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이면서 되레 원폭피해 등만 강조 이중적
독도·교과서 왜곡 문제 등 슬기롭게 대처해야
경인년 새해는 경술국치 100년이 되는 해이다. 민족 자긍심에 깊은 생채기를 남기고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불행한 역사는 아직도 우리에게 부끄러운 꼬리표를 남기고 있다. 일본은 여전히 침략의 과거를 미화하고 사죄를 거부함으로써 진정한 화해와 번영의 미래를 향한 동행을 외면하고 있다. 올바른 역사 정립을 통해 100년의 갈등과 반목을 접고 화해와 협력의 원년으로 나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라종일 우석대학교 총장과 김현구 고려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가 지난 28일 대담을 갖고 새로운 100년을 열어갈 해법은 무엇인지 모색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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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종일 우석대 총장 ◇김현구 고려대 교수 |
▲라종일 총장=근현대사 정리는 일본에 일종의 딜레마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현대사를 스스로 소화할 용기나 능력이 부족하지 않나 싶어요. 가령 태평양전쟁의 종식을 어떻게 정의할지 일본 내에 일치된 의견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종전’이라고 부르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패전’이라고 해요. ‘해방’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죠. 일본이 ‘부국강병’을 기치로 내건 메이지유신을 거치면서 서양 제국주의를 그대로 따라 왔는데, 그 결과 자국민들도 엄청난 고통과 희생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일본 국민들도 끊임없이 전쟁터에 끌려가서 고통을 받았고, 도쿄대공습이나 원자폭탄의 피해도 봤거든요. 이런 희생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스스로가 소화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근현대사 과정에서 뭔가가 잘못됐다고 느끼지만, 정확히 뭐가 언제부터 잘못된 것인지에 대해 스스로가 혼란에 빠져 있는 상태가 아닌가 싶어요. 물론 역사를 바로잡지 않으면 진정한 화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일본이 마음을 먹고 그렇게 해야 하는데, 일본 스스로가 척결할 수 있는 능력이 복잡하고 제한된 상황이 아닌가 합니다.
▲김현구 교수=‘역사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과거사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미래에 어떻게 행동할지를 예측할 수 있다는 뜻이죠.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일본이 한국 침략을 사과하지 않는 것은, 같은 상황에서 또다시 그런 행동을 취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사과 문제는 그래서 중요합니다. 그런데 현재 일본을 이끌어가는 주류 세력들의 면면을 보면, 일본이 먼저 사과하기는 어려울 거라고 봅니다. 군국주의 일본을 이끌었던 주요 인사들의 후손이 지금 현 일본의 정치·사회·경제의 중심에 서 있거든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는 A급 전범이었던 기시 노부스케(岸信介)의 외손자이고,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의 할아버지 고이즈미 마타지로(小泉又次郞)는 군국주의 일본의 체신대신이었죠. 동서 냉전이 시작된 1950년대 이후 미국이 아시아 공산화를 막는다는 명목으로 반공산주의 성향이 강했던 전범들을 석방시켜준 결과입니다. 결국 현재 일본의 주류 세력들이 과거 한국 침략을 반성하고 사과하는 것은, 현재의 자기를 부정하는 꼴이 되는 겁니다. 상황이 궁지에 몰렸을 때 간혹 사과를 하긴 하지만, 그들에게서 진정성을 기대하기는 어렵죠. 게다가 일제 식민지가 한국의 근대화를 도와줬다거나, 러시아가 한국을 침략해 공산화되는 것을 막아줬기에 오늘날 한국의 번영이 가능했다고 주장하는 부류들도 있습니다.
▲라 총장=일본 리더십의 문제도 지적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에서 시바 료타로의 소설 ‘언덕 위의 구름’이 엄청나게 팔리지 않았습니까. 군국주의 일본을 정당화하는 내용을 통해 전쟁에서의 희생이 의미가 있었다면서 일본인들에게 위안을 줬기 때문입니다. 일본인들은 원폭 피해의 씨앗을 누가 뿌렸는지는 생각지 않고, 자기들이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가해자의 피해의식’을 갖고 있거든요. 여기에는 국민에게 가르쳐야 할 걸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일본 리더십의 문제가 있습니다. 현재 일본의 젊은 세대들은 태평양전쟁에서 누가 승리했는지조차 분간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아요.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후쇼샤의 역사교과서 왜곡이라든지 종군 위안부 문제 등 과거 청산에 필요한 작업들이 시원하게 해결될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이번에 근로정신대 99엔 보상이라든가 교과서 해설서의 이중적 태도가 파문을 일으켰는데요.
