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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 무맥]⑫모성의 시대와 한국문화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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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8-04 18:47:11 수정 : 2009-08-04 18:4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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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형 한국무예 본바탕엔 평화사상이…
한국문화의 여성적 혹은 모성적 특성은 무술이나 놀이에서도 드러난다. 공격 지향적이기보다는 수비 지향적이고 평화 지향적이다. 택견이나 태권도에서 보듯이 손보다는 발 중심이다. 발은 우선 몸을 옮기는 것이기에 손보다는 더 공격적이지 않다. 발의 중심도 발뒤꿈치에 가 있다. 이것도 공격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또 직선 공격보다는 곡선 공격에 치중한다. 물론 곡선 운동이 때에 따라서는 효과적이고 대결(대련)이 오래가면 에너지를 덜 소모하면서 지구전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도 있지만 속도가 느리다. 우리는 직선에 약하다. 두 사람이 서로 상대방의 샅바를 쥐고 승부가 날 때까지 빙글빙글 돌면서 시합하는 씨름이 한국의 대표적인 민속놀이인 것은 참으로 한국적이다. 한국문화의 여성적·모성적 특성은 보는 각도에 따라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이들 해석은 때로는 긍정적이고 때로는 부정적으로 비친다.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남성적 경쟁(전쟁이나 게임)에 의해 승자와 패자가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비유하자면 여성적 질투로 승패가 분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 역사에서 남의 나라를 공격해본 경험, 영토를 확장한 경험은 너무 오래되어 까마득하게 잊혀진 일이다. 한국인들은 전쟁 자체를 무의식적으로 혐오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최근세사에서 동족상잔을 한 나라가 우리나라이고, 아직도 남북 분단으로 대치된 나라가 우리나라이다. 이는 전쟁을 싫어한다고 해서 국제사회에서 전쟁에 휘말리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음을 말한다. 도리어 냉전의 피해자가 되었으니 말이다.

◇서울 효창공원 인근 백범기념관에 있는 김구 선생의 어록. 김구 선생은 우리나라가 부강한 나라가 되기보다 ‘아름다운 나라’가 되는 것을 염원했다.
허정호 기자
언제부턴가 한국인에겐 승부에서 지고도 결코 진 것이 아니고, 정복을 당하거나 식민을 당한 것은 언제나 공격을 일으킨 상대방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일본에 대한 전쟁책임론만 가지고는 우리의 자강(自强)에 도움이 안 된다. 국제사회에는 언제나 전쟁이 필연적이고 당위적이다. 이는 전쟁을 일으키는 나라가 악해서가 아니라 필요 때문이다. 그래서 유비무환보다 적절한 대비책은 없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국인은 세계를 보는 관점이 밖이 아니라 안으로 향해 있기 일쑤이다. 그래서 국민 정서는 국내 권력에 대해 민중적 반감과 저항의 태도가 있다. 이를 우뇌(右腦)-좌파형(左派形) 문화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이 같은 성격은 침략을 당했을 때는 독립운동이나 국권을 회복하는 데는 긍정적이다. 져도 결코 지지 않았기에 반운동의 전선을 형성하기 쉽다. 그러나 세계를 능동적, 적극적으로 다스리거나 지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남을 모르기에 남을 어떻게 다스리겠는가. 남을 알아야 친선을 하든지, 정복을 하든지 할 텐데 모르니, 어느 것을 택하든 주도권을 빼앗기고 만다. 평화든, 전쟁이든 스스로 결정하는 주도권을 잡는 것이 긍정적인 역사를 이끌어가는 요체이다. 그래서 공격형이 수비형보다는 역사적 자아를 형성하기에 유리하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일제강점기에 ‘아(我)와 피아(彼我)’ 사관을 부르짖은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 우리 민족에겐 부족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1919년 3·1운동 당시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만세를 부르는 군중. 3·1운동은 중국 5·4운동은 물론 인도 간디의 ‘비폭력무저항운동’의 촉매로 작용했다.
장기지속의 역사로 볼 때 수비형은 결국 지게 되어 있다. 사대주의도 아마도 그러한 수비형 문화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밖에서 들어오는 것을 경계하고 비난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결국 그것을 받아들이고 마는 ‘여성적 그릇’의 특성을 가졌다. 한국문화에서 여성의 역할과 무게 중심은 다른 나라에 비해 두드러진다. 어찌 보면 한국이 아직도 나라를 유지하는 것은 여성적 에너지에 힘입은 바가 크다. 임진왜란을 막은 것도 바로 여성의 힘 덕분이다. 일제는 임진왜란에 이어 최근세사에서 한국을 병탄하였지만 한국의 끈질긴 저항 때문에 결국 대동아공영권의 형성에 실패하게 되었다는 해석도 있다.

