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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찬의 軍] 김정은이 핵과 미사일을 포기할 수 없는 진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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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6-25 15:00:00 수정 : 2016-06-26 09:5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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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국제사회의 거듭된 경고와 제재에도 불구하고 핵과 장거리 미사일 전력 증강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북한을 ‘동방의 핵대국’이라 칭하면서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가는 길을 활짝 열었다. 비록 실패했지만 지난 4월부터 6차례에 걸쳐 무수단 중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를 시도하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를 단행한 것은 핵무기 보유에 대한 북한의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그렇다면 김 위원장은 왜 그렇게 핵에 집착할까. 미국과 대등한 지위에서 북-미 협상을 진행해 체제 안전을 보장받으려는 것일까. 아니면 그보다 더 복잡한 정치적 계산이 숨어있을까. 그것은 정권 기반이 취약한 독재자와 군의 관계에 해답이 숨어있다.

◆ 독재자의 양날의 칼, 군부

나치 독일의 무장친위대(SS).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90만명이 넘는 대규모 군대로 성장했다.
민주적인 방식으로 권력을 얻지 않은 지도자들은 대개 무력을 등에 업은 경우가 많다.

구소련의 레닌, 쿠바의 카스트로, 중국의 마오쩌둥 등은 잘 훈련되고 조직된 무장집단을 이끌고 정권을 장악했다. 나치 독일의 히틀러와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는 나치당과 파시스트당의 당원들을 통해 권력을 쟁취했지만 군부의 지지를 받아 기반을 다졌다.

무력을 통해 권력을 장악한 독재자들이 가장 경계하는 집단은 군부다.

강력한 조직력과 최신 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고도의 교육을 받은 엘리트들이 집결한 군은 잠재적인 쿠데타 세력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후진국의 경우 군이 항만이나 통신, 공항,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SOC) 관리도 맡고 있어 사회적 영향력도 크다.

이러한 점 때문에 독재자들은 권력을 장악한 후 군부를 극도로 경계했다.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케이틀린 탤머지 교수는 21일 서울 국방컨벤션에서 열린 ‘미래전쟁과 육군력’ 포럼에서 이라크 독재자 사담 후세인의 일화를 소개했다.

탤머지 교수에 따르면 후세인은 생전 “이라크군은 나에 대항해 음모를 꾸밀 수 있는 유일한 세력으로 이라크군은 애완용 호랑이와 같아서 이들의 눈과 이, 턱을 때어내야 한다”며 이라크 군부에 불신을 나타냈다.

독재자가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는 군부의 지지와 충성심이 있어야 한다. 고대 로마 제국 황제들도 원로원과 군의 지지가 없으면 옥좌를 유지할 수 없었다.

하지만 군부는 언제든 자신에게 칼을 들이댈 수 있는 힘과 잠재력을 갖고 있다. 때문에 독재자들은 군을 관리하고 견제하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동원했다.

◆ 견제, 숙청, 측근 인사까지…군 관리 백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사진=노동신문
군부를 믿기 어려웠던 독재자들은 군의 쿠데타 의도를 무력화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다.

가장 쉬운 방법은 군 수뇌부에 대한 숙청이다. 1930년대 중반 구소련의 스탈린은 군 현대화의 선구자로 항공력과 기갑전력을 이용해 적 후방의 방어력을 돌파하는 ‘종심작전이론’ 창시자인 미하일 투하체프스키 원수를 비롯한 4만명 이상의 군 지휘관들을 숙청했다. 히틀러 역시 1944년 7월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의 암살 미수 사건 직후 에르빈 롬멜 원수를 비롯한 군부 엘리트들을 제거했다.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인물들로 군 수뇌부를 구성하는 경우도 있다. 사담 후세인은 수니파 지역인 티크리트 출신 장교들로 수뇌부를 채웠다. 바샤르 알 아사드의 시리아 정부군도 핵심은 시아파의 분파인 알라위파 장교들이 대부분이다. 북한 역시 항일무장투쟁이나 6.25 참전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후손들이 군을 장악하고 있다.

군과 동등한 지위의 무장집단을 별도로 두기도 한다. 히틀러는 프러시아 전통을 이어받은 독일 국방군을 완전히 장악하기는 어렵다고 보고 나치당의 통제를 받는 ‘무장친위대’(SS)를 창설했다. 2차 세계대전 말기에는 나치당을 관리하던 마틴 보어만을 수장으로 한 200여만명 규모의 ‘국민돌격대’를 만들기까지 했다. 사담 후세인도 정부군과 별도로 ‘공화국수비대’를 만들어 정권 친위대로 삼았고, 무아마르 카다피 역시 아프리카 흑인 용병부대를 따로 고용했다.

◆ 김정은의 군 견제 장치는 핵과 미사일

 
지난해 5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사출시험 직후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노동신문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다른 나라의 독재자들이 주로 사용한 방법에 자신만의 새로운 방식을 혼합했다.

김 위원장은 집권 직후인 2012년 리영호 당시 군 총참모장을 숙청했다. 지난해에는 현영철 당시 인민무력부장을 처형했고, 리영길 총참모장도 경질됐다. 야전군 엘리트들이 숙청되는 동안 북한군은 당 출신인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장악했다.

공포정치로 북한군을 ‘길들이는데’ 성공한 김 위원장으로서는 군부가 다시 전면에 나설 여지를 차단해야 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 ‘선군정치’로 군의 위상과 권한이 급상승하면서 비대해진 군부를 제어하려면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일어날 가능성을 낮춰야 한다. 북한군은 휴전선 일대의 국지도발에서 승리하는 정도의 군사적 업적만 기록하고, 남은 여력은 경제활동에 집중시켜 한눈을 팔지 못하게 해야 군부 쿠데타 가능성이 크게 낮아진다.

지난해 10월 열병식에 등장한 KN-08 대륙간탄도미사일. 사진=노동신문
이를 위해 김 위원장이 선택한 카드가 바로 핵과 미사일이다. “핵보유국이 먼저 공격받은 적은 없다”는 명분을 들어 핵과 그 투발수단인 탄도미사일 전력을 갖추면 재래식 전력에 투자할 필요성은 줄어든다. 전력 투자가 감소하면 북한군의 전투력이 떨어지지만 체제 안보는 핵과 미사일 덕분에 탄탄해진다. 전방에 주둔시킬 필요가 줄어든 북한군 병사들은 경제건설을 위해 공사현장이나 외화벌이 사업소로 보내고, 간부들은 사업권을 주어 교역에 매달리게 하면 외화도 벌고 쿠데타 위험도 낮추는 일석이조 효과다. 핵과 미사일 개발을 ‘군사강국’으로 포장해 절대군주의 위엄을 더하는 데 활용하는 것은 보너스다.

사격훈련중인 북한군의 주체포. 사진=노동신문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의 비핵화를 요구하는 국제사회의 목소리가 김 위원장에게 닿을 리 없다. 집권 5년차로서 권력 기반을 다지는 데 집중하는 김 위원장에게 핵과 미사일은 믿을 수 없는 군부를 제어하고 자신의 위엄을 돋보이게 하는 수단이다. ‘체제 안보’가 무엇보다 중요한 김 위원장은 핵과 미사일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핵과 미사일을 포기하는 순간, 정권을 유지할 힘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한반도 비핵화가 점점 먼 미래의 일로 인식되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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