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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 무맥] (20) “적을 필살하라” 특공무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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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12-23 01:21:30 수정 : 2009-12-23 01: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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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격술’에 맞서기 위해 탄생
경호무술로는 세계 최강 자랑
무술은 필요할 때는 상대를 필살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온갖 좋은 것을 다 들여놓고도 상대에게 필살된다면 그것은 무의미하다. 물론 상대를 죽이지 않고 굴복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무술에서 기 싸움을 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이것은 동물적 본능이다. 그래서 무술은 동물 되기이다. 필요하다면 무엇을 쓰지 못하랴 하고 나서는 것이 무술이다.

◇장수옥 총재의 발차기 모습. 워낙 빠르고 강력하여 발끝이 흐리게 보인다.
무술은 어디까지 진화하는가. 전통무술은 옛것의 진수를 알고 그것을 지키는 데 치중하는 것이라면, 창시 무술은 당대 최고의 술기(術技)를 통합하여 가장 훌륭한 무술을 창조함으로써 의미를 갖는다. 물론 창조라는 것이 옛것을 바탕으로 온고지신하는 것이라는 데에 무술도 예외가 아니다. 현실적 결핍과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다. 특공무술은 누가 뭐라고 해도 한국적 현실에서 한국적 필요에 의해 탄생한 것이다.

1968년 1월 21일 북한의 124군 부대 정예요원 31명이 청와대를 급습하기 위해 침투한 사건이 있었다. 무장공비가 청와대 뒤편 세검정 고개와 평창동 일대에 난입한, 흔히 ‘1·21 사태’, ‘김신조(金新朝) 사건’으로 일반인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는 사건이다. 당시 김신조를 제외한 전원이 사살되었고, 김신조마저도 자살이 여의치 않아서 생포된 것일 뿐이었다. 무장공비가 청와대를 급습하려고 한 것도 그렇지만 전원이 여의치 않을 때 자살한다는 것은 북한의 정신교육이 얼마나 강력하고 세뇌적이고, 비인간적인지를 목격하게 한 사건이다. 그들은 일종의 자살특공대였다.

그 사건 때문에 군과 경찰은 초비상사태에 들어갔고, 재무장·재훈련의 반성이 쏟아졌다. 곧바로 북한군의 비정규전에 대비한 예비군이 창설되었고 방어체제 전반에 일대 수정이 가해졌다. 한편 북한군의 무술 수준을 점검하기 위해 우리 군 무술 고단자들과 북한 출신 요원들 간에 대련이 벌어졌다. 북한의 무술은 ‘격술’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 군 고단자들은 상대가 되지 않았고 중국 무술 고단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말하면 북한의 격술이 적을 살상하는 데에서는 당시로서는 가장 진화된 세계 최고의 무술이었다. 태권도는 살상에는 취약했으며 겨우 합기도가 그나마 선방하는 정도였다. 그래서 합기도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무술 개발이 절실했다.

여러 무술에 대한 시범과 대련이 606경호부대 산하에서 있었고, 그 가운데 채택된 것이 바로 해전(海田) 장수옥(張水玉) 선생의 ‘특공무술’이다. 청와대 소속의 606경호부대는 특공무술의 탄생지다. 그래서 그는 ‘(대통령 경호실의) 영원한 사부’로 통한다. 본래 합기도인이었던 그가 자신의 특기를 개발하고 여러 무술의 장점을 살려서 새롭게 만든 특공무술은 처음엔 대도무문(大道無門)을 줄여서 무문도(無門道)라고 하였던 것인데, 청와대 경호팀과 인연이 맺어지면서 특공무술이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수많은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드디어 1978년 11월 대통령 경호실 연무시범에서 ‘특공무술’ 명칭이 결정됐다. 이어 79년 박정희 대통령 앞에서 시범을 보였고,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된 10·26 사태 등을 거쳐 다시 80년에는 전두환 대통령 앞에서 시범을 보이면서 정식으로 장 사범은 경호사범(공무원 4급을)이 되었고, 85년에는 ‘특공무술 교본’이 완성된다.

특공무술은 태권도에 이어 한국에서 탄생한, 재창조된 한국 오리지널의 무술이다. 장수옥 창시자는 “현재 지구상에서 경호무술로는 가장 진화된 형태의 무술이다. 그 까닭은 내공과 외공을 겸비한 무술이기 때문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61주년 국군의 날 기념행사에서 특공무술을 선보이고 있는 특전여단 장병들.
그가 경호부대에 들어가기 전까지 태권도, 합기도, 유도, 검도가 4대 경호무술 종목이었다. 그런데 특공무술이 들어가면서 합기도가 없어져서 일부 반발도 있었지만 그는 오로지 실전에서 이기는 실력주의로 주위를 설득해갔다. 특공무술의 탄생에는 무술계에서는 철선녀(鐵扇女)로 통하는 미모의 아내 김단화(金丹和)가 크게 한몫했다. 장 사부는 그때까지만 해도 외공에 주력한 나머지 내공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다. 그런데 아내는 내공을 위주로 하는 정신도법수련원, 후일 국선도 창시자 청산거사의 1대 제자였다. 철선녀라는 이름도 그가 지어준 이름이다.

