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괴담’ 시리즈도 벌써 다섯 번째 이야기로 돌아왔다. 사실 그간 ‘여고괴담’ 시리즈는 홍보하는 것과는 달리 그다지 공포스럽지는 않았다. 실제 ‘여고괴담:두 번째 이야기’는 무섭지 않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는데 제작사의 항변 논리는 확고하다. “무섭게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소리 지르고 무서운 공포가 얼마나 유치하고 공허한가”라고. ‘괴담’보다는 ‘여고’에 방점을 찍었다는 말이겠지만 곧이곧대로 믿긴 어렵다. ‘무섭게 만든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포영화를 좋아해서 지금까지 수백편의 공포영화를 봤지만 정말로 무서웠던 영화는 손에 꼽을 정도다. 제작자 입장에서는 적당히 화면을 피로 범벅을 만들어 놓고 긴 머리를 늘어뜨린 귀신이 극단적으로 관절을 꺾어 주면 어느 정도 무서울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장면들은 관객에게 공포스러움보다는 식상함을 안기기 십상이다. 제대로 된 공포영화를 만난다는 건 말 그대로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다. 공포영화 마니아로서 터득한 노하우 하나. 공포는 관객의 예상을 어긋나면서 생기는 불안감을 관객에게 익숙지 않은 방식으로 풀어낼 때 확보된다. 그렇다고 관객이 불편하다고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
‘드래그 미 투 헬’을 봤다. 오랜만에 만나는 저예산 공포영화의 수작이라 일컬을 만하다. 크리스틴은 한 노파의 대출연장을 거절하고 나서 지독한 저주에 걸려든다. 그 저주로 그녀의 삶은 파탄이 났지만 더 끔찍한 건 새벽이 되면 악령이 자신을 지옥으로 끌고 간다는 것이다. 점술사는 마지막 방법을 알려준다. 저주에 걸린 단추를 다른 사람에게 주면 그 사람이 대신 저주에 걸리게 된다는 것. 크리스틴은 이제 그 희생양을 찾아 나선다. 그 순간 관객들은 크리스틴이 돼서 누가 내 대신 저주를 짊어져야 할지를 고민하게 된다. 단순히 죽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라면 선택하기 그나마 편하겠지만 문제는 지옥에 끌려간다는 것이다.
어릴 적 눈에 다래끼가 나면 어른들이 해주는 말이 있었다. 다래끼 난 눈의 눈썹을 뽑아서 사람들이 다니는 길에 놓고 위에 돌을 얹어 놓고 나서 누군가 그 돌을 차면 그 사람에게 다래끼가 옮겨 간다고. 그 말을 믿고 다래끼가 나면 열심히 눈썹을 뽑아 돌 밑에 넣었고 다래끼가 사라지면 누군가에게 옮겨간 거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그건 불특정의 누군가를 향한 행동이었기 때문에 실천하기 쉬웠지만 그 눈썹을 누군가를 콕 집어서 얼굴을 보며 건네야 하는 거였다면 어땠을까?
살다 보면 ‘폭탄 돌리기’처럼 언젠가는 뻥하고 터질 문제를 일단 남에게 혹은 나중으로 돌려놓고 보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일단 지나간 폭탄으로 그 순간 걱정에서 해방되지만 언젠가 그 폭탄이 돌고 돌아서 결국 내 앞에서 터질 수도 있을 것이다. 현대인은 그래서 주기적으로 불안에 빠진다. ‘드래그 미 투 헬’의 공포는 바로 이러한 현대인의 불안을 적확하게 짚은 데서 기원한다.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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