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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석의 진료실 옆 영화관] 드래그 미 투 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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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7-02 17:59:43 수정 : 2009-07-02 17:5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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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면 악령이 지옥 끌고가…누가 내 대신 저주를 받게 할까
우리의 여름 극장가에는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특색이 있다. 평상시에는 보기 힘든 공포영화가 여름 특수를 노리고 잇달아 개봉하는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공포영화들이 찾아오고 있다.

‘여고괴담’ 시리즈도 벌써 다섯 번째 이야기로 돌아왔다. 사실 그간 ‘여고괴담’ 시리즈는 홍보하는 것과는 달리 그다지 공포스럽지는 않았다. 실제 ‘여고괴담:두 번째 이야기’는 무섭지 않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는데 제작사의 항변 논리는 확고하다. “무섭게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소리 지르고 무서운 공포가 얼마나 유치하고 공허한가”라고. ‘괴담’보다는 ‘여고’에 방점을 찍었다는 말이겠지만 곧이곧대로 믿긴 어렵다. ‘무섭게 만든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포영화를 좋아해서 지금까지 수백편의 공포영화를 봤지만 정말로 무서웠던 영화는 손에 꼽을 정도다. 제작자 입장에서는 적당히 화면을 피로 범벅을 만들어 놓고 긴 머리를 늘어뜨린 귀신이 극단적으로 관절을 꺾어 주면 어느 정도 무서울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장면들은 관객에게 공포스러움보다는 식상함을 안기기 십상이다. 제대로 된 공포영화를 만난다는 건 말 그대로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다. 공포영화 마니아로서 터득한 노하우 하나. 공포는 관객의 예상을 어긋나면서 생기는 불안감을 관객에게 익숙지 않은 방식으로 풀어낼 때 확보된다. 그렇다고 관객이 불편하다고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

‘드래그 미 투 헬’을 봤다. 오랜만에 만나는 저예산 공포영화의 수작이라 일컬을 만하다. 크리스틴은 한 노파의 대출연장을 거절하고 나서 지독한 저주에 걸려든다. 그 저주로 그녀의 삶은 파탄이 났지만 더 끔찍한 건 새벽이 되면 악령이 자신을 지옥으로 끌고 간다는 것이다. 점술사는 마지막 방법을 알려준다. 저주에 걸린 단추를 다른 사람에게 주면 그 사람이 대신 저주에 걸리게 된다는 것. 크리스틴은 이제 그 희생양을 찾아 나선다. 그 순간 관객들은 크리스틴이 돼서 누가 내 대신 저주를 짊어져야 할지를 고민하게 된다. 단순히 죽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라면 선택하기 그나마 편하겠지만 문제는 지옥에 끌려간다는 것이다.

어릴 적 눈에 다래끼가 나면 어른들이 해주는 말이 있었다. 다래끼 난 눈의 눈썹을 뽑아서 사람들이 다니는 길에 놓고 위에 돌을 얹어 놓고 나서 누군가 그 돌을 차면 그 사람에게 다래끼가 옮겨 간다고. 그 말을 믿고 다래끼가 나면 열심히 눈썹을 뽑아 돌 밑에 넣었고 다래끼가 사라지면 누군가에게 옮겨간 거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그건 불특정의 누군가를 향한 행동이었기 때문에 실천하기 쉬웠지만 그 눈썹을 누군가를 콕 집어서 얼굴을 보며 건네야 하는 거였다면 어땠을까?

살다 보면 ‘폭탄 돌리기’처럼 언젠가는 뻥하고 터질 문제를 일단 남에게 혹은 나중으로 돌려놓고 보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일단 지나간 폭탄으로 그 순간 걱정에서 해방되지만 언젠가 그 폭탄이 돌고 돌아서 결국 내 앞에서 터질 수도 있을 것이다. 현대인은 그래서 주기적으로 불안에 빠진다. ‘드래그 미 투 헬’의 공포는 바로 이러한 현대인의 불안을 적확하게 짚은 데서 기원한다.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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