한국에는 어떤 종교가 들어와도 성공한다는 말이 있다. 이는 종교가 본래 여성성과 관련을 맺는 까닭이다. 오늘날 민주주의도 일종의 종교가 되었다. 종교가 되었다는 말은 그것을 위해 순교하는 사람은 있지만 민주주의의 원칙을 자신의 입장에서 새롭게 쓰지 못한다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 말하자면 민주주의라는 말은 무성하지만 정작 무엇이 한국의 민주주의인지, 그 정체를 알 수 없다. 국회가 무당 푸닥거리는 것처럼 난장판이 되어버리는 것은 참으로 한국적이긴 하지만 분명 그것이 한국 민주주의의 진정한 모습이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서로 국민을 팔긴 하지만’ 현실에 걸맞은 아무런 내용이 없다. 서양에서 들어온 남의 법전만 그대로 외우는 꼴이다.

여성성이 가장 부정적으로 드러나는 대목은 바로 역사 전개를 ‘죽음의 축제’로 이루어간다는 점이다. 이는 여성성에 본래 ‘생명의 보호’와 함께 ‘공포의 어머니’라는 심리적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토론을 보면 결코 토론적이지 않다. 처음부터 토론하는 DNA가 없는 것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이다. 처음부터 편을 갈라놓고 결국 갈라진 편으로 돌아가는 것만 있을 뿐이다. 이는 합의를 만들어가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입장만 재확인하는 것이다. 한국인의 심성에는 합리성이라는 것이 약하다. 단지 서양에서 들어온 합리성의 데이터만 잔뜩 쌓아놓고 있을 뿐이다. 한국인들은 그 데이터를 가지고 자신이 매우 합리적인 줄 안다. 항상 정치권이 낙후하였다고 욕을 먹지만 실은 욕하는 사람들을 국회에 보내놓아도 아수라장의 국회를 만들 확률이 높다.

◇안중근 의사는 옥중에서 ‘동양평화론’을 집필했다. 일본 히라시아(平石) 고등법원은 안 의사의 집필을 위해 사형을 연기해줬다.
자기 내부로부터 만들어진 철학과 원리가 한국인에게는 없기 때문에(‘홍익인간 이화세계’라는 세계적인 철학을 가진 것은 너무 오래된 일이다) 결국 나중에는 파당으로 기(氣) 싸움을 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한국인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뽑을 때에도 어떤 후보가 좋아서 뽑는 것이 아니라 다른 후보가 싫어서 뽑는다고 한다. 처음부터 자기가 뽑는 후보에게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셈이고, 당선된 사람에게 언제나 돌아설 요인을 준비하고 있다. 그래서 선거 후 조금만 잘못해도, 혹은 확실하게 잘못한 것이라고 판단하기 어려운데도 실망하면서 통째로 쉽게 안티체제가 되고 만다.

삼국시대만 하더라도 중국과 쟁패를 겨루고 왜를 식민지로 경영한 경험이 있고 고려시대에는 자주성이 강했지만,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무(武)의 폄하와 주자학의 도입과 함께 완전히 소중화(小中華)를 목표로 삼는 ‘사대적 인문주의 국가’로 변하였다. 자주성의 측면에서 보면 조선은 분명 후퇴하였다. 다행히 세종이라는 전대미문의 성군이 나와 그러한 약점을 보완한 것은 우리 민족의 생존에 결정적 변수가 되었지만, 사대주의는 아직도 인문적 전통의 그늘 아래 미덕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학자나 사상가들이 생산하여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용어들은 드물다. 이는 남의 물건을 사용하면서 그것을 자신이 생산한 것으로 착각하는 사례에 해당한다.

