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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한국 닮아가는 美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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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5-03 21:01:18 수정 : 2009-05-03 21: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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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연 워싱턴 특파원
미국에서 뚱딴지같이 한국 교육 예찬론이 나오고 있다. 그 진원지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4월27일 과학의 날 연설에서 “미국 학생들의 과학과 수학 능력이 한국 등 다른 나라 학생들에 비해 뒤지고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3월 초 교육 정책 연설을 하면서도 “미국 학교가 한국처럼 수업 시간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 교육과 한국인에 대해 뭔가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래서일까. 오바마 대통령 정부와 백악관에 역대 그 어느 정권 때보다 많은 한국계 인사들이 포진해 있다. 고경주 보건부 보건복지 담당 차관보, 고홍주 국무부 인권 차관보 후보자 형제, 리아 서 내무부 정책관리 및 예산 담당 차관보 등 정무직 3명과 특별보좌관, 비서관, 연락담당관 등 10여명의 한국계 인사들이 지근 거리에서 오바마 대통령을 보좌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실제로 미국 교육이 갈수록 한국 교육을 닮아가고 있다. 미국에서 점수따기식 공부, 과열 입시 경쟁, 사교육 의존, 입시 정책 혼선 등의 폐해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정부가 2001년부터 2009년 초까지 8년 동안 야심 차게 추진한 ‘한 명도 낙오하지 않는 법’의 요체는 학생들의 점수 올리기 정책에 다름 아니다. 정부가 학생들 점수가 나쁘면 소속 학교에 대한 지원금을 주지 않는 강압적인 방법으로 학생들 성적을 끌어올리려고 했다. 교육 개혁을 핵심 선거 공약으로 내세웠던 오바마 대통령도 입만 열면 미국 학생들의 성적을 탓하고 있다.

미국의 아이비리그 등 소위 명문대학 입시 경쟁은 해마다 그 도를 더해가고 있다. 아이비리그 대학 경쟁률이 이미 10 대 1을 넘었고, 지난해 입시에서 지원자 숫자가 줄잡아 10∼20%가량 늘었다. 그러다 보니 미국에서도 입시 학원이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있고, 한 시간 당 수십만원을 받는 고액 과외가 성행하고 있다. 대학 입시 전략을 짜주고, 대학에 제출하는 입학 관련 서류 작성 작업을 지원하는 대입 컨설팅업이 각광받는 비즈니스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미국에서도 대입 제도 변경에 따른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한국의 수능시험에 해당되는 SAT시험에 2007년부터 작문이 추가됐다. 또 올해부터는 SAT를 여러 번 치른 뒤 본인이 선택한 최고 점수를 대학에 보낼 수 있도록 했다. 그렇지만 일부 대학은 아예 SAT 점수 제출을 요구하지 않고 있다. 작문 점수는 객관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작문 성적을 고려하지 않는 대학도 많다.

입시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한국 특유의 주입식, 암기 위주 교육이 미국에서도 일정 부분 먹히고 있다. 미국 대학이 학생을 다양한 기준으로 선발하지만 합격, 불합격을 가르는 불변의 첫 번째 고려 사항은 성적이고, 단기간에 성적을 올리는 데 주입식, 암기식 교육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한국 교육 흉내내기 현상은 미국 부모들의 자식 교육 열기가 한국 부모들처럼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도 미국 교육 제도의 틀이 흔들리고 있다고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한국에 비해 절대 우위에 있는 미국 교육의 특성인 다양성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4000여개 대학은 한결같이 서로 다른 학생 선발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한국 교육의 핵심 문제는 부모의 과도한 자식 교육열을 입시 또는 교육 제도로 소화해 내기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어차피 그런 교육열을 억지로 통제하기 어려울 바에는 대학의 학생 선발 방식을 최대한 다변화함으로써 그 열기를 분출할 수 있는 다양한 통로를 제공해주는 게 어떨까.

국기연, 워싱턴 특파원 ku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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