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중국 걷기여행] ‘꼭꼭’ 숨은 스토우청행 버스를 찾아라!

입력 : 2011-12-05 14:08:49 수정 : 2011-12-05 14:08:49

인쇄 메일 url 공유 - +

리장고성에서 동북쪽으로 120km. 히말라야 산맥의 일부인 위룽쉐산(玉龍雪山)을 지나 진사강의 깊고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면, 용의 머리처럼 우뚝 솟은 암석 산이 나타난다. 해발 고도는 1,720m. 평평한 산 정상에 모든 것이 돌로 이뤄진 작은 마을이 있다. 커다란 돌들이 촘촘하게 깔린 골목을 따라 돌로 지은 집, 돌로 쌓은 담벼락, 돌계단, 돌대문이 줄줄이 이어진다. 주민들은 또 돌침대, 돌베개, 돌로 만든 탁자, 돌로 만든 책걸상에, 돌로 만든 항아리, 심지어 돌로 만든 컵까지, 전부 돌로 만든 물건을 애용한다고 한다. 이쯤 되면 조물주가 “이 마을 사람들은 내 특별히 돌로 만들었다네.” 해도 믿겠다.

바로 110km 트레킹의 베이스캠프가 되어줄 ‘스토우청(石頭城)’의 전설 같은 실제 이야기다. 아니나 다를까 마을 이름에도 돌이 들어간다. 여행 떠나기 며칠 전부터 내 머릿속은 온통 이 스토우청으로 도배되었다. 윈난은 언제 여행하더라도 사계절 모두를 경험하게 된다. 더군다나 지금은 11월 초순. 겨울이 코앞이다. 산과 협곡, 그리고 숲을 넘나드는 트레킹이 더 늦어지면 위험하다는 판단이었다. 쿤밍(昆明)에 도착하자 서둘러 리장(麗江)에 온 것도 그 이유다. 리장은 스토우청으로 가는 관문으로, 차편을 찾아내는 게 무엇보다 시급했다. 출발 전 중국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보고, 지인에게서 받은 트레킹 정보를 몇 번이나 꼼꼼히 읽어보아도, 그 어디에도 ‘교통편’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그것이 내게는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만 같다.

새벽에 리장 기차역에서 내린 나는 고성 안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가방을 내려놓고 곧바로 고성으로 나왔다. 발길 뜸한 이른 아침의 고성이 고즈넉하니 좋다.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아 반들반들 윤이 나는 골목길이 정겹다. 저 멀리 푸른빛으로 빛나는 새하얀 위룽쉐산을 보니까 ‘아, 내가 리장에 왔구나!’ 실감이 난다.

아름다운 풍경에 설레는 마음과 조급한 마음이 한데 뒤엉킨다. 오늘 안에 차편을 찾지 못하면 트레킹 출발 날짜도 하루 늦어진다. 시간 낭비에 돈 낭비하지 않으려면 바지런을 떨어야지. 그래도 일단 밥부터 먹어야겠다. 문을 연 식당으로 들어갔다. 미셴(쌀국수)과 리장바바(우리의 호떡과 비슷)를 주문하면서 직원에게 물었다.

“스토우청 가는 버스 어디서 타요?” 했더니 맙소사!
“스토우청이 어딘데요?” 하고 반문한다.

이번엔 서점에서 지도를 사면서 주인 할아버지께 여쭸다. 마침 할아버지가 스토우청을 잘 알고 계셨다. 매일 아침 9시경 흑룡담공원 옆 골목에서 차가 출발한다고 했다. 이렇게 술술 풀릴 문제인데 괜히 걱정했네. 하지만 불행히도 그것은 ‘열두 고개 수수께끼’의 서막이었다는 거.

할아버지가 알려주신 곳에 갔더니 그 차 사라진 지 오래란다. 벌써 1년이 넘었단다. 주변 상인들에게 물어물어 마오쩌둥 동상이 서있는 광장에 갔다. 그곳에는 리장의 근교 여행지로 출발하는 다양한 노선의 미니버스들이 정차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애타게 찾는 스토우청 행 버스는 보이질 않는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기사양반에게 물었더니 “300위안만 내쇼. 내 지금 당장이라도 데려다주겠소.” 엉뚱한 소리를 한다.

