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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 무맥] ⑪모성(母性)의 나라,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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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7-14 17:24:10 수정 : 2009-07-14 17:2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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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평화 존중… ‘우주적 본성’ 꿈꾸다
인류 합리성의 발전을 보면 처음엔 신화·종교, 다음에 정치·도덕, 그리고 마지막으로 근대에 과학이 등장하였다. 이것은 인류의 모듬살이 크기, 생활권 범위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문화는 자연의 일부로서 살아가는 인간 삶의 총체적 표현이다. 한국 문화는 대체로 이성보다는 감성에 충실하다. 그런 점에서 매우 여성적이고 모성적이다. 이 말은 과학이나 정치보다는 예술과 종교가 성하다는 뜻도 된다. 가부장 성향이 다른 나라에 비해 부족하다는 뜻도 된다. 한국이 지독한 가부장사회라고 생각하는 것은 조선조 주자학 탓이다. 이것도 임진왜란 이후에 두드러졌다. 주자학이라는 통치이데올로기가 여성을 과도하게 억압하였다면, 이는 도리어 여성의 에너지를 다스리기 위한 방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겉모양은 가부장적이지만 문화의 실질적 운명면은 전혀 그렇지 않다. 경제권은 여성이 가졌다. 남자들은 명분을 차지했을 뿐이다. 여성의 에너지에 의해 한 사회나 국가가 주로 운영된다고 하면 인정이 넘치는 사회가 될 수는 있으나 때로는 격정과 내분에 휩싸이기 쉽다. 아마도 한국 문화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먼저 남의 나라를 침략하지 않았던 점이다. 국가라는 것은 국력이 강해지면 이웃나라를 침범하는 것이 역사의 통례인데 한국은 그러지 않았다. 이것을 두고 평화애호 국가라고 한다. 국력이란 언제나 부침이 있어서 쇠진할 때는 정복을 당하거나 식민지가 되기 십상이다. 고구려 광개토대왕, 조선 세종대왕을 비롯하여 몇몇 왕을 제하고는 정복전쟁을 벌인 적이 없다. 오랜 평화주의는 도리어 다른 나라에 대한 정보수집과 이해의 부족을 불러와서 결국 자신만을 바라보며 살게 하는 타성을 가져왔다. 다른 나라에 대한 정복은 아예 안중에도 없었다는 점이다.

◇임란전승평양입성도병. 전쟁은 남자들보다 여자들에게 더욱 가혹했다. 남자들이 전쟁에 패하면 여자들은 포로로 적국에 보내졌고, 귀국할 때는 환향녀라고 매도했다. 여자들은 어쩔 수 없이 은장도를 지니게 됐다.
한국인은 온통 안으로만 관심이 있어서 ‘안의 시각’에서 사물을 바라본다. 이것이 깨진 것은 청해진의 해상왕 장보고 시대 이후, 경제개발과 수출입국을 이룬 최근세사의 일이다. 삼국시대 이후 한민족은 한반도에서 잠자고 있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기가 바로 미증유의 국운 융성기이다. 한국사에서 세계 대제국들과 당당히 겨루면서 10위권의 국력을 운운한 적은 없다. 이런 행운은 동족상잔이라는 한국전쟁의 폐허 뒤에 쌓은 탑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한국의 생존 미학은 계속 전진 중이다. 그러나 이 시기에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은 바로 안으로의 당쟁과 분열이다. 국가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고 에너지를 낭비한다면 이것은 도리어 재앙이 된다. 이는 생존의 미학이 아직 합의된 기준과 법과 규칙을 마련하지 못한 탓이거나 법과 규칙이 있어도 이를 지키지 않는 탓이다.

일본인의 ‘죽음의 미학’이든 한국인의 ‘생존의 미학’이든 모두 인간의 ‘삶의 미학=생존의 방식’이다. 생존의 미학은 결코 부끄러운 것도 아니다. 단지 추상적이고 거대집단인 국가보다는 구체적인 개인의 삶, 소규모의 가족과 연줄과 족벌의 삶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그러한 경우 국가 간의 경쟁을 할 때 생존율이나 지배국이 될 확률이 낮다는 점이다. 개인의 희생을 통한 에너지의 최대한 이용, 그것의 집단적 축적을 통해 지배국으로 발돋움한다면 금상첨화이다. 만약 그러한 기회가 우리를 스쳐 지나간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 문화의 저류에서 관통하는 여성주의(비권력주의)와 민중주의(저항주의)와 환경주의(자연친화주의)는 한민족의 삶에서 때로는 부정적으로, 때로는 긍정적으로 작용하였다.

