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부·경찰 집계 큰 차이… 국회, 제도 손질 나서
경기도 수원에 사는 학부모 김모(45·여)씨는 요즘 속이 말이 아니다. 학교폭력 후유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병행하며 고입 준비를 하는 중3 아들 이모(16)군이 안쓰럽기만 하다. 이군은 지난해 같은 반 학생 두 명한테 학년 내내 100만원가량의 금품을 뜯기고 상습 폭행을 당했다. 이군뿐 아니라 그 반 상당수 학생이 문제의 두 학생한테 시달렸다고 한다.
지난해 10월 김씨 등 학부모들이 이 사실을 안 뒤 더욱 좌절하게 된 것은 학교와 교육 당국의 처사다. 김씨는 “강하게 항의하자 학교는 마지못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라는 걸 열어 사태 축소에만 급급했다”며 “교육청에다 억울함을 호소해도 외면당할 뿐이었다”고 토로했다. 사건은 결국 검찰로 넘어갔고, 가해 학생들은 최근 ‘소년원 입소 1개월, 보호관찰 2년’의 판결을 받았다.
학교폭력 예방과 사후 처리 등을 다루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많다. 학교 측에 유리한 위원회 구성과 까다로운 회의 개최 요건, 폐쇄적인 위원회 운영 등으로 설립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어서다. 이 탓에 교내 폭력이 발생하면 학교자치위가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기는커녕 축소나 은폐 등으로 사태를 악화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
30일 한나라당 배은희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교육과학기술부가 학교자치위 심의 건수를 토대로 집계한 학교폭력은 2007년 7667건에서 2008년 8813건으로 늘었다가 2009년(8월 기준) 2080건으로 줄었다. 교과부 수치로만 보면 학교폭력이 급감한 듯 보인다.
그러나 같은 기간 경찰에서 검거한 학교폭력 가해학생 검거 건수와 비교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경찰은 학교폭력과 관련해 2007년과 2008년 각각 2만1710명과 2만5301명을 붙잡은 데 이어 지난해에도 8월까지만 2만4825명을 검거했다. 각각 폭력 건수와 연루 학생 숫자로 다르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교육당국이 파악한 학교폭력 건수가 터무니없이 적다는 지적을 산다.
이는 각 학교에서 학생 폭력사건이 발생하면 학교자치위를 열어 즉각 사태 해결에 나서기보다 덮거나 축소하는 데 급급한 경향과 무관치 않다. 현행 학교자치위는 해당 학교 교감과 교사, 법조인, 의사, 경찰, 학부모대표 중 학교장이 임명하거나 위촉한 인사 5∼10명으로 구성된다. 위원 대부분이 학교 측 입장을 대변하는 인사로 채워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게다가 비공개인 회의는 학교장이나 재적위원 3분의 1 이상의 소집 요청이 있어야만 열리고 회의내용은 피해·가해 학생 가족조차 열람할 수 없도록 돼 있다. 학교 측이 함부로 폭력사건을 무마시키거나 사건의 실체를 왜곡할 여지가 적지 않은 셈이다.
경기 수원교육청의 한 장학사는 “학교폭력의 경우 사망자가 생기거나 언론에 보도될 경우 반드시 보고하도록 하고 있지만, 그 외에는 학교장이 보고하지 않으면 교육청으로서도 알 길이 없다”고 말했다.
이군 사례에서 보듯 피해 학생과 학부모는 학교와 교육당국을 신뢰하지 못하고 경찰이나 검찰로 달려가는 경우가 많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정선미 사무국장은 “학교자치위가 폭력 예방과 사후 관리에 집중하지 않고 형식적으로 운영되면서 학부모는 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국회에서는 학교자치위가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손질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국회 교과위 배은희 의원이 최근 발의한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자치위원의 과반을 학부모 대표들로 구성하고, 학교폭력 피해학생과 보호자의 요청이나 발생 보고·신고가 있을 경우 자치위를 소집하도록 했다. 또 피해·가해학생과 해당 가족들은 원할 경우 자치위 심의 내용을 열람할 수 있도록 해 자치위의 사건 은폐와 왜곡을 방지하게 했다.
이강은 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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