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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 세종’ 로고 쓴 캘리그래퍼 강병인, 글자에 디자인 입힌다

입력 : 2008-01-21 10:47:11 수정 : 2008-01-21 10:4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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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대왕 세종’ 타이틀을 쓴 캘리그래퍼 강병인씨는 상업적인 목적의 캘리그래프 역시 희로애락 등 인간의 감성과 표정이 담긴 글자만이 결국 사랑받는다고 강조한다.
송원영 기자
KBS 대하드라마 ‘대왕 세종’ 홈페이지의 ‘드라마 탐구’란에는 ‘로고제작기’가 포함돼 있다. 드라마 제목을 쓴 캘리그래퍼 강병인(47)씨 인터뷰다.

KBS는 ‘대조영’과 ‘불멸의 이순신’ 등 그간 사극 제목을 주로 전문 서예가에게 맡겨왔다. ‘대왕 세종’의 경우 정통사극을 지향하지만 현대적 감각도 아우르겠다는 취지에서 이번에 처음으로 캘리그래퍼에게 맡긴 것. 캘리그래퍼(calligrapher)는 붓을 이용해 글꼴 작업을 하는 디자이너를 일컫는데, 예술성보다는 디자인 개념이 강조된다. 그 실험은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다. 드라마 시작 때 접하는 로고에서부터 위엄이 있되 권위적이지 않고, 너그럽되 결코 유약하지 않은 ‘한국사 최고의 군주’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었다는 시청자 의견이 많다. 강씨를 만나 ‘대왕 세종’ 로고 제작 과정과 캘리그래피의 세계에 대해 들어봤다.

◆“단 네 글자 완성 위해 파지만 300장”=강씨가 ‘대왕 세종’ 제작진으로부터 로고 제작 의뢰를 받은 것은 지난해 11월쯤이다.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최고의 위인’이라는 도식화된 이미지에서 탈피, 자신의 한계와 싸우고 성장해 마침내 조선 제일의 정치지도자로 우뚝 서게 된 세종의 면면을 재조명하겠다는 기획의도와 함께 드라마 시놉시스를 받았다. 그의 고민이 시작됐다. 세종은 조선을 넘어 한국 최고의 군주로 평가받지만 그가 재위한 시절은 모략과 암투, 전쟁이 상대적으로 드물었던 ‘태평성대’였다. 강한 필체보다는 부드러운 느낌이 강조돼야 했다.

또 한 가지 고민은 그 스스로 “형태적인 측면에서 굉장히 아름답고 다양한 글꼴로 표현할 수 있다”고 강조해 온 한글의 창제자가 세종이라는 점이었다. 한글 디자인화를 업으로 삼은 처지에서 누가 돼선 안 된다는 부담감이 작업 내내 그를 옥죄었다. 드라마 출연 배우가 캐릭터에 감정이입을 하듯이 세종의 형상화를 위해 감정이입에 들어갔다. 붓은 잡지도 않고 세종에 대한 구체적인 상을 떠올리는 데 한 달을 보냈다. 그래서 결론내린 이미지는 ‘문화를 꽃피우다’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 배려’였다. 인간을 위하고 자연, 우주를 아우르는 세종에 관한 느낌을 글씨에 담기 위해 한지 300여장을 희생했다. 부드럽게 이어지되 힘이 느껴지는 ‘문화군주’를 형상화했다고 스스로 만족한 글꼴이 지금의 ‘대왕 세종’이었다.

◆제품에 표정과 감성을 담는다=강씨는 ‘대왕 세종’뿐만 아니라 26일 첫방송되는 ‘엄마는 뿔났다’와 ‘내 남자의 여자’ ‘연인’ ‘남자가 사랑할 때’ 등 드라마 제목과 제품 브랜드(BI), 영화 포스터, 100여편의 책 제목을 쓴 독보적인 캘리그래퍼이다. 광고대행사에서 손글씨로 광고 카피나 제품 로고를 쓰다가 독립, 2002년 글꼴연구실 ‘술통’을 세우면서 잇따라 히트작을 냈다. ‘술술 통한다’는 의미에서 지은 ‘술통’을 재정적으로 도와준 주류 브랜드 ‘산사춘’과 ‘대포’ ‘참이슬’을 비롯해 책 ‘행복한 이기주의자’ ‘돌베개’ ‘김대중 잠언집 배움’, 코레일 광고카피, 뮤지컬 ‘대장금’ 등 300여편이 그의 손에서 나왔다.
◇강병인씨가 디자인한 상품명과 책 제목, 드라마 등 방송물들.

그는 “캘리그래피는 제품에 표정과 냄새, 감성을 입히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드라마나 제품의 정보나 특성, 이미지를 포착해 글씨로 구현해내는 작업이 캘리그래피이다. 손글씨로 글자의 아름다움이나 조형감, 개성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서예와 겹치기도 하지만, 주관보다는 제품의 콘셉트를 최우선시한다. 강씨는 “캘리그래피의 1차 목표는 제품의 가치를 효과적으로 드러내 신뢰도를 높이고 결국 구매로 이어지게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계적인 폰트와 예술적인 서예가 놓쳤던 신선함, 생명력, 인간적 매력을 효과적으로 담아내는 게 캘리그래피의 역할이라는 설명이다.

강씨는 “직업 특성상 하루 만에 결과물을 내놔야 할 때도 있는데 그것의 허술함은 소비자들이 먼저 알더라”면서 “캘리그래피 역시 희로애락 등 사람을 드러내는 글이기 때문에 지식이나 마음을 정화하는 단계가 전제될 때 비로소 그 가치가 발한다”고 말했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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