여성은 출산을 통해 인구 증가를 담당하는 존재로 생명을 낳고 기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남성에 비해 생명존중사상을 가지고 있다. 이에 비해 남자는 생명보다는 인구를 바탕으로 그 위에서 권력을 쟁취하려는 본능이 있다. 그래서 여성은 생명을 주체화하고 남성은 대상화하는 경향을 지닌다. 한국 문화가 크게 보면 종교적 특성을 보이고 생명존중과 평화주의를 지향하는 것은 모성성과 관련이 크다. 이승의 생존을 중시하는 한국인이 종교에 크게 귀의하는 것은 저승에서 영원의 삶이 보장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일본인은 이승의 죽음이야말로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한국인은 저승에서도 사는 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일본인에게 죽음은 자기 완결이다. 한국인에겐 삶이야말로 우주적 본성이다.

문명의 이치는 자연의 바다에서 떠오르는 파도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인은 죽음을 넘어 망망한 생명의 바다만 보이는 것이다. 한국인은 세계에서도 보기 드물게, 거의 유일하게 시집 간 여자가 자신의 성(姓)을 지키는 나라이다. 겉으로 매우 가부장제적 나라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조선 후기에 생존전략으로서 남존여비사상이 심했던 탓이다. 한국의 가족은 거의 미분화 사회적 속성을 보인다. 한국에서 모자(母子) 라인은 어떠한 가족 라인이나 사회적 인간관계의 라인보다 강력하고 위대하다. 이는 모계사회적 속성이 주변의 치열한 경쟁에 적응한 결과이다.

◇(왼쪽)조선의 여인들은 은장도를 지니고 있었다. 은장도는 때로는 음식물의 독을 확인하는 용도로도 쓰였다. ◇(오른쪽)은장도를 포함한 은대삼작노리개. 은장도는 칼로서의 기능과 무관하게 노리개와 함께 순전히 장식용으로도 쓰였다.
한국 문화의 여성적 특질은 중국, 일본 등 이웃나라로부터 끊임없는 침략을 자초하였다. 특히 병자호란 때에는 청나라에 항복하는 바람에 50여만명의 부녀자를 포로로 내주었다. 이들이 돌아오자 환향녀(還鄕女)라고 매도했다. 환향녀는 화냥년이 되어 그후 행실이 나쁜 여자를 칭하는 보통명사가 되었다. 조선조 사회는 부녀자들에게 정절을 지킬 수 없을 경우 호신용 은장도를 지니게 하여 목숨을 끊도록 하였다. 이를 어겼다는 것이다. 남자들이 전쟁에 져서 아내와 딸들을 적국에 내줘놓고는 반성은커녕 도리어 여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였던 것이다. 선비들의 위선이 가장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한국인은 몸에 대한 남다른 애착이 있다. 한국인은 이별에 앞서 “몸조심하라”는 인사를 건넨다. 살아남기 위해서 때로는 좀 비굴할 때도 있고, 때로는 자괴감이나 처절함도 있지만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삶 자체에 비중을 두는 한국인에게 ‘홍익인간(弘益人間)’이 목적이라면 ‘이화세계(理化世界)’는 방법이다. 신라시대 풍류도만 해도 유불선(儒佛仙) 삼묘지도(三妙之道)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후 우리 삶의 철학은 불교시대, 유교시대, 그리고 최근의 기독교시대에 들어와서는 주체성을 잃어버렸다. 말하자면 ‘남의 이(理)’를 가지고 우리의 몸과 살림살이를 영위해온 탓이다.

한국의 선비들은 사대주의에 빠져 있지만 백성들은 그렇지 않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라고 한다. 한국 민중의 철학을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 한국이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은 양반문화나 상층문화보다 민중문화나 하층문화에서 온다. 한국문화는 단순 소박하고 자연친화적이다. 이러한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바로 민중문화이다. 민중적 삶의 지혜는 오늘의 역사가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러한 민중문화는 바로 여성적 특성과 내밀한 관련을 맺고 있다. 그래서 민중, 여성, 환경은 서로 피드백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왼쪽)조선의 선비들이 차던 대표적 삼인검. 실전에 사용하기에는 약하지만 북두칠성 및 28수 천문도가 금입사되는 등 공예적 기법이 정교하였다.   ◇(오른쪽)책가도십폭병. 방안에 세워진 병풍 그림에도 은장도가 포함되는 경우도 많았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한국은 활의 나라, 중국은 창의 나라, 일본은 검의 나라’라는 말이 있다. 각 나라의 무술이 다른 것은 마치 각 나라의 음악과 노래가 다른 것과 같다. 무술도 문화이기 때문이다. 무술도 그 나라의 자연과 역사가 만들어낸 산물이다. 국토의 4분의 3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쳐들어오는 적을 멀리서부터 막기 위해서는 활보다 좋은 무기가 없다. 광활한 평원의 나라인 중국에서는 창이라는 자루가 긴 무기가 제격이다. 가파른 산과 좁은 협곡에서 싸우는 데는 칼보다 간편한 것이 없다. 무술이라는 것도 환경과 긴밀하게 결부되어 발전한다. 문화는 환경을 매트릭스로 해서 건축되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에서 한국의 문제는 ‘일본 놈(쪽발이)’ 하면서 일본의 실체를 보지 않으려는 데에 있다. 이는 큰 물체나 무서운 것이 나타나면 눈을 감아버리고 피하는 것에 비할 수 있다. 눈을 감는다고 무서운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잠시 동안의 은폐이거나 위로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일본은 ‘조선 놈’(조센징)이라고 비하한다. 사무라이정신과 선비정신의 대결에서 확연하게 판정이 난 것이 구한말이다. 지배를 당한 민족이 지배를 한 민족을 두고 업신여기는 것은 누가 보아도 열등의 콤플렉스이다.

