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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 무맥] 武를 통해 본 한국문화 (16) 武와 舞의 결합, 예술태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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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10-07 00:26:25 수정 : 2009-10-07 00:2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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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로 승화된 태권도 '제3의 문화'로
태권도는 지금 진화하고 있다. 그런데 구미 쪽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 태권도가 단순히 무술이나 스포츠에 불과한 것이었을까. 과연 태권도만 한 무술과 스포츠가 없어서 그들은 태권도에 열광하였던가. 아니다. 태권도는 그 이상의 무엇이 있었다. 한민족은 일제 식민치하의 질곡 속에서도, 광복 후 혼란과 빈곤 속에서 나름대로 생존의 위기에 직면하여 문화부활의 차원에서 태권도를 국민스포츠로 발전시켰던 것이다. 이는 새마을운동에 앞서 민족의 에너지와 야망을 일깨우는 신호가 됐다. 민족문화의 발전과정에서 절체절명의 위기는 스스로 태권도라는 미래지향적 무술을 탄생시켰다.

◇미국 태권도의 대부 ‘그랜드 마스터’ 이준구(오른쪽)씨가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흔히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한다. 그런데도 조선조 사회는 주자학이라는 정신을 앞세워 신체적인 것을 업신여기는 우를 범했다. 그것이 심하게 되어 결국 나라를 잃어버렸던 것이다. 서세동점의 시기에 일본은 재빨리 서양에 편승하여 제국주의국가로 변신하는 데 유일하게 성공한 동아시아 국가가 된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은 동도서기(東道西器), 중체서용(中體西用)을 부르짖었지만 근대화에 실패한다. 한국은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고, 중국은 땅덩어리가 큰 탓으로 전체가 식민지가 되는 것은 면했지만 열강에 의해 국토가 점유되고 만주 일대는 만주국이라는 일본의 괴뢰정부가 들어섰다.

문화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경쟁에서 일단 패배한 나라는 수세를 만회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코 이른 시일 내에 제자리를 찾지 못한다. 그게 지난 100년간이다. 후진국이나 식민지가 국권을 회복하게 되면 대체로 경제개발을 비롯하여 과학의 진흥을 꾀하게 된다. 이는 하드웨어를 복구하지 않으면 소프트웨어의 발전을 기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제개발 이전에 국권을 회복하는 징후를 보이는 분야가 바로 스포츠나 무예 분야이다. 이는 문화의 하드웨어와 스포츠가 하부구조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문화 부활의 하부구조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평가를 받는 태권도가 묘기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은 60년대 군사정권의 등장과 산업화·경제개발시대에 태릉선수촌으로 상징되는 스포츠 강화가 하나의 코드(code)로 작동하였다. 우리는 이 경험을 통해 무(武)가 과학과 연결되고 스포츠와 긍정적 피드백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태권도는 이에 앞서 한국의 발전을 예감했다. 태권도야말로 무(武)에서부터 문(文)을 진흥하는 징후가 되었다. 태권도라는 것이 월남전을 통해서 세계적인 것으로 발돋움하였고, 전쟁의 종식과 더불어 중동과 서독, 미국 등 선진 구미지역으로 그 영역을 넓혔다.

한국 태권도사에서 영웅들은 많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미국 태권도의 대부’이자 ‘가장 성공한 이민자 200명’ 중 유일한 한국인인 이준구(李俊九·80)를 맨 먼저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준구는 단순히 스포츠맨이 아니다. 그는 태권도라는 무술을 예술의 경지에 올렸으며 다시 미래 인류의 ‘수신(修身)의 도(道)’로 격상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는 또한 태권도를 외교로 격상시킨 인물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미국의 주류사회에 태권도를 맨 먼저 보급하여 한국의 위상을 높였을 뿐 아니라 미국인의 건강과 도덕재무장에도 기여한 인물이다.

