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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사흘 일하면 다행 고시원비 내기도 힘들어
일용직 77%가 40대이상 "이러다 노숙자 전락" 한숨
“겨울이면 일거리가 없어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태반이에요. 일주일에 세 번 일 하면 다행이지.”

올겨울 첫 한파가 몰아친 24일 오전 4시, 서울 구로동 인력시장에는 살을 에는 칼바람을 뚫고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도로에 고인 물에는 살얼음이 얼었고, 입만 열어도 허연 입김이 새나왔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그제도, 서울 최저 기온이 영하 4도까지 떨어진 이날도 일용직 노동자들은 어김없이 하루벌이를 위해 이곳을 찾았다. 추위에는 이력이 난 듯 대다수가 점퍼 2개를 껴입고 목도리와 장갑, 마스크까지 챙겨 입었다. 그러나 눈빛에는 불안함이 서려 있었다. 전날도 허탕을 쳤다는 목수 양모(49)씨는 “고시원비가 매달 25만원인데 한 달에 50만∼60만원 버는 게 고작이다. 오늘은 꼭 일을 해야 한다”며 연신 중얼거렸다. 한쪽에서는 삼삼오오 모여 낙엽과 종이상자가 타면서 나오는 매캐한 연기를 마시며 추위를 피하고 있었다.

오늘도 헛걸음 한파주의보가 내려진 24일 새벽 서울 남구로역 인력시장 앞이 일거리를 찾으려는 일용직 노동자들로 붐비고 있다. 동이 트는 순간까지도 일감을 찾은 이들은 소수에 불과했고, 대부분은 빈손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이재문 기자
인력시장을 파고드는 외국인 노동자와의 경쟁, 고질적인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을 견디는 ‘막노동자’에게 겨울은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추운 날씨 탓에 일감도 없고, 경쟁도 심해져 임금도 줄어든 탓이다. 대한건설협회가 전국 2000개 작업장을 대상으로 조사한 건설업 근로자의 1일 노임단가는 지난 9월 기준으로 12만9029원. 기능이 필요하지 않은 육체 노동을 하는 ‘보통인부’는 7만4008원이다.

인테리어 목수 박모(58)씨는 “평소 수수료, 세금 등을 빼고 일당 10만원 정도를 받는데, 겨울에는 평균 5000원 정도가 깎인다”며 “물가는 오르고 임금은 떨어져 겨울나기가 갈수록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건설 노동자의 고령화도 심해지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내국인 건설 일용직 노동자 126만187명 중 40대 이상이 77.4%를 차지했다. 인력사무소 관계자는 “한국인 인력시장 주류는 40대 중후반부터 50대 중반까지다. 현장에서 원하는 신진 인력 자리를 채우는 조선족과 외국인 노동자들이 이제는 50%를 넘는다”고 말했다. 일용직 노동자의 복지를 위해 1998년부터 시작한 건설근로자퇴직공제제도는 오히려 이들의 상실감을 키우고 있다. 건설업체에서 노동자 1명당 하루 4000원씩 퇴직금을 적립해 돌려주는데 1년에 250일 정도 일하면 100만원이 고작이다. 건설산업연맹 이영록 정책국장은 “3억원 이상 공공 공사나 100억원 이상 민간 공사 업체 등은 의무가입을 해야 하지만 전체 건설현장의 60% 정도에 불과하고 적립 일수도 적다”고 지적했다.

어느덧 새벽 어스름이 걷히고 어렵게 일거리를 찾은 노동자들은 봉고차를 타고 사라졌지만 남은 이는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일 없어?” 불안한 표정이 ‘역시나’ 하는 허탈함으로 바뀔 때가 돼야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뿔뿔이 흩어졌다. 발걸음을 돌리던 구모(55)씨는 “우리 인생은 바닥이야 바닥. 제일 힘든 이 세상의 바닥 말이야. 이러다 노숙자 되는 거지 뭐…”라며 한숨을 쏟아냈다.

이유진·김효실·박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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