▲김 교수=역사교과서 왜곡 문제는 양국 현안 가운데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매스컴에서 잘못 다루는 측면이 있어요. 독일은 주변국가 침략에 대해 사과하는데, 일본은 왜 왜곡하느냐는 식의 논조가 많습니다. 하지만 나치에 저항했던 이들이 2차대전 후에 정권을 장악한 독일과 전쟁 주도 세력이 전후에도 집권한 일본은 잘 분간해서 소개할 필요가 있습니다. 독일은 자기들의 정당성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라도 먼저 사과하고 교과서를 고쳐야 했지만, 일본 입장에서 사과는 자기를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거든요. 일제시대가 한국 근대화에 도움이 됐다는 주장도 마찬가지 맥락입니다. 일본에 사과를 안 한다고, 또 역사교과서를 왜곡하지 말라고 몰아붙이는 것보다는 그들이 사과하지 않는 이유를 우리가 정확히 파악하고 슬기롭게 대처할 필요가 있습니다. 반면 일본이 한일강제병합 당시 역사적 근거로 내세웠던 ‘임나일본부설’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에 국내에서 충분히 연구해서 납득할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고 봅니다. 위안부 문제는 김대중 정부 시절 정부 차원에서 더 이상 보상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한 것을 일본인들은 위안부 문제가 일단락됐다고 인식하고 있어요. 일본의 전체적인 의식 수준이 높아져서 인권의 문제로 접근하지 않는 한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되긴 어려워 보입니다.
▲라 총장=제가 그래도 희망적으로 보는 건 두 나라 시민운동단체에서 공동으로 활동하는 영역이 있다는 겁니다. 한중관계와는 다르게 정부와 독립적인 영역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들이 상당히 긍정적인 역할을 해요. 후쇼샤 교과서 문제는 일본 현지에서 채용률이 큰 것은 아닌데, 우리 쪽 대응이 잘못되면 문제를 이슈화시켜서 오히려 저쪽에 도움이 되는 꼴이 될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우리 정부나 국민들이 직접 대응하는 것보다 일본 내 양식 있는 사람들의 활동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영향을 미치는 사례가 있습니다. 종군 위안부 문제도 그렇고요. 그런 면이 상당히 희망적입니다. 한일강제병합이 한국 근대화에 도움이 됐다고 국내 일부 인사들이 제기하던데, 저는 기본적으로 잘못된 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철도를 놓고 공장을 세운다고 근대화가 아니거든요. 근대화는 자기가 주인이 돼서 자기 스스로 해야 하는 것이라고 볼 때 오히려 우리가 스스로 근대화할 기회를 박탈하고 근대화 역량의 발전을 가로막은 측면이 큽니다.
―독도 문제는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양국 국민의 정서가 첨예하게 부딪히는 문제인데요.
▲라 총장=시마네현이라는 일본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됐는데, 일본에선 거의 인지도가 없었어요. 그런데 우리가 너무 심하게 대응하니까 일본 내의 인지도도 높아졌고, 자민당에선 정책으로 채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후 시마네현에서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어 표기)의 날’ 행사를 점점 더 크게 벌이고, 정부 보조도 많이 받고 있어요. 독도 문제를 일본 전국의 이슈로 만든 데 우리나라가 일종의 기여를 한 셈입니다.
그렇다고 국내에서 자제하라고 할 수는 없지요. 일본 내에선 “독도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면서 왜 일개 현에서 하는 주장에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느냐”고 묻기도 해요.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독도 문제는 국가이익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윤리의 문제라고요. 20세기 초반에 우리가 너희의 침략에 무력하게 당했는데, 지금 독도 문제에서 또다시 당하면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한다고요. 근본적으로 일본이 도덕적으로 우리나라에 영토문제를 걸고 나오면 안 되죠. 일본은 우리뿐 아니라 중국, 러시아 등 이 지역 주변국가들과 영토 문제를 갖고 있는데, 자기들이 과거를 직시한다면 그렇게 나올 수 없죠.
