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 당당하고 미·중 균형자 역할해야 외교·안보 분야는 이번 대선에서 이상하리만치 관심을 받지 못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북방한계선(NLL)을 포기하는 듯한 발언을 했는지 정도가 논란의 대상이 됐을 뿐이다. 한반도 주변의 급속한 환경변화나 남북관계,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보수·진보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대북정책임을 고려할 때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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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영 경희대 교수·국제 관계학 |
둘째, 대미·대중 관계를 두고 뚜렷한 입장 차이를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려다가 큰 저항에 부딪혔고, 이명박 정부는 한·미 동맹 강화를 중시하다가 역시 거센 반대에 직면했다. 그러니 양쪽 캠프 모두 차별성 있는 외교·안보정책을 들고 나오는 데 자신이 없었을 것이다.
셋째, 이명박 정부에서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이 강화되고 외교적 지평이 넓어진 사실을 굳이 인정하려 들지 않거나 이 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현 정부는 경제·외교 분야를 비롯해 개도국 지원, 녹색성장, 자원개발, 문화협력 등 분야에서 우리 외교의 지평을 넓히고 국제적으로 상당히 비중 있는 목소리를 내는 데 성공했고, 이것은 앞으로 한국 외교의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다.
그러면 박근혜 정부는 어떠한 외교·안보정책을 펼쳐야 할까. 대한민국을 둘러싼 외교·안보 환경의 엄중함을 생각하면 임기 초반은 물론이고 취임하기 전부터 심각한 결정을 해야 하는 어려움에 처할 것이다. 예컨대 대선 1주일 전에 장거리 미사일(로켓)을 발사한 북한을 어떻게 할 것인가. 더욱이 북한이 핵실험까지 강행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일본이 다케시마의 날을 중앙정부 차원의 기념일로 시행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중국이 반대해도 미국과의 포괄적 전략동맹을 확대하고 발전시킬 것인가. 패권경쟁을 벌일 태세를 갖추어 가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외교를 할 것인가.
모두가 어려운 문제이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할 때, 새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은 크게 보아 세 가지 원칙에 바탕을 두고 추진돼야 한다. 첫째,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며 대외정책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박 당선인이 강조하는 국민통합이 가장 절실한 분야 중 하나가 바로 외교·안보정책 분야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에 끌려다녀서도, 미국만 쳐다봐서도, 중국의 요구에 너무 민감해서도 안 된다.
둘째, 외교·안보 분야에서 국내정치적 이득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은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서 정치적 이득을 보려다가 북한에 끌려다녔다. 이명박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한·미 동맹 차원에서 접근함으로써 비판을 받았다. 미국과 중국 어느 한쪽을 굳이 우리가 나서서 선택하려 할 필요가 없다. 돈독한 한·미 관계는 중국에 우리나라의 가치를 높이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냉엄한 국제관계에서 냉철한 계산으로 국익을 추구하는 실리외교가 필요하다.
셋째, 한반도와 동북아의 코너에서 벗어나 글로벌 코리아로 외교지평을 넓혀야 한다. 우리 국민의 의식이나 기업의 활동은 이미 글로벌화됐다. 글로벌화에 우리의 국익이 걸려 있고, 동북아에서 우리의 위상도 글로벌화의 성공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승리의 기쁨을 누릴 당선인과 그 주변의 정책서클에 5년 후를 생각하며 국정설계를 하라고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래야만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실낱같은 가능성이나마 가질 수 있다.
정진영 경희대 교수·국제 관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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