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정책 국민신뢰 먼저 회복해야 서민경제가 물가 공포에 휩싸이고 있다.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전반적인 물가 수준이 높은 상태에서 식품과 주거 등 기본 생계비용이 폭등하고 있어 정상적인 소비생활이 어렵다. 금융위기의 여파로 그렇지 않아도 침체 현상을 보이는 경제가 물가의 수직상승으로 인해 숨이 막히고 있다. 현 추세가 계속될 경우 물가 상승과 실업 증가가 악순환을 형성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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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상 고려대 교수(전총장)·경영학 |
물가불안이 다시 긴박해진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장기 호우로 농산물 가격의 급등세가 생활물가 상승을 주도하고 있다. 이달 들어 배추, 상추, 시금치 등 일상 채소류 가격이 50% 이상 올랐다. 채소는 물론 과일까지 산지 피해로 인해 가격이 계속 오를 전망이다. 지난해 가을 소비자물가 상승을 이끌고 경제를 혼돈에 빠뜨린 채소파동이 재연될 조짐이다. 설상가상으로 유류 가격이 치솟고 있다. 정유사들이 기름값을 내리기로 한 기간이 끝남에 따라 휘발유 값이 단숨에 2000원을 넘었다. 이와 맥을 같이해 공공요금도 줄줄이 오를 전망이다. 지난 6월 도시가스 물가는 전년 동월보다 10.4%나 올랐다. 버스와 지하철요금은 올해 하반기 중 15% 안팎까지 올릴 수 있다는 행정안전부의 지침에 따라 지방자치단체마다 앞다투어 올릴 계획이다. 무엇보다 가계를 압박하는 가장 큰 부담은 주거비 상승이다. 지난 2년 동안 전국 아파트 전셋값이 25%나 올랐다.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3.5배나 된다. 이 추세는 올 하반기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아파트 전셋값이 오르는 것은 기본적으로 공급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부동산시장 침체로 신규건설이 적은 반면 금리가 낮아 집주인들이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고 있다.
그렇다면 물가를 안정시킬 방법은 없나. 먼저 채소나 과일 가격을 안정시킬 수 있는 뾰족한 방안이 안 보인다. 산지의 출하 감소로 인해 가격 상승을 막을 방법이 마땅치 않다. 대안은 중국에서 수입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6월 중국의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4%나 상승했다. 이 중 식품 물가 상승률은 14%를 기록하고 있다. 수입가격이 비싸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안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유가 상승으로 인해 공공요금의 동결이 더 이상 어려운 상황이다. 더구나 인위적인 물량공급의 확대가 어려워 전셋값 안정화도 쉽지 않다.
물가 문제는 정공법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거시적으로 금리를 올려 유동성을 줄이고 환율을 낮춰 수입물가를 내려야 한다. 이 경우 이자비용 상승으로 경기가 위축되고 가계부채 부담이 커질 수 있다. 또 환율을 내리면 수출이 감소해 성장률이 떨어진다. 그러나 물가불안의 피해가 이보다 더 근본적이고 큰 것임을 감안할 때 단계적인 금리인상과 환율인하 정책은 불가피하다. 동시에 미시적으로 부처별로 물가관리 대상을 정해 독점이나 담합을 막고 과다한 가격 책정을 억제해야 한다. 또한 유통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해 중간업자의 매점매석과 폭리를 차단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정부의 신뢰 회복이다. 물가불안의 심각성을 정직하게 알리고 최선의 대응책을 선제적으로 마련해서 정부정책에 대해 국민이 믿음을 갖고 따르게 해야 한다.
이필상 고려대 교수(전총장)·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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