한국문화의 맥락에 민주주의를 놓으면 저절로 민중주의 혹은 민중적 민주주의가 된다. 이는 한국인에게 역사적 한(恨)이 많기 때문이다. 이 한은 분명히 여성적 특성의 문화에서 기인한다. 물론 한국문화에 신(神)도 있고, 멋(美)도 있었다. 신은 신라시대에, 멋은 고려시대에, 그리고 가장 가까운 조선시대에는 한이 그 특성을 이룬다. 흔히 문화의 주체성은 인문적 교양의 증대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착각하는데 이는 근본적인 처방이 아니다. 주체성은 상무(尙武)정신과 과학정신에 의해 이루어진다. 최근세사에서 가장 자주성을 높인 것은 군사정권이라고 매도되는 1960년대 이후에 이루어진다. 이것이 아이러니이다.

가장 야만적인 군사정권에 의해 과학의 진흥과 함께 인문적 목표인 자주성과 민족적 자신감이 높아졌던 것이다. 수출 진흥의 독려와 함께 수많은 사람의 해외진출, 그것으로 인해 비로소 밖의 시각에서 스스로를 객관적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공격적인 기업인들로 인해 매우 희망적이지만, 아직도 한국은 내부순환(inner circle)의 원리에 의해 관념적이고 피상적인 민주주의, 사대주의를 기조로 하는 인문적 환상에 빠져 있다. 인문은 많은데 정작 자신의 인문은 없는 것이다. 이게 바로 한국의 문숭상, 선비문화의 현주소이다. 한국문화는 아직도 대학을 비롯한 학원사회의 이데올로기적 종속과 굴레를 벗어나지 못해 문화적 자주성과 활성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는 아직도 ‘민주/독재’라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데서 여실히 볼 수 있다.

분명히 우리의 문화역량과 총량은 다른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 예컨대 ‘환경/자주’ 등은 좋은 예가 되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문화의 사대주의와 관념성으로 안으로의 불신과 분열, 그리고 ‘정체 모를 민주주의’와 ‘국민을 파는 국민주의’에 의해 스스로에세 족쇄를 채우고 있다. 스스로를 정의라고 여기는 집착과 상대에 대한 불신은 아직도 선악 이분법을 벗어나지 못하는 중세성(中世性)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이데올로기 논쟁은 제3의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대립을 조장하고 기존의 당파를 더욱 거세게 할 뿐이다. 각자는 토론과 대안을 주장하지만 결국 그것은 말뿐이고 합의하는 경험 부족과 허위와 위선으로 남의 장단에 춤을 추는 지성을 확인할 뿐이다. 한국인은 아직도 자신의 숭문(崇文)주의가 사대주의라는 것을 모른다. 사대주의가 숭문주의의 가면을 쓰고 있는지 모른다. 진정한 숭문의 목표는 자주이지만 아직 여기도 도달하지 못한 탓이다. 한국의 오늘날과 같은 발전은 숭문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무(武)의 자주정신과 과학정신, 그리고 산업의 발달에 힘입은 바 크다. 세계적인 기업과 기업가 정신이 없다면 OECD 회원국에 들어가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였을 것이다. 미국과 유럽 등이 자유무역협정을 맺으려고 달려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성과는 역사상 어떤 성과보다도 훨씬 위업적임을 주지하여야 한다.

대체로 한국인은 삼국통일 이후 정복보다는 방어에 치중했다. 문화적으로도 그랬다. 한국이 단일민족이라고 하지만 차라리 잡종강세를 하였다고 하는 편이 옳다. 한국문화의 여성적, 모성적 특성은 생물학적 잡종강세와 시대마다 문화적 보편성의 획득이라는 선물을 부수적으로 얻었다. 인류사에서 전쟁이라는 것은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보면 나쁜 것이지만 결코 부정적인 측면만 가지는 것은 아니다. 전쟁은 인종과 문화의 교류와 통합을 이루는 첩경이고 세계가 결과적으로 점점 더 하나가 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오늘의 지구촌이라는 것은 바로 그러한 역사의 산물이다.