―라 총장님 말씀처럼 일본 내의 양식 있는 분들도 계시지만, 우파 지식인들이 정도를 넘어선 주장을 하는 일은 더욱 많은 것 같습니다. 특히 시바 료타로의 소설을 공영방송인 NHK에서 드라마로 만들어 방영하는 등 여론을 몰아가는 경향이 있는데요.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닐까 우려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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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중구 예장동 2번지, 잊혀진 경술국치의 현장이다. 1910년 8월22일 이곳 통감관저에서 체결된 한일 강제병합조약으로 치욕의 역사가 시작됐다. 라종일 우석대 총장(왼쪽)과 김현구 고려대 교수가 지금은 흔적조차 없는 역사의 현장을 거닐며 ‘한일관계 과거 100년과 미래 100년’을 화두로 대화하고 있다. |
▲김 교수=한국경제사를 전공했던 가지무라 히데키(梶村秀樹)는 1970년대에 이미 독도가 한국의 것이라고 썼습니다. 누가 먼저 인지하고, 이용하고, 실질적으로 통치했는가를 역사적인 측면에서 연구해서 결론을 내렸죠.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일본의 주류들은 전전(戰前) 일본을 주도했던 이들의 맥을 이어받은 사람들이거든요. 문제는 그 사람들이 세계 보편적인 사고에 이르지 못하는 데 있다고 봅니다. 자기들이 과거사를 합리화하려는 태도를 견지하는 한 어떤 논리든 만들어 낼 겁니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총리 시대가 들어서면서 한일관계에도 전향적인 변화가 나타나지 않을까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국에 대해 친근한 감정을 표현하는 일도 잦고, 총리 부인도 ‘친한파’로 알려졌습니다. 하토야마 총리의 우애 정책이 동아시아 평화와 화해에 받침돌이 될 수 있을까요.
▲라 총장=그러기를 희망합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역사인식을 새롭게 할 수 있는 리더십 없이는 단지 친하게 지내자든지, 한류를 좋게 바라보는 것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양국 간의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없어지고 희박해지리라는 생각으로는 절대 해결될 수 없습니다. 일본인들이 자기 과거를 직시하는 데 고통이 따를 것이라는 점은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어느 나라건 돌아보기 고통스러운 과거가 있습니다. 그걸 바로 볼 수 있는 용기가 근본이 돼야겠죠. 어쨌건 이 지역에서 일본이 가장 선진적인 나라인데도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는 데엔 근본적으로 역사인식이 혼란스럽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독일이 만약 과거를 직시하고 척결하는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과거에 얽매여 주변국가와 다투고 있었겠죠. 동북아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서건 세계 속에서 일본이 국력에 맞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건 일단은 일본이 우물 안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선은 자기 과거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을 때 동북아시아를, 세계를 제대로 바라보는 시야가 열릴 것입니다.
▲김 교수=오늘날 세계에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는 게 유럽연합(EU)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일찍이 근대화를 이룩했고, 사상적으로도 세계를 선도하는 유럽 국가들이 EU를 통해 협력과 통합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건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동아시아도 통합의 방향으로 갈 것입니다. 한·중·일 3국 간의 무역 교역량을 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 나라는 이미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위치에 와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하토야마 총리의 동아시아공동체론은 올바르고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거기에도 양면성이 있어요. 동아시아공동체론은 왜곡되면 대동아공영권처럼 패권주의적인 방향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일본이 어떤 방향으로 갈지 그 위험성에 대해서도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군요.
―이명박 대통령이 일왕을 초청한 바 있습니다. 일부에선 일왕이 방한하면 한일강제병합을 무효라고 선언해야 한다고 요구하기도 합니다. 일왕 방한이 한일합방 100년을 맞아 새로운 한일관계를 여는 서막이 될 수 있을까요.
▲라 총장=일왕 초청은 오래된 겁니다. 전에도 계속했고 이 대통령이 되풀이한 것이죠. 현실적으로는 일왕 방한이 가까운 시일 내에 실현되기 어려운 일이라고 전망합니다. 양쪽 모두 준비가 덜 돼 있습니다. 중국은 그런 행사를 해야 할 국내적인 필요가 있었고. 또 그런 상황을 통제할 능력을 중국정부가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가 않죠. 그 전에 해결해야 할 일도 많습니다. 그래도 일왕 방한은 계속 추진해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김 교수=한일강제병합 무효화를 주장한다는 건 병합 자체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하는 건데, 그렇다면 논리적인 모순이라는 생각이 먼저 드네요. 일왕 초청은 친근함의 표현 정도로 보입니다. 한일 양국 간에 우호적인 분위기 조성과 협력의 진전이라는 측면에선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러나 일본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한 일왕이 다녀간다고 해서 일본 사회가 크게 바뀌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일관계를 논할 때 우리 내부의 문제를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가령 일제 잔재를 정신적으로 청산하지 못하고 있고, 최근 친일인명사전 발간을 두고도 논란이 일었습니다.