그가 아내에게 크게 배운 것은 호흡법이었다. 호흡을 길게 하여야 공격시간을 늘릴 수 있고, 동시에 타격을 받더라도 크게 상해를 입지 않는다. 그 호흡법은 바로 단전호흡이었다. 단전에 호흡의 중심을 두고, 그 중심을 잃지 않고 리듬에 따라 공격하면 그러지 않을 때보다 몇 배의 연결공격과 파괴력이 생겼다. 다시 말하면 특공무술은 그의 외공과 아내의 내공이 만나서 이룩한 무술이다. 그를 경호무술 사부로 만드는 데는 아내의 공이 컸다. 그래서 결국 성공한 남자의 뒤에는 항상 훌륭한 여자가 있게 마련이다.

태권도가 공수도를 바탕으로 한국에서 재창조된 무술이라면, 특공무술은 합기도를 바탕으로 재탄생한 무술이다. 특공무술의 핵심은 방어와 공격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연속성이다. 흔히 공격이 방어라고 하지만 그것보다 한 수 위인 공격과 방어의 동시성은 바로 절권도의 이소룡도 추구한 무술의 최고 경지이다. 중국에 절권도가 있다면 한국에 특공무술이 있는 셈이다. 이 경지에 이르면 ‘동시성의 세계’, ‘세계는 생성되는 하나’임을 무술을 통해서 깨닫게 된다. 이소룡이 죽은 뒤 홍콩의 영화제작자가 수소문하여 장 사범에게 와서 영화배우 테스트(1978년 6월)를 한 것은 실로 우연이 아니다. 하마터면 영화배우가 될 뻔한 그를 잡은 것은 예상치 못했던 606부대로부터의 연락 때문이었다.

“호흡의 장단이 중요합니다. 호흡의 장단을 조절하면 열 번 숨을 쉬어야 할 것을 다섯 번으로 줄일 수 있고, 그만큼 공격과 방어를 숨을 쉬지 않고 계속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상대방과의 경쟁에서 우선 호흡에서 이기고, 호흡에서 이기면 기가 살아나고, 기가 살아나면 몸이 유연해지고, 동작의 여유와 기량을 잘 발휘할 수 있게 되고, 궁극적으로 상대를 제압하게 됩니다. 또 한 가지, 힘의 근원이 다릅니다. 흔히 외공은 주먹지르기를 할 경우 어깨와 팔의 근육을 단련해 그 힘으로 가격을 합니다. 그러나 내공이 가미된 특공무술은 주먹지르기를 할 때도 손끝에 힘을 주지 않고, 팔을 뻗는 순간 아랫배에 힘이 들어가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의 장기인 평수법(平手法)은 일종의 장풍(掌風)으로 손바닥으로 상대방의 급소나 혈을 타격하는 것인데 그저 피가 나거나 찢어지는 외상을 주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갈수록 통증을 느끼게 하는 깊이 때문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의 다른 특기인 족기술(足技術), 즉 고축차기는 쪼그려 앉은 자세에서 공중으로 뛰어올라 3m70cm 위에 있는 송판을 격파하는 기술로 지금까지 그를 흉내조차 내는 후배가 없다.

특공무술은 합기도 5할, 태권도 2할∼3할, 그리고 그가 새로 개발한 내공과 외공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여러 무술의 단순한 집합이 아니라 새로운 무술체계로 거듭났다. 그래서 특공무술이다. 특공무술의 수련과정을 보면 유급과정이 있고, 그다음 초급(1단), 중급(2단), 고급(3단)과정이 있고, 가장 높은 곳에 지도자과정(5∼6단), 교수연구과정(6∼7단)이 있다.

유급과정에선 기본자세, 기본형, 손목빼기, 기본꺾기, 손공격, 발공격, 손발공격, 기본낙법, 기초체력 등이 공통으로 있다. 초급과정에 들어가면 생활무술을 할 것인가, 경호무술을 할 것인가, 국방무술을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경호무술 가운데서도 보통 경호무술을 할 것인가, 경찰무술을 할 것인가, 경비무술을 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선택에 따라 무술의 내용도 달라진다. 생활무술을 하는 사람은 유단기본형, 손목수(안과 바깥), 발방어를 배우고, 경호·경찰·경비무술은 경호형과 단본형, 응용꺾기, 몽둥이 방어, 태클 기술 등을 배운다. 국방무술은 특공형, 대결형, 선수공격 등을 배운다. 중급, 고급으로 갈수록 세분화된다.

