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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글쓰기 교육이 경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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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9-10 20:51:41 수정 : 2010-09-10 20:5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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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대법원판사 강연서 글쓰기 강조
고등학교 과제도 작문이 대부분
미국 대학 경쟁력의 뿌리도 글쓰기다. 안식년으로 하와이 대학에 온 지 1주일도 안 돼 새삼 깨우치게 된 사실이다.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소니아 소토마요르 판사의 강연회였다. 그녀는 오바마 대통령이 처음 자기 손으로 임명한 대법원 판사다. 중남미계 소수민족 출신으로 뉴욕의 저소득층 지역에서 성장했다. 성공의 길은 명문 프린스턴 대학에 진학하며 열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최우수 학생으로 프린스턴대를 졸업하고, 예일대 로스쿨에 장학금을 받고 진학한다. 그 뒤 2009년 대법원 판사가 되기까지 엘리트 법조인의 길을 걸어왔다. 

◇이재경 이화여대 교수 언론학
그녀의 강연은 C-SPAN 채널을 통해 접할 수 있었다. C-SPAN은 미국 케이블 회사들이 제공하는 공익채널이다. 의회나 백악관, 국무부 등의 중요행사를 편집 없이 중계한다. 또 공공성이 강한 토론회나 학술행사, 저자의 강연회 등도 광고 없이 내용 전체를 방송한다. 소토마요르 판사의 강연은 지난달 29일 일요일에 방송됐다. 그녀가 덴버대학 로스쿨을 방문해 학생들과 질문·응답한 1시간짜리 행사가 그대로 C-SPAN에 방송됐다. 한 학생이 강연 끝 무렵에 미국 대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를 물었다. 소토마요르 판사의 답변은 간결했다. 글쓰기 공부에 더 많이 노력하라고 했다. “나는 고등학교 때 학교 토론팀 대표였습니다. 변호사를 하면서 법정 변론도 잘했습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글입니다. 판사의 마지막 판결은 변호사가 써낸 변론문이 결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토마요르 판사의 말이다. 그녀는 법정 변론을 잘해도 최종 변론문이 나쁘면, 결과가 나쁠 수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프린스턴 대학 시절 경험도 얘기했다. 1학년을 지내며 다른 학생들보다 글 쓰기 능력이 뒤진다는 사실을 느꼈다. 그녀가 스스로 내린 처방은 기초부터 다시 공부하기였다. 2학년으로 올라가기 전 여름방학을 몽땅 글 쓰기 공부에 바쳤다. 철자법과 문법의 허점을 다진 뒤, 자신감이 커졌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었다.

이곳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둘째아이를 보면서도 미국 학교가 글 쓰기를 강조하는 사실을 절감한다. 둘째아이는 오후 4시쯤에 집에 오면 잠시 숨을 돌리고는 12시 넘어까지 여러 과목 숙제를 해야 한다. 그런데, 수학, 음악을 뺀 거의 모든 숙제가 글 쓰기 과제다. 이번 주 영어 과제는 밀란 쿤데라의 작품에 관한 내용이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포함된 ‘영원한 회귀’ 개념에 대한 학생의 생각을 정리한 짧은 에세이를 써야 했다. 역사 과목은 미국 독립혁명에서 강조된 ‘공화주의’를 설명하는 한 쪽짜리 글이었다. 심지어 생물 과목도 진화론과 창조론을 대비시켜 토론하는 글 쓰기 과제를 부과했다. 각 과목 교사들의 강의 계획서를 보면, 표절에 대한 경고가 모두 포함돼 있다. 매주 제출된 보고서들은 주말이면 평가 결과를 인터넷으로 통보해준다.

둘째아이는 매일 저녁 글쓰기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이제 개학한 지 3주가 지났으니, 갈 길이 멀다. 그러나 그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며 미국 교육이 글 쓰기를 얼마나 중요시하는지를 분명히 느낀다. 지난 주말 뉴스 가운데, 미국 교육장관이 미국 수능에 선택형 객관식 문제를 출제하지 않도록 연구시키기 위해 거액의 예산을 배정했다는 기사가 있었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검증하겠다는 취지로 역시 글쓰기 식 접근이 강화된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을 보면, 우리 현실이 걱정스럽다. 우리의 학교 교육은 논술을 빼면 글 쓰기 요소를 찾기 어렵다. 논술도 시험용으로 지나치게 정형화돼 있고, 그나마 학교가 아니라 학원이 주도한다. 우리도 소토마요르 판사 같은 다양한 분야 지도자들이 글 쓰기를 강조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교육이 바뀔 수 있다.

이재경 이화여대 교수 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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