▲김 교수=우리가 친일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다면 후세에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일제 식민시대가 재발하면 후손들에게 뭐라고 가르치겠습니까. 한편으로는 일본에 침략의 과거를 사과하라고 요구하면서, 일제에 협력한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도 모순이죠. 친일 청산이 잘 안 되는 이유는 1945년 이후 대한민국이 정부를 수립하는 데 주체적 역할을 했고, 한국 사회의 주류를 이뤄 온 것이 그들이기 때문이죠. 친일 청산은 처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리를 통해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자는 것입니다. 현재로선 굉장히 어려운 길이고, 우리 역시 보편적인 사고의 진전이 있을 때 가능할 겁니다.
▲라 총장=프랑스는 나치 독일에 항복하고 협력했던 역사가 있는데, 소수에 불과했던 레지스탕스를 대다수 국민이 그랬던 것처럼 부각시켰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이 서서히 밝혀졌거든요. 그러면서 나치 부역의 역사에 대해 일면 ‘고통’을 느끼면서, 일면으로는 부역자들에 대해 ‘연민’을 느끼는 정서가 있습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도 맹렬하게 토론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국도 당시 친일 부역자들에 대해서 정황을 참작할 만한 사유들이 있을 겁니다. 특히 강제병합 이후 일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판단하기가 힘들지 않았을까 싶어요. 하지만 그 역시 우리의 고통스러운 과거이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희 부친과 조부는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지만 “먹고살 게 있는 집안은 협력을 안 해도 큰 상관이 없다. 그런 집안에서 창씨개명을 안 한 건 자랑할 일이 아니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반대로 창씨개명을 하지 않으면 당장 살아가기가 힘든 이들도 있었죠. 우리는 프랑스보다 연민과 고통의 양이 한결 더 커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본에서 ‘한류’ 열풍이 아직도 이어지는데, 한일관계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을 것 같습니다.
▲라 총장=배용준씨의 인기라는 건 저희로서는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죠(웃음). ‘용겔지수’라는 말이 있어요. 배용준씨 때문에 쓰는 가계지출을 뜻합니다. 가계 재정권을 가진 중년 주부들이 배용준씨 때문에 소비하는 규모가 그만큼 커졌다는 것이죠. 아내가 배용준씨를 사모하는 걸 남편이 이해하지 못해서 부부관계가 틀어지는 ‘욘사마 이혼’이라는 말도 있어요. 그렇게 새로운 용어들이 나올 정도입니다. “나는 ‘겨울 소나타’를 보고 세상에 태어난 보람을 느꼈다”는 사람도 있고, 돈을 몰래 대사관에 갖다 주면서 “한국 교육에 써달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한류가 한국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데는 상당한 역할을 했습니다.
▲김 교수=동아시아도 통합과 협력의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아직 일본을 이끌고 있는 주류들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지만, 한류가 양국 간 협력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진전시키는 데 일정 정도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사회=김규영, 정리=유태영 기자, 사진=지차수 선임기자 anarchyn@segye.com
프로필
라종일 우석대 총장
▲1940년 서울 출생 ▲1963년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1972년 영국 캠브리지대 트리니티 칼리지 정치학박사 ▲1972년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2000년 국가정보원장 외교·안보 특보 ▲2001년 주영국 대사 ▲2003년 대통령비서실 국가안보보좌관 ▲2004년 주일본 대사 ▲2007년∼(현) 우석대 총장
김현구 고려대 교수
▲1944년 충남 금산 출생 ▲1965년 고려대 사학과 졸업 ▲1981년 일본 와세다대학 대학원 문학박사 ▲1998년 고려대 사범대학장 ▲1998년 일본 사학회 회장 ▲2002년 한일 역사공동연구위원 ▲2007년 동아시아 문화교류연구소 이사 ▲2009년 동북아역사재단 이사 ▲1985년∼(현)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
라종일 우석대 총장
▲1940년 서울 출생 ▲1963년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1972년 영국 캠브리지대 트리니티 칼리지 정치학박사 ▲1972년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2000년 국가정보원장 외교·안보 특보 ▲2001년 주영국 대사 ▲2003년 대통령비서실 국가안보보좌관 ▲2004년 주일본 대사 ▲2007년∼(현) 우석대 총장
김현구 고려대 교수
▲1944년 충남 금산 출생 ▲1965년 고려대 사학과 졸업 ▲1981년 일본 와세다대학 대학원 문학박사 ▲1998년 고려대 사범대학장 ▲1998년 일본 사학회 회장 ▲2002년 한일 역사공동연구위원 ▲2007년 동아시아 문화교류연구소 이사 ▲2009년 동북아역사재단 이사 ▲1985년∼(현)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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