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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나의 필름포커스] '라라 선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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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10-15 23:08:05 수정 : 2009-10-15 23: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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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당해 갈갈이 찢겨진 영혼… 상상속에서 피튀기는 복수극 >>‘ 라라 선샤인’

어린 여자아이 성폭행. 최근 사회를 분노시킨 이런 만행이 더욱 끔찍한 점은 마치 일상의 한 부분인 양 오랫동안 너무 많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라라 선샤인’은 그런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해 고통과 상상 속에 구성해가는 복수극을 퍼즐조각처럼 맞춰나간다. 

작가인 라라(양은용)는 미술관에서 일어난 미라의 성폭행 살인사건을 추적해 간다. 흥미로운 드라마 구성을 원하는 감독과 달리 라라는 미라의 사건 속에 자신의 기억과 상처, 복수욕망을 불어넣는다. 경찰서로 미술관으로 취재를 다니지만, 라라는 어린 시절 성폭행과 연결된 빙판과 음악실 속을 맴돈다. 글쓰기 취재를 할수록 라라는 미라를 자신의 상처와 복수를 대행하는 캐릭터로 상상해내고, ‘중경삼림’의 노랑머리 킬러 자신이 되기도 한다. 라라와 미라, 노랑머리 여자는 영화가 진행되면서 성폭행과 복수라는 맥락 속에서 하나로 돌아간다.

눈 덮인 설경의 눈부신 백색과 날카로운 스케이트 칼날이 난무하는 빙판, 그 순백의 색채는 선연하게 튀는 붉은 피와 대비되어 인물의 깊고 지독한 상처를 드러내 보이는 배경이다. 과거에 당한 성폭행으로 어리고 여린 영혼이 갈가리 찢어지고, 피흘리는 그 상처를 다시 봉합하려는 시도에서 복수욕망을 떼어낼 수 없으리라. 모든 것을 용서하고, 다 내 탓으로 돌리라는 종교적 가르침은 청아한 찬양처럼 듣기 좋다. 그러나 그곳에는 지독한 아픔 자체를 인정하고 보듬는 진실이 부족하다. 대사가 암시하듯이, 스스로 자신을 구원해야 한다는 것은 신을 믿는 것보다 힘든 일이다.

그래서 라라는 상상으로, 글쓰기로 자기 구원을 소망하지만, 그럴수록 분열이 발생한다. 절절한 내면을 감추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아가더라도 몸은 정직하다. 라라의 손에 오는 마비증상, 상상 속에서 벌어지는 피 튀기는 복수극. 냉정과 격분이 공존하는 인물의 분열적 상태는 황량하고 차가운 미학으로 치장된 공간 속에서 강력한 상징성을 드러낸다.

어둠 속에서 성폭행의 깊은 상처에 시달리는 인물의 내면을 드러내는 일은 침묵의 카르텔을 깨는 예술적 실천이다. 이 영화에서 공간 미학적 상징성을 통해 인물의 내면을 재현해내는 영화적 재능을 보여준 김아론 감독은 그 후 만든 ‘헬로우 마이 러브’도 최근 개봉돼 두 편을 선보이며 등장한 주목할 만한 신인감독이다.

동국대 교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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