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지검·경기경찰청·기무사·국가정보원 등으로 구성된 합동수사본부는 27일 북한에서 간첩교육을 받고 위장 탈북한 뒤 국내에 들어와 군 장교 3, 4명과 탈북자단체 간부 등에게 접근해 입수한 군사기밀을 북측에 넘긴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직파 간첩 원정화(34·여)씨를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합수부는 또 원씨에게 탈북자 명단 등 보안정보를 넘겨준 육군 모 부대 황모(27) 대위와 원씨에게 간첩 공작을 지시하고 원씨에게서 받은 정보를 북측에 제공한 원씨의 의붓아버지인 남파 간첩 김모(63)씨도 붙잡아 구속했다.
당국의 위장탈북 간첩 검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이외에 지난 10년간 적발된 남파 간첩사건은 2006년 7월 체포된 정경학(50) 사건이 유일하다.
〈관련기사 2·3면〉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소속인 원씨는 2001년 10월 재중동포를 가장해 남한 남성과 결혼해 국내로 들어온 뒤 국정원에 탈북자로 위장 자수했다. 원씨는 이후 군부대를 돌며 반공 강연을 하면서 알게 된 황 대위과 동거하는 등 경기 북부지역 부대 정훈장교 3, 4명과 교제하며 군사기밀을 빼낸 것으로 조사됐다. 원씨가 유출한 자료 중에는 모 사단 군사시설 위치도, 방공포부대 사진, 군사지도, 무기정보, 군관련 서류 등이 포함됐다. 원씨는 이 같은 군사기밀을 압축파일로 만든 뒤 이메일을 통해 중국의 북한 요원에게 빼돌린 것으로 확인됐다.
원씨는 기무사의 추천을 받아 52차례나 군 안보강연을 했으며, 중국의 북한 영사관에서 만든 북 체제 찬양 CD를 상영하고 “북핵은 자위용”이라고 발언하는 등 친북활동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원씨는 정부의 대북 정보요원 이모, 김모씨 등을 살해하라는 지시와 함께 암살 도구인 독약과 독침 등을 북측에서 건네받아 실제로 암살을 준비하기도 했다고 합수부는 설명했다. 원씨는 지난해부터는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탈북자들의 소재 등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일본까지 진출해 공작을 펼친 것으로 수사 결과 파악됐다.
원씨는 탈북자 출신이면서도 대북 무역을 하고 군 장교들과 교제하는 점 등을 수상하게 여긴 경찰이 3년 동안 내사를 진행한 끝에 결국 꼬리가 잡혔다.
원씨와 함께 구속된 김씨는 중국 내 북한 보위부 공작원과 수시로 접촉하면서 원씨에게 공작금을 제공하고 간첩 활동을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원씨는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군사기밀과 탈북자 정보를 관리하는 남성들에게 접근했으며, 황 대위는 원씨가 북한 보위부 공작원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지만 오히려 이를 숨겨주고 원씨에게 군 안보강사로 활동 중인 탈북자 명단을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합수부는 원씨의 간첩활동을 도운 인물 중에 경찰 공무원,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등이 더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이상희 국방장관은 이날 탈북위장 여간첩 사건에 현역 간부가 연루된 것과 관련해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친 것에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특별보안진단 작업에 착수하고 외부인의 군부대 출입통제 시스템을 정밀 점검하는 한편 장병 특별정신교육을 실시하기로 했다.
박병진·박호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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