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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오전 10시 서울남부지법 306호 법정. 판사의 주문이 나오자 피고인석에 선 제약업체 영업사원 A(40)씨가 숙였던 고개를 들어 짧은 한숨을 뱉었다. 고객의 잘못을 감싸려고 허위자백을 해 형사처벌을 받은 A씨가 2년여 만에 열린 재심 재판에서 ‘스스로 쓴 누명’을 벗는 순간이었다.
제약업계 매출 규모 10위권인 Y사 11년차 영업사원의 우여곡절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약업체와 의사 간 불법 리베이트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한 시기다. 같은 해 7월 말 회사 대표 유모씨가 리베이트 명목으로 16억여원을 여러 병원에 지급한 혐의로 기소되면서 이 회사 영업사원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광범위하게 진행됐다. 특히 회사에서 리베이트 명목으로 영업사원 측 계좌로 건너간 돈의 종착지가 최대 관심사였다.
결국 사기 혐의로 기소된 A씨는 같은 해 10월 동료 영업사원 9명과 함께 벌금형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이에 참다 못한 A씨는 이듬해 ‘고객인 의사를 보호하기 위해 허위진술을 하고 처벌받은 게 억울하다’는 생각에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함께 형사처벌을 받은 동료 중 한 명이 약식명령에 대해 정식재판을 청구해 무죄를 받은 영향도 컸다.
재심을 청구한 지 2년여가 지난 지난해 10월 법원은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사기 혐의의 결정적 증거인 A씨 자백이 허위일 가능성이 받아들여진 결과다. 재심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Y사 B상무는 “매출액과 연동해 볼 때 (A씨가) 리베이트를 의사에 실제 지급했을 수 있다”고 증언했다. B상무가 다른 재판에서 “영업사원들이 편취 범행을 자발적으로 인정한 것은 ‘리베이트를 줬다’고 하면 거래처 원장이 조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고 한 증언도 법원의 무죄 선고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누명을 벗은 A씨는 홀가분할 법도 했지만 회사가 또다시 불법 리베이트 혐의로 된서리를 맞으면서 맘이 편치 못하다.
최근 경찰 수사를 받은 Y사는 영업사원과 의사 간 극단적인 갑을관계를 보여주는 이른바 ‘감성영업’을 한 것으로 드러나 사회적 논란이 됐다.
이 업체 직원은 거래 병원 의사를 상대로 빵 배달이나 고장 난 수도꼭지 수리, 형광등 갈기, 어항 관리, 의사 가족 픽업 등 마치 ‘머슴’처럼 온갖 허드렛일까지 도맡아 처리했다고 한다.
제약업계의 한 관계자는 26일 “‘절대 갑’인 의사에 대한 굴종적 태도가 영업사원의 기본 자질로 요구되는 게 이 바닥의 현실”이라며 “오죽했으면 A씨가 죄까지 대신 짊어지려고 했겠느냐”고 지적했다.
김승환 기자 hw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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