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공학은 미시세계로 빨려가
지금은 사라졌지만 10여년 전까지도 플로피디스크를 사용했고, 플로피디스크 중 용량이 가장 큰 것도 1.44메가바이트 정도였다. 요즘에는 웬만한 USB 메모리도 기가의 용량을 가지고 있으니 컴퓨터는 격세지감을 가장 빠르게 느끼게 하는 분야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킬로(kilo)는 1kg=1000g인 것처럼 103=1000을 나타낸다. 킬로에서 시작해 단위가 높아질 때마다 1000배씩 되어 메가(mega)는 106, 기가(giga)는 109, 테라(tera)는 1012이 된다. ‘메가’는 유명 학원과 영화관 이름을 통해 익숙해졌고, ‘기가’는 대만의 컴퓨터 회사인 기가바이트사의 상호에 들어 있으며, 최근에는 ‘테라’를 제목으로 하는 온라인 게임이 출시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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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미 홍익대 교수·수학 |
메가, 기가, 테라와 같이 단위가 커져만 가는 정보통신기술(IT)과 달리 생명공학의 첨단기술은 미세 단위를 다룬다. 마이크로(micro)는 100만분의 1, 즉 10-6을 나타내는데,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보듯이 상호에서 자주 쓰인다. 20세기가 마이크로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나노의 시대라고 할 만큼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 나노(nano)이다. 10-9을 나타내는 나노는 난쟁이를 뜻하는 그리스어 나노스(nanos)에서 유래했는데, 1나노미터(㎚)는 10-9m, 즉 10억분의 1m이다. 나노기술(NT)이란 나노미터 수준에서 물체를 만들고 조작하는 미세한 기술로 생명공학, 에너지,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된다.
차세대를 이끌어갈 기술은 기억 용량을 극대화하는 정보통신기술과 미세세계를 다루는 나노기술이므로, 크기상으로 아주 큰 것과 아주 작은 것의 양 극단을 추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파워즈 오브 텐(Powers of Ten)’은 제목 그대로 10의 거듭제곱의 위력을 느낄 수 있는 다큐멘터리이다. 1977년 제작된 이 영화는 시카고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남녀의 모습에서 출발해 점차 카메라를 멀리하면서 거시세계를 보여주고, 카메라를 가까이하면서 미시세계를 보여준다.
카메라가 대상과의 거리를 10초당 10배씩 늘려감에 따라 공원의 남녀는 점차 작아진다. 카메라가 멀어짐에 따라 우리나라 면적보다 넓다는 공원 옆의 미시간 호수는 하나의 점으로 사라지고 차례로 지구, 태양계, 은하계가 나타나면서 사라진다. 카메라가 1024m까지 멀어지면서 찍은 영화의 장면은 마치 우주선을 타고 가면서 밖을 내다보는 느낌을 준다. 이번에는 역으로 점차 카메라를 사람 가까이 해 10배씩 작은 부분을 확대하면서 10-18m까지 카메라를 접근시킨다. 처음에는 사람의 피부가 보이고 점차 세포, 세포의 핵, 원자, 원자핵이 보이게 된다.
정보통신기술과 나노기술의 발전 속에서 거시세계와 미시세계를 담은 30여년 전의 다큐멘터리를 다시금 찾아보게 된다.
박경미 홍익대 교수·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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