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노약자·취약층 관심을 날씨가 부쩍 추워진 요즘이다. 절기상 1월 5일 소한은 작은 추위라는 뜻이지만 이는 중국의 절기에 맞춘 것으로 실제 한국은 대한보다 소한이 더 춥다. 특히 올해는 10년 만의 가장 추운 11월을 시작으로 추위가 기승을 부릴 전망이다. 지구온난화와 북극의 고온현상이 계속됨에 따라 한파와 폭설은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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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레나 이화여대 교수·의학물리학 |
영화 ‘가을의 전설’에서 주인공의 아버지 러들로 대령은 아들에 대한 상실감으로 중풍에 걸려 쓰러지는 것으로 묘사된다. 사실 그는 추운 날씨에 제대로 방한을 하지 않은 채 잠을 청한 탓에 뇌졸중에 걸렸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에는 가수 홍모씨가 갑작스럽게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평소 뇌졸중을 몇 차례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추위는 이와 같은 뇌졸중, 뇌출혈뿐만 아니라 심근경색의 발생률도 증가시킨다. 마치 뇌와 심장의 각기 다른 질환으로 분류되는 듯 보이지만 사실 병의 기전은 연관돼 있다. 바로 혈압의 상승이다.
날씨가 추워지면 피부 혈관은 몸의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수축하게 되고 그 결과 혈압이 상승한다. 순간적으로 혈압이 상승하면 약해져 있던 뇌혈관이 파열해 뇌출혈로 이어질 수 있다. 설상가상으로 추운 날씨에는 혈액의 성분에도 변화가 나타나 점도가 높아지고 콜레스테롤의 수치도 상승한다. 이처럼 좁아진 혈관과 변화된 혈액이 시너지 작용을 일으키면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으로 이어진다. 지난겨울 기록적인 한파로 2월 사망자 수가 전년 대비 19.6% 상승했고 3월의 꽃샘추위에는 8% 정도 사망자가 증가했다. 그러므로 평소 고혈압을 앓고 있는 사람, 또는 뇌혈관 및 심혈관 질환을 앓은 적이 있는 사람은 추위에 노출되는 것에 주의해야 하고 갑작스러운 운동으로 혈압을 올리는 일을 삼가야 한다. 특히 새벽녘의 운동과 같이 실내 온도와 실외 온도가 30도 이상 차이나는 환경에서 무리한 운동을 하는 것은 기저 질환을 가진 사람에게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한파에 대처하는 자세는 그 나라의 복지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가 될 수 있다. 14세기 고려시대에 문익점은 붓두겁에 목화씨를 숨겨 와서 우리 민족이 목화 재배를 활성화하는 데 이바지했다. 당시 면직물은 겨울철 추위를 이겨낼 신기술이었다. 문익점은 헐벗은 민족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절실히 생각했고 그 해결을 위해 실천한 지식인이었다. 이에 세종은 문익점을 ‘부민후(富民侯)’, 즉 백성을 풍요롭게 만든 이라 칭했다. 현대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추위가 기승을 부리면 사망률이 가장 크게 증가하는 부류는 몸이 약한 어르신과 사회 소외계층이다. 날씨가 추워질수록 자신과 가족의 건강에 더욱 유념해야 하겠지만 그와 동시에 주변의 소외된 취약계층은 없는지 다시 한 번 살펴보자.
밤하늘에 하얗게 내리는 아름다운 눈송이를 바라보는 순간에도 이 추운 겨울을 어렵게 나고 있을 이웃을 잊지 말자. 국민 모두가 추운 겨울을 건강한 몸으로 이겨낼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레나 이화여대 교수·의학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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