일본에 대한 콤플렉스는 열등의 콤플렉스와 우월의 콤플렉스가 함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고대 삼국이 일본을 지배한 경험은 멀고, 근대의 피지배의 경험은 가깝기 때문에 우월감보다는 열등감이 높다. 일본이 단순히 칼, 즉 물리적 무기로 한때 동아시아를 지배했고, 지금도 세계의 선진국에 들어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여기서 ‘문(文)의 나라’인 한국과 ‘무(武)의 나라’인 일본 사이에 근본적으로 엇갈리는 점이 있다. 무의 나라인 일본은 문을 병행하여 발전시키는데 문의 나라인 한국은 무를 놓쳐 버리거나 생략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무를 가진 나라는 그에 상응하는 문을 가지는데, 문을 숭상하는 나라는 그에 상응하는 무를 가지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 여기에 ‘발의 이치’가 숨어 있다. 발이 가면 머리는 저절로 따라간다. 머리는 떼어 놓고 발만 가는 경우는 없다. 그러나 머리가 가면 발이 반드시 가는 것은 아니다. 흔히 머리만의 논쟁을 탁상공론이라고 한다. 발은 실천의 의미가 있다. 실천(實踐)이라고 할 때 천(踐) 자에는 발 족(足) 자가 들어 있다. 발이 따라가지 않는 무예는 없다. 무사의 나라인 일본은 이 점을 집단무의식으로 잘 간파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발이 가지 않는 정복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발이 가지 않는 섬김은 있을 수 있다. 우리는 때로는 섬기는 대상의 실체도 제대로 모르고 섬기는 해프닝을 벌인 적도 있다. 망해 가는 명나라는 섬기고 흥해 가는 청나라를 업신여기다가 큰 낭패를 본 것이 병자호란이다.

한국인의 혈통은 북방족과 남방족이 뒤섞여 있는데, 대체로 7대 3 정도로 북방계가 많다. 그런데 핏줄은 북방족(北方族)인데 문화는 모화적(慕華的)이다. 이는 북방 유목민족에서 남하하여 남방 농업문화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오랑캐라고 부르는 것은 실은 우리 조상과 관련이 많은 북방족이다. 여기에 핏줄과 문화의 엇갈리는 교착(交錯)이 있다. 한국은 지리적인 면에서도 문화적으로도 한중일(韓中日)의 중간적 혹은 이중적 성격을 보인다. 대륙과 해양을 잇는, 지리적으로 반도라는 점도 이 이중성에 작용한다. 일본을 대할 때는 대륙이라는 자세를 취하다가 중국을 대하면 반도가 되어 버린다. 반쪽 대륙인 것이다. 그래서 중국에는 때로는 이유 없는 저자세를 취하고 일본에는 이유 없는 고자세를 취한다.

사무라이의 나라인 일본은 문무균형을 달성하는데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도리어 한국인은 문무균형을 달성한 시기를 군사독재라고 항상 매도하는 경향이 있다. 그만큼 무(武)를 싫어하고 평화를 추구하는 성향이 의식의 밑바닥에 깔려 있다. 한국은 관념주의·이상주의·사대주의를 특징으로 하고, 일본은 장인정신·실용주의·국가주의를 특징으로 한다. 이것은 흔히 한국문화와 일본문화를 비교할 때, 한국을 ‘효(孝)의 나라’, 일본을 ‘충(忠)의 나라’라고 하는 것과도 상통한다. 물론 효라는 것은 인륜의 요체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매우 도덕적인 나라이고 인간적인 나라이다. 임진왜란 때도 왜적이 침략했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하다가 자신들의 피붙이가 죽고 집과 전답이 없어지자 이에 의병이 궐기하고 사태가 점점 역전되었다는 것이다.