덕분에 팔자에도 없는 리장 시내를 한 바퀴 일주했다. 시외버스터미널이란 간판이 붙은 곳에는 모두 가보았다. 하늘로 솟았나, 땅으로 꺼졌나, 어디에도 스토우청행 버스는 없었다. 도대체 행방이 묘연하다. 그 순간 ‘스토우청이 과연 실제로 존재하는 곳일까?’ 의문이 들었다. 머리가 멍한 게 아무래도 귀신에 홀린 기분이다.
 잠시 쉬려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런데 세상에.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숙소의 젊은 여성 매니저가 내가 하려는 트레킹이며, 스토우청 가는 방법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게 아닌가.

“고성 앞에서 8번 버스를 타고 상산시장(象山市場)에서 내려요. 시장 입구에서 매일 아침 9시쯤 차가 출발해요.”
“당장 확인해야겠어요.”
“소용없어요. 아침에 이미 떠났는걸요.”

그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상산시장으로 출발. 그놈의 버스 찾아 온 동네를 헤맸더니, 눈이 아닌 귀로라도 생생한 목격이 필요했다. 먼저 이곳 ‘토박이’로 보이는 사람을 물색했다. 때마침 시장 입구 노천에서 장기를 두고 있는 중년의 아저씨들이 포착됐다. 다가가 여쭸다. 아저씨들의 증언이 매니저와 일치한다. 매일 아침 9시에서 10시 사이에 차가 출발한단다. 8시까지 오면 확실히 탈 수 있을 거라 호언장담했다.

이제야 마음이 놓인다. 수수께끼를 해결하고 나니 비로소 시장기가 몰려온다. 두 시가 넘었는데 나는 아직 점심도 안 먹었다. 시장에 왔으니 현지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식당에서 미셴을 주문했다. 아침에 고성에서 15위안 주고 먹은 미셴이 여기서는 5위안. 관광지를 벗어나니 음식도 착해진다. 국물은 훨씬 개운하고 면발은 더 탱글탱글하다. 양도 더 푸짐하다. 건너편 즉석에서 콩을 갈아 두유로 만들어주는 가게에서 3위안짜리 두유도 하나 샀다. 따뜻하고 고소한 게 유명 체인점의 커피보다 맛나다. 속까지 든든하다. 내가 한결 생기발랄해진 표정으로 숙소로 돌아왔을 때 매니저가 다가와 물었다.

“진짜 그 트레킹을 할 생각이에요? 일행도 없이, 그것도 여자 혼자서?”
“그게 여기 온 목적인걸요.”
그녀는 고개까지 절레절레 흔들며 일장연설을 했다.

“자연을 걷고 싶으면 호도협 트레킹을 하세요. 성스러운 호수 루구호가 보고 싶은 거면 버스 타고 가면 되고요. 110km 트레킹, 거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에요. 해발 고도가 높아서 아주 힘들어요. 더군다나 당신은 평지에서 왔잖아요. 이제껏 그 길을 걷겠다고 리장에 온 사람 중에서 시도조차 않고 떠난 사람이 태반이에요. 걱정이 돼서 하는 말입니다. 오늘밤까지 잘 생각해보세요. 내일 아침이면 아마 당신 마음도 바뀌어 있을 걸요.” 하더니 싱끗 웃는다.

그 길이 그렇게 어마어마한 길인가? 내가 800km에 달하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겠다는 것도 아니고,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4년에 걸쳐 걸은 12,000km의 실크로드를 걷겠다는 것도 아닌데. 고작 사나흘에 걸쳐 110km를 걷는 거다. 그런데 오늘 처음 만난 저 여인은 나를 얼마나 안다고 큰소리인지. 용기를 북돋워주기는커녕 포기하라 종용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지금 트레킹의 베이스캠프 스토우청으로 가는 관문 리장에 와 있다. 시작이 반이라면, 첫 걸음을 뗀 지 벌써 오래다. 트레킹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여행작가 고승희( blog.naver.com/koaram77)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전지현 '단발 여신'
  • 전지현 '단발 여신'
  • 아이유 '눈부신 미모'
  • 이주빈 '깜찍한 볼콕'
  • 신은수 ‘심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