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하게 밀어붙이면 탈날 우려 경제민주화가 연말 대선의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여야는 각자 경제민주화의 원조로 자처하며 치열한 주도권 싸움을 벌이고 있다. 특히 재벌개혁을 핵심과제로 설정하고 재벌총수의 사면을 제한하고 문어발식 확장을 막는 조치는 물론, 순환출자고리를 끊는 등 사실상 재벌해체를 뜻하는 법안까지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재벌개혁의 필요성이 큰 것은 사실이다. 10대 재벌기업의 매출액이 국내총생산액의 80%에 육박한다. 재벌 총수가 1%도 안 되는 지분으로 수십 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친인척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어 편법증여나 상속행위를 한다. 더욱이 마구잡이식으로 골목상권까지 침범해 중소기업과 영세상인을 사지로 내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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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필상 고려대 교수(전 총장)·경영학 |
둘째, 시기적으로 문제가 있다. 최근 우리 경제는 내우외환에 처했다. 밖으로 유럽의 재정위기가 확산해 수출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안으로 가계의 부도위험이 증가해 내수가 얼어붙었다. 이런 상태에서 재벌개혁을 무모하게 추진할 경우 경영권 불안과 투자위축으로 인해 경제가 더 심각한 침체에 빠질 수 있다.
셋째, 중소기업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없다. 재벌개혁을 추진할 경우 경제력 분산에 따른 대기업의 빈자리를 중소기업이 채워야 한다. 그러나 재벌개혁만 요란할 뿐 중소기업에 대한 대책이 안 보인다.
넷째, 경제민주화가 재벌개혁에 국한하고 있다.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는 재벌의 경제력집중뿐만이 아니다. 뇌물과 이권을 주고받는 정경유착 비리, 실업과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노동시장 양극화, 빈부격차를 심화시키고 서민을 희생양으로 만드는 금융제도 낙후 등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지 않는 한 경제민주화는 실효가 없다.
다섯째, 재벌개혁의 역설현상(paradox)이 나타날 수 있다. 역대 대선에서 집권한 정당은 예외없이 선거 전에는 표를 얻기 위해 강도 높은 재벌개혁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난 후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재벌기업에 도움을 청하고 공약의 실천을 뒤로 미루었다. 이에 선거 때마다 거꾸로 재벌기업의 경제력 집중이 심화되는 악순환이 나타났다. 이번 대선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경제민주화가 소외계층의 증오심을 부추겨 표를 얻는 정치적 포퓰리즘의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
경제민주화는 정치와 선거논리를 배제하고 순수경제논리에 따라 경제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비민주적 요소를 장기적이고 체계적으로 제거하는 방법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런 틀 안에서 경제민주화의 핵심과제인 재벌 개혁은 양면전략이 필요하다. 우선 부당하도급 근절, 일감몰아주기 차단, 중소기업업종 지정, 골목상권 보호 등 공정거래질서를 확립하는 조치는 즉각 시행에 옮겨 국민경제적 피해의 확산을 막아야 한다. 다음 순환출자 금지, 총액출자 제한, 금산분리 등 재벌기업의 지배구조를 단계적으로 바꾸는 개혁안을 법제화해야 한다. 여기서 중소기업을 살리는 획기적인 산업정책을 함께 펴 대중소기업 간 상생체제를 구축해야 함은 물론이다.
이필상 고려대 교수(전 총장)·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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