이준구는 미국에서 ‘구’자를 빼버리고 ‘준 리’로 통하고 그의 태권도는 ‘준 리’태권도로 불린다. ‘준 리’ 태권도는 무(武)와 무(舞)의 결합이면서 일종의 ‘예술 태권도’를 지향하고 있다. 그는 문 숭상의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답지 않게, 혹은 무예인으로서 당연한 것이지 모르지만, ‘체-덕-지’(體-德-智)를 주장한다. 이는 흔히 우리가 말하는 ‘지-덕-체’(智-德-體)와 반대이다. 이는 문화를 관념이 아니라 실재에서 바라보고자 하는 일종의 역반(逆反)이다. 아마도 사대적 관념놀이로 나라를 잃는 구한말의 역사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이는 세계적으로 몸철학에 대한 관심의 제고와도 맥이 닿고 있다.

그는 또 진선미(眞善美)에서 선(善)을 빼고 그 자리에 애(愛)를 넣고 진미애(眞美愛)를 표방하고 있다. 선은 위도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수신의 규율(discipline)은 우리 문화의 고질병인 사대주의와 관념주의를 탈피할 수 있는 실용의 도로서 주목된다. 그가 체를 강조하는 것은 체육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몸이야말로 수신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사대주의적 선비들이 선진문화를 받아들인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주체인 몸을 잊어버리고 오로지 경전에만 매달렸다가 식민지가 된 아픈 기억이 그를 무예인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보브 리빙스턴 전 미국 하원의장은 그를 ‘그랜드 마스터’로 부르고 있다. 리빙스턴은 오직 준 리에 대한 존경심의 발로로 ‘28가지 역사를 만든 사나이’란 제목의 영문 히스토리를 집필하고 있을 정도이다. 태권도가 미국에 상륙하여 인기를 얻은 것은 실은 체육이라기보다는 규범을 가르쳐주는 것이었다. 이는 단순한 무예나 스포츠가 아니라 심신을 동시에 단련시키는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당시 청소년들의 도덕적 문란에 고민하고 있던 미국은 규율을 가르치는 도(道)로서 가장 가까운 데서 찾을 수 있었던 태권도를 택했던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태권도는 기회포착을 잘 한 셈이다.

여기서 규율이란 절도 있는 행동, 어른에 대한 공경, 자신에 대한 책임감, 술·담배·마약을 멀리하게 해주는 힘 같은 것을 말한다. 태권도는 효과적으로 물질 만능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미국인들에게 새로운 심신단련의 도(道)로 비쳐졌다. 규율은 아이들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고 어른들에게도 필요했다. 당시 미국 사회는 규율이 문란했다. 그는 태권도를 통해서 동서양 문화의 교류와 소통, 그리고 이를 통한 제 3의 문화창조를 시도했다.

그는 1962년 6월 28일 “태권도를 배우면 우등생을 만들어 줄 것이다”라는 편지를 직접 써 189개국 주미 대사에 발송하고, 워싱턴에 태권도 도장을 개장했다. 이어 1965년 미 하원에 태권도장을 설치한 것을 비롯해 1968년 한국과 미국의 애국가에 맞춰 ‘태권무’를 만들었고, 최초로 태권도 안전기구(보호구)를 선보여 태권도의 국제대회 개최 발판을 마련했다.

그는 1975년 민주당과 공화당의 상·하원 의원 태권도대회를 처음으로 개최했다. 그에게 태권도를 배우 제자들은 권투영웅 무하마드 알리(그의 코치 역임)를 비롯하여 부루스 리(족기를 가르치고 수기를 배웠다), 밥 리빙스턴 전 국회의장,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을 비롯해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 아널드 슈워제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 깅리치 하원의장 등 수많은 워싱턴 정가의 정치인과 유명인들을 가르쳤다. 현재 상·하원 의원들에게 무료로 태권도를 가르치고 있다.