특공무술은 현재 유단자가 약 7만명, 전국 130여개 도장(해외 3개 포함) 회원은 50만∼60만명에 이른다. 여성 유단자가 30%에 이른다. 전국 70여개 대학 경호학과에서 특공무술을 가르치고 있다. 태권도 다음의 막강한 세력과 실력을 갖춘 자생무술이다. 특공무술은 청와대 경호부대는 물론 육군의 특전사 예하부대에서 배우고 있으며, 최근 우리 군의 무술 강화를 위해 태권도와 함께 군 전체에 일반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경찰도 특공무술을 배우는 예가 많아졌다. 지난 10월 1일, 61주년 ‘국군의 날’에는 특전사 군인 400여명과 어린이 특공무술 수련생 30여명이 함께 계룡대에서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머지않아 태권도와 함께 우리 군의 무술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서양의 경호무술은 주로 ‘기계경호’이기 때문에 정신적 구심점이 없다. 그래서 경호무술을 관통하는 정신이 없다. 이에 비해 특공무술은 무술의 창시자가 있고, 그 철학이 굳건하기 때문에 정신적 중심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투철하고 청렴한 국가관과 중도·중립의 정신이다. 장 사범은 그동안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 대통령까지 모두 다섯명의 대통령을 경호했다. 이들은 모두 정치적 노선과 철학이 달랐지만 그에게는 언제나 철통 같은 경호의 대상이 되는 대통령일 뿐이었다. 그는 좌우사상과 지역 당쟁에는 언제나 초연하였다.

◇특공무술을 익히고 있는 엘리트도장의 초등학교 아동들.
그가 1989년 초 아내와 함께 전두환 대통령이 백담사에 유배 아닌 유배 생활을 할 때 문안을 드린 적이 있다. 당시 현직 공무원 신분으로 그 같은 행동을 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정치적으로 동조하는 것이라면 현직을 떠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했다. 경우에 따라 백담사에 도착하기도 전에 저지당할 수도 있었고, 정치적 반대파라면 백담사에서 거절하였을 것이다. 그는 담담하게 전(全) 대통령을 찾았다. 다행히 경호요원들이 모두 그의 제자들이었기에 제지를 당하지는 않았지만 보는 이에 따라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고 하마터면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었다. 그의 인간적인 면모가 두드러지는 대목이다. 그는 전라도 익산 출신이고, 아내는 경상도 대구 출신이다.

특공무술의 특징은 실전성, 심신수련성, 호국성을 들 수 있다. 무술의 체득방법은 심득(心得), 행득(行得), 언득(言得), 서득(書得), 고득(苦得)의 5가지 방법이 있다. 특공무술의 철학은 ‘공격과 방어의 동시성’을 통해 최고의 무술을 지향하는 것이다.

그는 언제나 훌륭한 무술이라면 찾아가서 배울 자세가 되어 있다. 전통이니 고수니 하면서 목에 힘주고, 서로 제 잘났다고 떠드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특공무술은 공공연히 기존 무술의 종합, 재창조라는 것을 선언한다. 언제나 결국 실전에서 승리하는 것이 무림 세계가 아닌가. 세계 최고의 무술을 지향하는 것이 철학이라면 철학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제나 중도, 중립, 중용의 정신이 필요하다.

박정진 문화평론가
그는 요즘도 스승으로서 갖추어야 할 세 가지를 실천하고 있다.

“배가 고픈지 안 고픈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돈이 있는지 없는지, 제자들이나 주위에서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합니다. 이것이 사부로서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말을 하는 그를 바라보면 역시 무술계 거목임을 알 수 있다. 간혹 제자들 중에 그가 권력에 가까이 있을 때에 특공무술을 키울 이권이나 재력을 얻을 기회가 있었을 텐데 라고 아쉬움을 토로하는 부류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그가 은퇴 후 사회에 나와서 뒤늦게 부정부패에 연루되어 구속이라도 당하면 바로 특공무술은 문을 닫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반문한다.

그는 청와대에서 25년간 경호원들의 사부로 있었지만 자신에게 엄격하였고, 그동안 가난과 어려움에 시달리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오늘날 주위의 도움을 일절 받지 않고 검소하게나마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사전에 이를 차단한 아내가 지금 생각하면 여간 고마운 것이 아니다.

특공무술의 발전을 위해서 후계구도를 정하고 여러 준비와 고심을 하던 차에 다행히 아들 장은석(張恩碩)이 자신의 일을 걷고 뒤늦게나마 아버지의 일을 도우며, 특공무술의 세계화에 앞장서서 여간 든든한 게 아니란다. 아들은 1988년 7월에 정식으로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특공무술협회의 전무이사를 맡고 있으며 경호전문 박사과정(국제대학)을 밟고 있다.

장은석 전무가 특공무술협회 산하 ‘엘리트도장’의 운영에 관계하고부터 어린이 수련생들이 부쩍 늘었다. 고지식한 장 사범과 달리 아들은 훈련과 음악을 병행하는 운영의 묘를 선택했던 것이다. 재즈 음악을 틀어놓고 엄마와 학부형이 함께 춤추고 노래하게 한 것이 주효하였다. 이를 못마땅하다고 생각한 장 사범이 아들에게 제지하였지만 물러서고 말았다. 아들의 말은 우선 도장에 학생들을 오게 하여야 무술을 가르치든가 말든가 할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아동과 학부형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운영이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그의 마지막 말은 이렇다. 얼마나 철두철미한가를 짐작케 하는 말이다.

“경호는 1%만 미스가 나도 실패이다.”

박정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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