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리 돈이 많아도 불가능한, 누구나 꿈꾸는 멋진 삶을 누리는 이가 있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순식간에 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는 ‘점퍼’이다. 14일 개봉하는 영화 ‘점퍼’는 순간이동의 초능력을 가진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다.
점퍼는 새로운 스타일의 슈퍼히어로다. 스파이더맨, 배트맨, 슈퍼맨 등처럼 초인적 능력을 가진 슈퍼히어로는 세상에 홀로 존재하며 그 힘을 남을 위해 썼다. 하지만 점퍼는 순간이동의 능력으로 오로지 자신의 삶을 즐긴다. 사실, 순간이동은 단순히 발이 빠르고, 해외 곳곳을 마음대로 여행하는 것보다 더 많은 힘을 가져다준다. 은행 금고에 들어가 돈을 훔친 뒤 자신의 방으로 오면 순식간에 증거도 남기지 않고 부자가 될 수 있다. 점퍼의 순간이동 능력은 세상을 쉽고 편하고 부유하게 살 수 있게 해준다. 점퍼는 숭고한 목표나 이타주의가 배제된 새로운 유형의 신세대 슈퍼히어로인 것이다.
평범하고 숫기없는 소년 데이빗(헤이든 크리스텐슨)은 17세가 되던 해 우연히 자신의 능력을 발견한다. 이후 집을 떠나 홀로 지내면서 그는 원하는 만큼의 돈을 훔쳐내고, 세계 어느 곳이든 원하는 곳으로 점핑하며 화려한 코스모폴리탄적 삶을 누린다.
하지만 다른 슈퍼히어로와 달리 점퍼는 그 혼자만이 아니었다. 점퍼는 유전자 변형 인간으로 수세기에 걸쳐 비밀리에 존재해온 특별한 종족이었던 것. 또 점퍼가 세계에 재앙을 불러올 것이라고 믿는 비밀 조직 팔라딘 역시 ‘신만이 가진 능력을 가진’ 점퍼들을 제거해왔다. 예전 짝사랑했던 여자친구 밀리(레이첼 빈슨)와 함께 삶을 여유롭게 즐기던 데이빗은 팔라딘에게 추적당하기 시작하면서 위험에 처한다.
점퍼를 쫓는 팔라딘의 리더 롤랜드(사무엘 L. 잭슨)는 “책임지지 않는 삶은 안 된다”며 점퍼를 제거하는 데 소명의식을 지닌 인물이다. 이처럼 잔인한 악당이면서 동시에 무거운 책임감을 지닌 팔라딘과 자신의 욕망에 충실할 뿐인 점퍼의 대결은 기존의 뚜렷한 선악 구분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러한 점이 영화의 흥미로운 대목이기는 하지만, 줄거리와 주제의식은 지극히 가볍고 빈약하다. 물질주의적이고, 쾌락적이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심지어 고독감도 못 느끼는 주인공 캐릭터는 지나치게 가벼워 보인다.
세계 곳곳을 누비는 순간이동을 화면에 화려하게 펼쳐보이는 영화는 사상 최다 로케이션을 자랑한다. 눈 깜짝할 사이에 세계 곳곳을 점핑하는 점퍼를 따라 카메라는 뉴욕, 도쿄, 카이로, 로마, 사막 등의 공간을 몇 초 만에 이동한다. 특히, 일반에 공개되지 않는 로마의 콜로세움에서 직접 촬영해 눈길을 끈다.
김지희 기자 kimpossibl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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