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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미술 사랑했던 야나기 기획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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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서 7월21일까지 열려 “애수 어린 미가 그들의 친한 벗이었다…만약 저 유명한 셸리의 구절이 진실이라면 그 미는 미의 극치일 것이다.”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1889∼1961)는 조선의 미술을 이렇게 평가했다. 그에게 조선의 아름다움은 비애 혹은 슬픔의 표현이었다. 

생전의 야나기 무네요시.
이런 이해가 타당한가와는 별개로 야나기가 조선의 미술을 사랑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일제의 광화문 철거를 강력하게 반대하기도 했다. 조선 미술에 대한 이해는 동양사상과 종교의 구태의연한 전통을 극복하기 위해 서구문화와 기독교 사상을 추종했던 야나기의 사상이 동양으로 회귀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서구예술에서 시작해 조선·일본·중국으로 관심을 넓혀간 야나기의 사상과 활동을 접할 수 있는 ‘야나기 무네요시’전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에서 7월21일까지 열린다.

1910년에 창간된 잡지 ‘시라카바(白樺)’는 당시 유럽 예술계의 정보와 새로운 경향을 수용하려는 일본 예술계의 풍조를 대변한다. 야나기는 기획·편집·표지디자인 등을 맡으며 잡지에서 다양한 역할을 했다. 1914년 발간된 단행본 ‘윌리엄 블레이크’는 이런 관심의 결과였다.

야나기의 관심이 본격적으로 조선을 향한 것은 조각가였던 아사카와 노리타카로부터 1916년 8월 소개받은 조선 ‘철사 운죽문 항아리’를 구입하면서부터였다. 21번이나 조선을 다녀간 그는 특히 도자기에 관심이 많아, “조선의 도자기에는 정(情)과 화(和)가 있어 보는 사람의 마음이 아름답게 되는 신비가 있다”고 평가했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1916년 철사 운죽문 항아리를 접하면서 조선 도자기의 아름다움에 심취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또 당시 주목을 받지 않던 가구·회화·자수·목공예 등 공예품에도 큰 관심을 기울였다. 이런 공예품에 조선 민족의 정서가 반영되었다고 믿었고, 일제의 탄압으로 훼손된 조선 전통문화의 소실을 우려해 1924년 조선민족미술관을 설립했다. 1920년대 야나기의 조선 미술에 대한 인식은 ‘무심’ ‘무작위’와 같은 개념으로 수렴되어 일본이 창출한 조선의 이미지에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고,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시회에는 야나기가 만든 ‘민예(民藝)’의 개념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들도 있다. 그는 1924년 모쿠지키의 불상을 조사하면서 무명의 사람이 제작한 평범한 물품이 진정한 아름다움을 담을 수 있다는 관점을 만들어 낸다. 5000원. (02)2022-0600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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