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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란 '최고 力士' 오르기까지…앳된 여중생 시련딛고 10년만에 '세계 번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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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08-18 10:04:49 수정 : 2008-08-18 10:0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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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권유로 역도 입문… 소녀장사로 두각
4년前 중국에 빼앗겼던 金 다시 中서 되찾아
혼신·괴력·성공·답례 한국 여자 역도의 간판 장미란이 16일 베이징항공항천대 체육관에서 열린 여자 역도 75㎏이상급 경기 용상 3차 시기에서 186㎏을 들어올리며 세계신기록을 작성하고 있다.  /베이징=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2004년 8월 아테네올림픽 역도 경기장. 장미란은 여자 역도 75㎏이상급에서 인상 130㎏, 용상 172.5㎏를 들어올려 합계 302.5㎏으로 경기를 마쳤다. 용상 3차 시기를 남겨두고 있던 중국 탕궁훙보다 7.5㎏이 많아 금메달이 유력한 상황. 그런데 탕궁훙은 3차 시기에서 2차 시기보다 무려 10㎏이 무거운 182.5㎏를 들어올렸다. 탕궁훙의 바벨이 정지하지 않아 실격임에도 중국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논란이 있었지만 어쨌든 장미란은 눈물을 머금어야 했다.

그리고 4년 후 중국 베이징. 장미란은 4년 전의 아쉬움을 털고 역도 최강국 중국의 심장에 태극기를 꽂았다. 15살 앳된 중학생이 처음 바벨을 잡은 뒤 10년이 걸려 명실공히 ‘세계 최강’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장미란이 역도를 시작한 것은 상지여중 3학년이던 1998년 10월 무렵이었다. 역도선수 출신인 아버지 장호철씨의 권유였다. 여자가 역도를 한다는 게 내키지 않았지만 아버지 손에 이끌린 ‘소녀장사’ 장미란의 재능은 금세 두각을 나타냈다. 170㎝의 키에 긴 허리, 튼튼한 다리는 역사(力士)로서의 타고난 신체조건이었다. 고교 시절인 1999년 6월 전국선수권대회에서 용상 102.5㎏, 합계 177.5㎏으로 동메달 2개를 따면서 장미란의 이름은 역도계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2004년 춘계여자대회에서 3관왕이 된 이후로 국내에서 한 차례도 정상을 내놓지 않았다.

국내를 평정한 뒤 출전했던 게 아테네올림픽이었다. 하지만 세계 정상의 자리는 쉽게 장미란의 등극을 허용하지 않았고, 은메달만 목에 걸고 귀국했다. 실패를 맛본 장미란은 이를 악물었다. 이듬해인 2005년 도하 세계선수권이 세계 정상을 차지한 첫 대회가 됐다. 2006년 도미니카에서 열린 같은 대회에서는 중이염을 앓고 체중이 2㎏나 빠진 악조건 속에서도 다시 1위를 했다. 2006년 5월 열린 한·중·일 국제초청역도대회에서는 합계 318㎏을 기록, 한국 여자 역도에서 처음으로 세계기록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같은 해 열린 종합대회 도하아시안게임에서는 다시 은메달에 머물렀다.

지난해 초에는 전 소속팀 원주시청과 결별하고 다니던 고려대를 자퇴하는 등 경기 외적인 요인으로 마음 고생이 심했다. 당시 장미란은 한달 여 동안 무적선수로 지내며 대표팀 훈련에도 참가하지 못했다. 그러나 시련은 장미란을 더욱 강하게 단련시켰고, 2007 세계선수권대회와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땀을 흘렸다. 결국 지난해 무솽솽을 누르고 세계선수권 3연패를 달성한 장미란은 올림픽에서 세계기록을 세우고 금메달을 따냄으로써 세계 최강의 여자 역사가 됐다.

베이징=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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