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죽겠더라고요.”
베이징올림픽 야구 일본과의 준결승을 마치고 나온 이승엽(요미우리·사진)이 기자들 앞에서 처음 내뱉은 말이다. 결승에 오른 기쁨이 컸지만 내내 부진하다 홈런 한방으로 결승 진출에 기여했다는 안도의 표정도 역력했다.
베이징올림픽 야구 예선 내내 부진하던 이승엽이 결정적인 투런포를 쏘아올리며 한국대표팀의 결승행을 이끌었다.
“죽겠더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을 정도로 이승엽은 예선 성적이 좋지 않았다. 출전하지 않은 네덜란드전을 제외한 6경기에서 모두 4번 타자로 나와 22타수 3안타. 한국의 간판타자라고는 믿기 힘든 결과였다.
이승엽은 “동료들이 옆에서 ‘오늘은 잘 될거라’고 격려를 해주는데 정말로 미안했다”고 그간의 마음고생을 토로했다.
하지만 준결승 일본전 결과를 놓고 보면 이런 부진은 마치 클라이맥스를 위해 미리 짜놓은 일종의 장치처럼 보인다. 이승엽의 홈런은 그만큼 짜릿했고, 결정적인 것이었다.
양팀 마운드의 호투에 8회말 2-2 동점이었고 실마리를 풀지 못하면 경기는 연장전으로 갈 것으로 보였다. 이때 이승엽이 타석에 들어섰다. 전 타석까지 삼진 2개에 병살타 1개. 게다가 예선에서 보인 이승엽의 타격폼은 정상이 아니어서 기대는 있었지만 불안 또한 컸다. 이런 모든 상황을 뒤집어 놓는 한방이었다.
이후 연속 안타가 터지면서 한국은 8회에만 4점을 뽑아 6-2의 스코어를 만들며 승부를 결정지었다. 베이징올림픽에서 우승을 예상했던 일본의 심장에 비수를 꽂은 게 이승엽의 홈런이었다.
이승엽의 이런 ‘짜릿한 홈런의 역사’는 낯설지 않다.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뽑은 동점 3점포,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일본전에서 나온 역전 결승 투런포 등은 팬들을 감동으로 몰아넣었다.
이승엽은 “오늘 홈런은 내가 친 게 아닌 것 같다”며 “원래 목표가 우승이었다. 후배들이 워낙 잘해줘 내가 할 몫만 한다면 우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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