그는 미국 건국 200주년 기념일에 ‘세기의 무술상’을 수상했다. 1982년 독립기념일 집행위원장을 맡아 조지 워싱턴 기념관에서 ‘인간 성조기’를 만드는 퍼포먼스를 펼쳤고, 1985년 태권도장 운영 세미나를 처음으로 개최, 태권도와 비즈니스를 접목시켰다. 그의 업적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교육자로서의 그의 역할이다. 그는 1986년 상·하원 의원을 설득해 ‘미국 스승의 날’을 제정했다. 그는 또 구(舊)소련 내 태권도 도장을 합법화해 65개의 도장을 설치하였고, 이를 인연으로 구소련 외무부가 주는 ‘가장 훌륭한 기사상’을 받았다. 그는 아인슈타인 등과 함께 미국 역사상 최대 공헌가 203명에 선정됐다.

리빙스턴 전 의장은 2003년 6월 28일 미국 워싱턴시가 3만 명이 운집한 축구광장에서 ‘준 리 데이’(이준구의 날)를 선포했다. 이 사범은 유엔에서 ‘10021 행복론’을 강의한 덕분에 러시아 평의회로부터 ‘세계 평화상’을 수상했다. ‘10021’은 ‘100세의 지혜로서, 21세의 젊음으로 행복한 삶을 살자’라는 캠페인이다. 이준구는 이제 태권도 사범이 아니라 이제 미국사회에서도 스승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를 보면 문무겸전의 현대판 인물의 대표로 보인다.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가 지은 ‘동방의 등불’을 영어와 한국어로 줄줄 암송하는가 하면 하모니카 연주는 수준급이다. 체육인이자 워싱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하모니카 독주회를 열 정도의 뮤지션이기도 한 그는 마지막 열정을 후세의 교육에 전념하고 있다. 그의 태권도 철학은 체-덕-지이다.

“아이였을 때는 건강, 즉 ‘체’밖에는 없어요. 세 살이 되면 눈치를 보기 시작해 ‘덕’이 필요하고, 할아버지가 되면 지식과 지혜가 쌓이게 됩니다. 한국에는 체육 시간이 거의 없는 것은 잘못된 교육입니다. 건강한 육체가 없으면 건강한 정신도 없습니다.” 이것은 한국문화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다. 이는 히딩크 감독이 월드컵을 앞두고 한국대표팀을 테스트한 결과, ‘기술이 문제가 아니라 체력이 문제’라는 것을 알아낸 것과 같다. 문화적 타성에서 벗어나서 문화를 생성적으로 바라볼 때 문화적 창조가 일어난다.

그의 민간 외교관으로서 역할은 헬 수 없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방미 시 워싱턴 정가의 인맥을 활용, 유명 인사들을 만나게 해 국빈의 체면을 살렸던 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에게 주요 인사를 소개했던 일, 김치축제 때 상·하원의원을 초청해 한국 음식을 맛보게 했던 일, 120여 개국에 태권도 도장을 열어 태권도 정신과 철학을 보급한 일 등 많은 역할을 했다고 자부한다. 이제 그는 무술인이 아니다. 문무겸전의 인물이다.

“태권도 경기가 재미없다고들 합니다. 발만 쓰는 태권도가 재미가 있겠습니까. 태권도는 새롭게 정립되어야 합니다. 한국에도 영어로 태권도를 가르치는 도장이 생겨나길 기대합니다. 태권도는 한국어와 한국문화, 음식 등을 전 세계에 수출했습니다만 이제 거꾸로 한국의 태권도 도장에서 영어와 미국문화를 배우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 옛날 삼성과 현대 등 대기업들이 어려울 때 태권도는 인맥을 뚫어주는 효자였습니다. 태권도 도장이 전 세계 189개가 있다고 합니다. 이 도장이 자원외교와 민간외교의 중심이 되도록 정부는 활용해야 합니다.”

