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그룹 해체…"처지 비관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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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망한 이재찬씨. 연합뉴스 |
숨진 이씨는 고 이병철 회장의 차남인 고 이창희 전 새한그룹 회장의 둘째 아들이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조카다.
18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가(家)에서 분가한 기업은 한솔, CJ, 새한, 신세계가 있으며 이 가운데 유일하게 새한그룹만이 명맥을 유지하지 못하고 재계에서 사라졌다.
삼성가에서 `비운의 황태자'로 불렸던 이창희 전 회장은 1966년 한비사건(사카린 밀수사건)으로 수감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부친의 신임을 받지 못하고 1973년 삼성을 떠나 새한미디어를 세웠다.
이창희 회장이 1991년 미국에서 혈액암으로 작고하자 장남 이재관씨가 그룹을 물려받으면서 삼성가의 제일합섬 지분을 넘겨받아 1995년 삼성그룹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왔다.
그러나 분리 이후 대대적인 기업확장에 나섰던 새한그룹은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해 경쟁에서 도태되고 만다.
한때 건실한 그룹의 주력사였던 ㈜새한(옛 제일합섬)은 1990년대 중반부터 1조원이 넘는 시설투자를 했다가 경기 침체로 금융비용이 눈덩이처럼 불게 되자 외환위기 이후인 1999년 일본 도레이사에 섬유ㆍ필름 부분을 헐값에 매각했다.
비디오 테이프로 한때 이름이 높았던 새한미디어도 대규모 시설투자에 나섰지만 테이프 산업의 사양화로 별다른 수익을 창출하지 못한 채 그룹의 부실을 키웠다.
12개 계열사로 재계 순위 20위 중반의 중견그룹 면모를 갖췄던 새한그룹은 결국 자금난을 이기지 못해 2000년 경영권이 채권단으로 넘어가게 된다.
이어 ㈜새한은 웅진그룹에 넘어가면서 웅진케미칼로 사명을 변경했고, 도레이세한도 최근 사명을 도레이첨단소재로 개명함에 따라 주요 기업에서 `새한'이라는 이름은 사라지게 됐다.
18일 사망한 이재찬씨는 1989년 미국 디트로이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새한미디어 부사장을 거쳐 1997년 새한미디어 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워크아웃 이후 그룹을 떠난 이후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에 종사했는지 확인되지 않았으며 최근에는 특정한 직업이 없는 상태로 지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5년 전부터 서울 용산구 이촌동의 한 아파트에서 월세로 입주해 살았으며 이웃과는 별다른 왕래가 없었다.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의 딸 선희씨와 결혼해 아들 두 명을 뒀으나 부인과는 상당 기간 별거 생활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정황상 자살로 보인다"며 "재벌가의 일원으로 살다가 생활에 여유가 없어진 상태가 오래 지속하다보니 삶을 비관했을 개연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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