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집단 채용은 은행으로선 사상 초유의 인사실험이다. 인구 5000만명을 돌파한 대한민국 입장에선 진정한 ‘인구 강국’으로 향하는 출구이자 기회다. 이들을 어떻게 포용하고 우리 친구로 받아들이느냐에 저출산 고령화의 미래가 달려 있는 탓이다. 한국인 입양아로 프랑스 장관에 오른 플뢰르 펠르랭 이야기는 먼 나라 사례만은 아니다. 이들 이주민 행원은 펠르랭의 스토리를 자신의 이야기로 만들겠다는 꿈을 가슴에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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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서 온 박로이씨 |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유창한 말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그는 5개 국어를 술술 꿰는 ‘외국어 달인’이다. 그런 달인에게도 꽉 막힌 한국 사회는 절망 그 자체였다. 한국 땅을 밟으면서 행원이 되고 싶다는 소망은 일찌감치 접었다. 8년 동안 무역업체로, 학원 강사로 전전했다.
“희망의 벼랑 끝에서 만난 게 기업은행 공채였어요. 꿈의 날개를 다시 펼 수 있어 정말 기뻐요.”
재중동포 엄지유(32·여)씨는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지점에서 외국인 전용창구를 맡는다. 한국에 온 근로자나 산업연수생들에게 금융상품을 안내하고 상담해준다.
엄씨는 “돈이 출금된 건지 입금된 건지도 헷갈려 할 정도로 간단한 금융 업무조차 어려워하는 외국인이 많다”며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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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중동포 엄지유씨 |
이들 초보 이주민 행원은 지난달 첫 월급을 받고 조촐한 모임을 가졌다. 다들 들뜬 기분이었다. 우리가 잘하면 한국 사회의 인식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하자고 다짐도 했다.
박로이씨는 “예전보다 한국 사회가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이주노동자를 바라보는 편견은 여전하다”면서 “조금만 열린 마음을 갖는다면 한국을 더 좋은 나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유나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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