지구상에 큰 나라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정복전쟁에 의해 이루어졌고, 작은 나라는 그 사이에서 흩어져 있는 것이다. 큰 나라는 당연히 세계를 지배하고 이끌었다. 또 전쟁으로 수많은 인명이 죽지만 인종적으로 보면 결과적으로 살아남은 우성인자들의 조합과 잡종강세로 더욱더 팽창하고 다른 생물종에 비해 지구를 지배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수많은 전쟁을 치렀지만 지구상에 인구는 팽창하여 60억명을 넘어선 지 오래다. 지금은 도리어 지구에 인간이 너무 많은 것이 생태학적인 문제를 일으킨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그런데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세계는 이제 지구촌이 되는 바람에 이제 남성성보다는 여성성을 더 높이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한국인의 여성성과 평화애호주의는 이제야 각광을 받게 되었다. 앞으로 점점 더 세계적인 호응을 얻을 것이다. 김구 선생의 꿈이 실현될 시절 운이 다가온 셈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일제의 식민과 탄압 속에서도 김구 선생과 안중근 의사는 ‘아름다운 나라’와 ‘동양평화주의’를 외쳤다. 도대체 이런 나라가 세상에 또 어디에 있겠는가. 너무나 한국적인, 한국적인 지도자상이다. 여기에 우리 민족의 속성, 이상주의가 잘 드러나 있다. ‘맨주먹으로 싸우는’ 우리 민족의 저항정신이 세계정신에 기여한 것으로 3·1운동의 비폭력무저항운동을 들 수 있다. 이는 수비형의 문화가 만들어낼 수 있는 인류 최고의 사상이다. 흔히 비폭력이라고 하면 인도 독립의 아버지 간디를 떠올리지만 실은 3·1운동을 주도한 손병희 선생 등 한국인 33인의 정신이 그 출발이다. 3·1운동(1919년 3월 1일)은 중국 5·4운동(1919년 5월 4일)의 기폭제가 되었고 인도 독립운동의 정신을 수출한 셈이다.

박정진 문화평론가
역사라는 것은 항상 승패와 긍정·부정, 가부가 오르내리고 뒤바뀌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역사에서 여성주의와 모성주의가 반드시 나쁘고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도리어 이제 인류문명을 평화적으로 바꿀 근본적인 사상이나 패러다임이 한국에서 나올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가부장의 국가사회에서 우리 민족만큼 시달린 민족은 드물기 때문이다. 또 그러면서도 현재 세계적으로 선진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산업과 문화 총량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인은 과감하게 자기를 주장하여야 할 때가 되었다. 한(恨)의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세계가 하나가 되는 데에 기여해야 할 때가 되었다. 문명적으로도 한국문화의 여성적 모성적 특성이 지구촌 문화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할 기회를 맞고 있다. 한국 사회는 오래전부터 여성적인 ‘네트워크 사회’를 운영했다. 또 네트워크 사회를 운영하는 평화적, 공동체적 문화노하우가 우리만큼 있는 곳은 세계에서 드물다. IMF 때 ‘금 모으기 운동’을 한 나라를 세계는 주목하였다. 오늘날 세계 최고의 반도체의 나라, 인터넷의 나라는 우연이 아니다. 민족의 웅비를 꿈꿀 기회가 온 것이다.

문화는 프로그램이다. 문제는 우리의 문숭상이 언제나 남의 나라에서 프로그램을 빌려오고, 계속해서 자체 프로그램을 생산하지 못하고, 밖으로부터 선진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문물을 들여오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이제 문화도 수출해야 할 때를 꿈꾸어야 하고, 그것을 현실화해야 한다. 사대주의는 선진문화를 들여오면서도 우리의 문화 풍토에 맞게, 우리의 것으로 재창조하는 데에 인색하였다는 뜻이다. 지나친 외래문화 숭상은 정작 ‘자신의 문(文)’을 만들어내지도 못하고 유행만 따라가다가 실패하기 십상이다.

박정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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