되면 그 테이프 속의 인물들도 그 시절을 다시금 회상하게 될 것이다. 마테오가 그랬던 것처럼 나의 기록들이 그 누군가에게 긍정의 기운을 조금이나마 되살릴 수 있게 되기를 꿈꿔본다.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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