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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석의 진료실 옆 영화관] '선샤인 클리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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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10-09 14:31:08 수정 : 2009-10-09 14:3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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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문제 똑바로 응시해야 과거의 상처 치유할 수 있어 1988년의 늦가을 어느날 늦은 밤. 평소 자주 들르던 길모퉁이 가게 앞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뭔 일이래? 이 집 가족이 모두 방에다 연탄가스를 피워놓고 죽었다잖아.” “죽으려면 혼자 죽을 일이지 왜 애꿎은 자식들은 다 데리고 갔대?” 가게 문에는 주인 아주머니가 붙였다는 대자보가 쓸쓸하게 나부끼고 있었는데 자식들과 함께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는 자신의 한맺힌 사연을 가득 담은 유서였다. 필자는 이후로도 꽤 오랫동안 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해맑게 웃던 그집 아이들 얼굴과 당시 유서 문장들이 떠올라 마음이 신산하곤 했다. 그리고 얼마 전 내 어머니로부터 그 가게 아이들 중 하나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는 소식을 뒤늦게 접하게 됐다.

‘선샤인 클리닝’은 한 자매에 관한 이야기다. 싱글맘 언니는 단순 청소일을 하면서 8살짜리 아들을 키우고 있다. 아침마다 ‘나는 강하다. 나는 승리자다’를 외쳐보지만 그녀는 고교 때부터 이어져온 유부남과의 ‘불륜’조차 끝낼 자신이 없다. 어느 일 하나 제대로 해본 적 없는 동생은 한때 약물에 의존해야 할 정도로 현실도피증에 시달리는 백수다. 아들의 사립학교 등록금이 필요했던 언니는 동생과 함께 ‘용역비가 꽤 센’ 사건·사고 현장 청소 일에 뛰어든다.

사건 현장 ‘사망자’ 대부분은 삶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이다. 자매는 죽음으로 더럽혀진 현장을 깨끗이 청소하는 일을 담당할 뿐이지만 오히려 남겨진 가족의 슬픔과 절망이 더 신경 쓰인다. 이들의 가슴속에도 그들과 비슷한 아픔이 아로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신나게 마당에서 뛰어놀다 엄마를 찾으로 집 안으로 들어온 어린 자매가 발견한 것은 따뜻한 엄마의 품이 아니라 스스로 목을 매 싸늘하게 변한 엄마의 시신이었다. 죽은 사람의 집 청소를 시작하면서 자매는 세월이 그렇게 흘렀음에도 어머니의 자살이라는 어린 시절 충격으로부터 한발짝도 성장하지 못한 자신들을 발견하게 된다.

너무나 깊은 상처는 바닥을 쳐야만 치유되는 것일까. 영화 후반부, 자매는 큰 파국을 맞는다. 하지만 그 파국은 자매가 자신들을 옥죄던 굴레를 풀고 새롭게 출발하는 계기가 된다. 동생이 조카에게 “넌 세상에서 제일 멋진 사생아야”라고 선언하면서 껴안아 주는 장면은 이들 자매가 긍정으로써 지난날의 상처를 치유해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주워들은 지식에 따르면 어린아이가 건강한 자존감을 가진 성인으로 자라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양의 사랑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부모의 죽음이나 불화 등으로 상당수 가족의 아이들은 어른이 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긍정하지 못하면 자신감 결여나 자기비하의 감정에 시달리게 된다. 자신의 문제를 똑바로 응시하고 그 문제가 결코 자신만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야만 비로소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얘기다.

‘선샤인 클리닝’은 사람이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만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아름답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어린 시절 가게에서 홀로 살아남았다는 그 아이를 생각했다. 그 아이는 지난날의 상처와 충격을 극복하고 올바른 자존감을 지닌 어른으로 무사히 잘 자랐을까. 눈매가 유독 예뻤던 그 아이는 분명 그랬을 거라고 기대해본다.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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