그는 “에너지가 질량과 가속도의 곱(E=mc²)이듯, 행복은 참됨(眞)·아름다움(美)·사랑(愛)이 실천과 곱해질 때 가능하다”고 말한다. 여기서 E=행복, m=참됨·아름다움·사랑, c=실천이다. “참됨과 아름다움과 사랑이야말로 태초부터 설계된 우주 창조의 에너지원이자 가치”라고 전제한 그는 “생활에서 이들 가치를 행동에 옮김으로써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무술 수련을 통해 ‘승리를 위한 7가지 자질’을 얻고 궁극적으로 행복에 이르는 실천을 체득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7가지 자질이란 ▲속도(생각의 속도) ▲지구력(인내력) ▲타이밍(시간 엄수) ▲힘(지식) ▲균형(이성의 균형) ▲유연성(너그러운 인격) ▲곧은 자세(정직한 마음) 등이다. 그는 이 같은 자질을 기업 경영에도 적용해 시장정보의 수집 속도, 공급과 수요의 균형, 정직·책임 경영, 신속한 공급 및 애프터서비스 등을 갖춰야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준 리 태권도’는 진화하여 무예에서 철학으로, 예술로 향하고 있고, 예술에서 문화의 종합프로그램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는 심신의 균형을 통해 문무를 겸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무예로서, 세계인들이 한국을 생각할 때 동시적으로 떠오르는 이름과 이미지로 태권도가 자리매김할 것을 기도하고 있다. 태권도가 이렇게 여러 모습으로 변모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은 힘과 기술을 동시에 발전시키는 기본의 충실함에 있다. 기본이 충실하지 않으면 다른 것은 저절로 힘을 잃기 때문이다.

이준구는 이소룡의 소개로 ‘흑권’ 등 몇 편의 영화에 출연하였으나 성공을 하지 못했다. 영화배우로 성공하지 못한 것이 도리어 그에게는 큰 행운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소룡은 33살의 나이에 고인이 되었지만 그는 80이 넘도록 살면서 무술체육을 예술의 경지, 전인적인 인격의 양성의 도(道)로 끌어올리고 있다.

최근 귀국하여 필자와 만난 이준구씨는 “태권도는 그동안 삼성, 현대 등 기업들이 초기에 시장개척을 할 때 세계 여러 지역에서 현지 유력자와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하였으며 대통령이나 왕의 경호담당자가 되어 발판이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한국은 태권도로부터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미국의 국회의원들이나 주요 정객들에게 한국의 기업가들을 소개해준 것은 부지기수입니다. 지금도 여전합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태권도의 발전에 자신감을 보인다. “태권도의 위력은 ‘태권도 월드컵’도 개최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손과 발을 보다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재미만 더하면 태권도의 생명력은 계속될 것입니다. 발만 주로 사용하게 해서는 한계가 있습니다. 현재 세계의 태권도 인구는 약 7000만명에 이릅니다. 중국 우슈는 세계적 인구가 너무 적어 태권도와 상대가 되지 않고 일본의 가라테는 태권도에게 기선을 빼앗긴 것입니다.”

그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태권도는 지도자들이 파벌을 극복하고 보다 전향적인 자세로 기술을 발전시키고 세계를 끌어안는다면 얼마든지 세계 무술의 패자로서 가능성이 있는 종목이었다.

“태권도의 기본형은 농사꾼의 기본형입니다. 이것에 무술로서의 과학성을 강화해온 것이 오늘의 태권도라면 이제 예술성을 강화하는 것이 미래에 대비하는 자세입니다.” ‘등 따시고 배부르면’ 흥에 겹고 춤을 추기 마련이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인생과 삶의 달관의 경지를 보는 듯했다.

“광물성에 진리가 있고, 식물성에서 아름다움이 싹트고, 동물성에서 사랑이 샘솟고, 인간에 이르러 자신의 실체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준구는 단순한 무예인이 아니라 이제 철학자, 예술가가 되어 있었다.

박정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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