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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류학자 박정진씨 ‘예술인류학’ 세계 첫 완성

입력 : 2009-10-22 11:21:00 수정 : 2009-10-22 11: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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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류학, 예술의 인류학’ ‘예술인류학으로 본 풍류도’ 펴내
◇새로운 학문 분야인 ‘예술인류학’을 창안한 문화인류학자 박정진 전 한양대 겸임교수.
 문화인류학자이며 시인인 박정진 전 한양대 겸임교수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예술인류학’을 완성하고, 2권의 책으로 펴냈다. ‘예술인류학, 예술의 인류학’(이담출판사)과 ‘예술인류학으로 본 풍류도’가 그것이다. ‘예술인류학’은 그가 20년 전에 처음 만든 학문분과로서, 그간 정교화 작업을 해오다가 최근에 완성을 본 것이다. 그의 예술인류학은 최근 일본의 나가자와 신이치가 발간한 ‘예술인류학’에 비해 20여년 앞선 것이어서 국제적으로 주목된다.

 그는 예술인류학을 창안하게 된 동기를 이렇게 말한다.

 “인류의 문화는 21세기를 맞이하여 종래의 분열과 팽창에서 반대로 통합되고 수렴되고 있다. 학문에 있어서 학제적인 연구는 물론, 그동안 과학, 예술, 종교라는 삼분법은 이제 불필요하게 되었다. 아직도 과학과 예술과 종교라는 것이 하나라는 것을 증명하기에는 빠르지만 적어도 예술과 종교라는 것은 거의 쌍둥이라는 것을 해석하기에 이르렀다. 인문학은 그동안 주로 해석학이었는데 이는 자연과학과 같은 법칙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자연과학과 같은 수식을 인문학이 추구할 수 없었던 이유는 처음부터 추구하는 목적과 방법이 달랐기 때문이다. 인문학 혹은 사회학은 과학이라는 영역에서 열등적인 것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생명과 관련되는 것이고 그것의 특성은 적어도 인과적인 것이 아니고 그것이 설사 물질적인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매우 임의적인 것을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화인류학자이자 시인이며 언론인인 박정진씨.
 그는 이어 “인문학이 그나마 자연과학과 필적할 만한 이론무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언어학의 힘이 컸다. 소위 구조언어학이다. 그렇더라도 구조언어학이 인과론을 밝혔기 때문이 아니라 임의적으로 구성된 일종의 구조, 체계, 혹은 콤플렉스라는 것을 증명하였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필연적으로 해체·변형되거나 심하면 붕괴할 수 있는 성질이 있다. 그러니까 사물의 결정성과 절대론을 가지고 있지 않다. 매우 상대적인, 그야말로 구조물에 불과하다. 그러나 예술은 그 재료를 떠나면 종교와 거의 쌍둥이이다. 예술인류학은 바로 예술이라는 것이 종교를 표방하지 않은 종교이며, 종교라는 것이 예술을 표방하지 않는 예술이라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종교는 인간의 삶을 희생으로 하여 인간의 삶을 더욱더 윤택하게 하려는 것이다. 예술은 인간의 삶에 아름다움을 입혀서 더욱 아름답게 하려는 것이다. 여기에 창조적 예술가들의 희생이 따른다. 그런 점에서 예술인류학은 종교인류학이다. 우리는 흔히 문화라고 하면 과학(학문)과 예술과 종교를 들지만 결국 나중에 남는 것은 예술뿐이다. 예술이야말로 인간이 창조한, 자연에 대응할 수 있는 순수한 것이다. 종교도 예술로서 남지 않으면 안 된다. 과학도 마찬가지이다. 미래의 인류는 예술을 통해서 우리의 과학과 종교를 인식할 뿐이다.”

 1권 ‘예술인류학, 예술의 인류학’은 예술인류학의 기본원리와 이론적 구성을 한 책이고, 2권 ‘예술인류학으로 본 풍류도’는 한국문화의 특징을 예술인류학으로 해석한 책이다. 이 책은 동시에 왜 저자가 예술인류학을 창안했으며, 그것이 한국인으로서, 한국문화를 습득한 자신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학문에 메타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예술인류학은 시인이기도 한 저자에게 유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시리즈의 3권으로 ‘예술인류학으로 백남준 읽기’의 원고를 거의 마찬 상태에 있다. 그가 백남준 읽기를 쓴 것은 “한국이 나은 세계적 예술가인, 비디오아트의 아버지 백남준이야말로 한국문화의 입장에서 해석하여야 제대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예술인류학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삶은 과학적인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법칙을 발견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법칙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다. 삶은 이상하다. 법칙으로 질서를 잡아야 하지만 동시에 법칙에 얽매여 삶의 활성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이것을 잘 해야 한다. 삶의 활성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종교와 예술을 얼마나 피눈물나는 노력을 했는지 모른다. 과학은 또한 얼마나 자연으로부터 자연을 스스로 다스리도록 압력을 받았는지 모른다.  농업혁명, 산업혁명, 정보혁명은 모두 인구부양에서 출발하여 보다 윤택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자연의 압력에 대한 필요의 소산이다. 결국 종교와 과학은 인간의 삶의 두 기둥이다. 그것을 통합하는 것으로서의 예술이 있었던 셈이다.”

 저자는 그동안 100여 권의 저술과 시집 등을 펴냈는데 이번에 다시 예술인류학 시리즈를 냄으로써 명실상부한 인문학적 기린아로 거듭나고 있는 셈이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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