국가경영이라는 점에서 한국은 일본에 필적하지 못한다. 조선의 선비들은 전쟁을 하다가도 부모상을 당하면 전장을 떠나서 장례를 치르고 삼년상을 치렀다. 아직도 그 족벌주의와 연고주의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국가를 만들어가는 데는 문화적 전통으로 볼 때 한국이 일본에 비해 불리하다. 그렇다고 일본이 항상 안전하다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신도적(神道的) 천황주의와 군국주의는 나라를 온통 폐쇄상태로 몰아 일본제국의 패망을 불러왔던 것이다. 모든 나라와 문화는 내부 모순이 있고, 이는 몇몇 선지자가 알았다고 해도 고치지 못한다.

일본의 신도와 국가주의와 섬나라의 폐쇄성은 위험하지만 일본인의 장인정신은 배워야 한다. 한국의 선비정신에도 내부 모순이 있다.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는 사대주의가 유리하지만 그것을 토착화하는 데는 불리하다. 바로 사대주의에 선비정신의 사이비성이 내재해 있다. 붓의 위력은 칼보다 클 수도 있지만, 동시에 붓은 잘못 써도 생사를 걸지 않고 적당히 자신의 잘못을 넘어갈 수도 있고 회피할 수도 있다. 바로 붓의 이러한 점이 우리를 대충대충 넘어가게 하거나 사이비로 만들 수 있다.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명예는 누리면서 사회적 책임에는 소홀히 하는 ‘사이비 선비’가 우리 주변에 적지 않다. 사이비 선비를 흔히 ‘아전(衙前)적 선비’라고 한다.

무(武)를 무시하는 문화론자들은 문(文)이야말로 문화능력의 전부인 양 떠들어대는데 역사상 대량의 문화이동과 통합은 전쟁에서 이루어졌다. 정작 전쟁이야말로 문화발전의 원동력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전쟁은 유전인자만 뒤섞는 것이 아니고 문화도 뒤섞어버린다. 결국 신체의 발, 즉 하부구조가 움직여야 상부구조인 손이 움직이게 되는 셈이다. 손을 움직이는 것은 물론 머리이다. 하지만 발이 따라가지 않는 머리는 항상 관념론과 탁상공론에 빠지기 쉽다. 일본은 현재 동양문화의 정수라는 정수는 죄다 뽑아 일본의 것으로 만들어 놓고 있다. 특유의 장인(匠人)정신을 현대산업사회에 접목하는 한편 서구문화의 특징까지도 녹여 동서양문화의 장점을 일본문화능력으로 토착화하는 데 성공했다.

박정진 문화평론가
‘태양의 나라’라는 일본(日本) 국호와 ‘대화(大和)’라는 일본 혼은 일찍이 인류가 만들어낸 훌륭한 국가이데올로기 중의 하나에 속한다. 물론 우리도 ‘해 뜨는 나라’(朝鮮)라는 국호와 ‘불함’(밝) 정신, 화백(和白), 화쟁(和諍), 화평(和平) 정신이 있었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실천하는가이다. 한국이 문을 숭상하는 것은 좋으나 관념주의에 떨어져 문무균형을 이루는 데에 실패하면, 우리가 정의라고 생각했던 것 때문에 도리어 국가가 망하는 어려움에 처할 수도 있다. 만약 외래 이데올로기 때문에 국력이 쇠진한다면 이는 아무리 훌륭한 이데올로기라도 위선이다. 위선을 벗어나서 실용에 눈을 떠야 한다.

서울은 태평양시대의 중심이 되기에 적절한 위치이다. 중국과 일본이 서로 헤게모니의 줄다리기를 하고 신경전을 벌이면 저절로 서울이 삼국의 중심에 서기 쉽다. 그러나 입 벌리고 나무 아래에 서 있다고 감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중심으로서의 최소한의 역할과 역동성을 보이고 친화력을 보여야 중심이 되는 것이다. 중심은 실지로 없는 듯이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문화능력이 지금보다는 커야 한다. 비록 국토와 인구가 적더라도 문화적 주체성을 가지고 상대를 이해하고 교역과 소통의 양면에서 중간역할을 한다면 한국의 미래는 밝다.

삼성은 일본을 배워서 대표적으로 성공한 기업의 예이다. 지금은 반도체 분야에서 일본 전체가 함께 뭉쳐도 삼성을 이기지 못한다. 우리는 이미 좋은 예를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일본은 지금 세계 각국에서 로열티를 받는 나라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일본 경제를 움직이는 금융·산업부문보다 지식재산권 부문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일본은 세계로부터 받는 로열티 때문에 지금 표정관리에 바쁘다.

박정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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