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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상 수상작 강희진의 ‘유령’ 출간

입력 : 2011-07-18 20:32:10 수정 : 2011-07-18 20:3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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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판 최인훈의 ‘광장’을 쓰고 싶었습니다” “‘누구냐? 넌…….’ 나는 거울을 향해 내뱉었다. 영화의 한 장면에서 나온 대사다. 근데, 정말 놈이 누군지 궁금하다. 얼굴을 유심히 살핀다. 내 얼굴이 아니다. 정말, 넌 누구냐? 자세히 보니 영 모르는 얼굴은 아니다. 하림인가? 그놈도 닮은 것도 같다. 누구면 어떤가?”(17쪽)

2011년 세계문학상 수상작 ‘유령’(은행나무 펴냄)의 주인공인 탈북자 ‘나’의 모습이다. ‘나’는 남과 북, 현실과 가상세계 등 이중의 경계 어디에서도 정체성을 찾지 못한다. 주철, 하림, 연쇄살인 용의자, 영웅 쿠사나기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우리 시대 ‘경계인’의 전형이기도 하다.

강희진(47)씨의 소설 ‘유령’은 탈북자 청년 ‘나’를 중심으로 연쇄살인 사건과 온라인 게임 리니지를 독특하게 결합시키면서 탈북자로 상징되는 경계에 선 현대인의 소외와 비루한 삶을 리얼하게 보여준다.

‘나’는 현실에선 단역배우이자 프리랜서 삐끼로 활동하는 탈북자이지만, 온라인 게임 리니지 세계에선 위대한 혁명 영웅 쿠사나기. 하지만 탈북 과정에서 겪은 정신적인 충격으로 인해 과거와 현재, 현실과 가상세계를 혼돈하며 정체성마저 흐려지는 인물이다.

조선노동당원이라고 자랑하던 회령아저씨가 서울 강북 백석공원 부근에서 살해되는 등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사체의 안구가 파이고 오른손 손가락 두 개가 잘린 것을 본 ‘나’는 리니지 세계 속 떠돌이 전사 ‘피멍’을 떠올린다. ‘피멍’은 리니지 세계에서 무자비하게 사람을 죽이고 안구를 파내 매달고 다니는 캐릭터. ‘피멍’의 정체를 파헤치기 위해 ‘나’는 현실과 가상세계 속 주변인물을 두리번거린다.

이야기의 또다른 축은 2004년 리니지 세계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바츠 해방 전쟁’. 온라인 게임 세계에서 소수의 고레벨 게이머의 횡포에 분개한 다수의 저레벨 게이머들이 동료를 규합, 1년 가까이 벌인 온라인 싸움이다. 유저 스스로 게임 내 전제 권력에 맞서 자유를 위한 투쟁을 벌임으로써 사회적 논의까지 일었던 사건이다.

2011년 세계문학상 수상작 ‘유령’의 작가 강희진씨는 “남과 북의 경계에 선 이명준을 탄생시킨 최인훈의 ‘광장’ 2011년판을 쓰고 싶었다”고 말한다.
은행나무 제공
소설은 추리적 구성을 취하지만 사실 범인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정작 중요한 것은 ‘나’의 시선을 통해 펼쳐지는, 유령처럼 살아가는 이들의 소외된 삶이다. 리니지 속 부조리한 세계를 바꾸는 혁명 영웅들이 현실에서는 노숙자나 신용불량자, 키스방에서 몸을 파는 사람으로 비루하게 살아간다.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이 눈을 찌른다. 그래서 그들은 가상세계로만 질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 아침에 방송국에서 또 전화가 왔다. 이젠 연기할 생각이 없으니 연락을 말아 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내가 갈 곳은 방송국이 아니라 리니지 세계다. 이번에 그 속으로 들어가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다. 귀환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바깥세계로 나온다면 영원히 폐인으로 살아야 할지 모른다. 한달이고, 두달이고, 1년이고, 2년이고 머물 것이다. 내게 리니지는 환상이 아니다. 그곳은 현실이다.”(325쪽)

‘유령’의 강점은 탈북자뿐 아니라 그들로 상징되는 우리시대 ‘경계인’들의 구체적 실상을 매우 리얼하게 드러낸 점에 있다. 또 “분단 상황과 가상현실 문제를 뒤섞고 가로지르며 역동적인 탈주”(문학평론가 우찬제)를 통해 유령처럼 떠돌면서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경계인’들의 아이러니를 우리 시대 이슈와 결합한 점도 꼽을 수 있다.

특히 남과 북, 현실과 가상의 경계선에 선 인물을 웅숭깊게 그려낸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문학평론가 우찬제씨는 소설 속 ‘나’를 “남한과 북한 사이, 현실과 사이버 공간 사이의 경계에서 존재론적 위기를 극적으로 경험하는 인물”이라고 분석했다.

강희진씨는 “최인훈의 ‘광장’ 주인공 이명준은 남과 북의 경계에 섰던 인물”이라며 “만약 ‘광장’의 이명준이 다시 돌아온다면 이들과 비슷한 운명에 처하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그는 “실제 탈북자들은 남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채 게임 중독에 빠지는 빈도가 굉장히 높다”며 “5년 정도에 걸쳐 탈북자 관련 자료를 수집했고, 게임 관련 정보도 박사 논문 등 여러 자료를 활용했다”고 덧붙였다.

김용출 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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