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헌법재판소 결정문을 보진 못 했지만, 신청인인 제 입장에선 기다리던 반가운 결정입니다.”
의료법의 태아성감별 금지 조항에 대한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 소식을 접한 정재웅(36·사법시험 41회·사진) 변호사의 소감이다. 현재 법무법인 화우에 재직 중인 그는 지난 2004년 12월 “태아성감별을 금지한 의료법 조항은 부모의 알 권리와 행복추구권을 침해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한 장본인이다. 선고 이튿날인 1일 정 변호사와 이메일 인터뷰를 가졌다.
정 변호사가 헌법소원을 낸 시점은 아내의 출산이 임박했을 때였다. 출산 예정일은 다가오는데 아기 성별을 몰라 옷가지조차 준비할 수 없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워서였다. 헌재에 낸 청구서에서 그는 “임신 사실을 안 뒤 내심 ‘아들일까 딸일까’란 궁금증이 일었지만, 그 누구보다 앞장서 법을 지켜야 할 변호사로서 차마 의사에게 물어볼 수 없었다”고 적었다.
헌법소원 제기로부터 4년 가까이 지난 뒤에야 겨우 결정이 내려졌다. 당연히 출산은 진작에 했을 것이다. 헌재의 문을 두드릴 만큼 아기 성별이 궁금했던 그는 딸을 낳았을까, 아니면 아들을 낳았을까.
“헌재에 헌법소원을 낸 것은 2004년 12월 말쯤으로 기억합니다. 그로부터 한 달쯤 뒤인 2월 초 처가 아들을 낳았습니다. 올해 2월 세 살이 된 아이는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이번 헌재 결정은 태아의 생명권과 부모의 행복추구권 사이에서 후자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풀이된다. 정 변호사는 종전 태아의 생명권 보호에 일방적으로 치우쳤던 의료법 조항이 위헌으로 분명히 확인된 점에 큰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제가 헌법소원을 신청한 것은, 당해 의료법 조항이 임신 기간 등을 고려하지 않고 가족으로 하여금 임신 기간 내내 태아의 성별을 전혀 알 수 없도록 규정하는 것은 태아의 생명권만을 보호하려는 것으로 태아 가족의 알 권리, 행복추구권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향후 태아의 생명권과 가족의 기본권을 균형있게 보호하는 대체 입법을 마련하는 것은 입법부의 몫입니다.”
‘태아 생명권과 가족 기본권의 균형’이란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정 변호사가 임신 직후부터 태아 성별을 알려주는 행위까지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헌법소원을 낼 당시에도 그는 임신 4개월 이후 성별 고지를 허용한 프랑스와 같은 제도의 도입을 주장했다. 자칫 여아 낙태를 부채질할 수 있는 남아선호 사상이 아직 완전히 근절된 것은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저는 우리 사회에 남아선호 사상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남아선호 사상에 기한 무분별한 낙태를 막고자 하는 당해 의료법 조항의 입법 목적은 예나 지금이나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임신 기간 내내 태아 성별을 알려주지 못 하도록 하는 것뿐만 아니라 임신 초기 단계부터 아무런 제한 없이 태아의 성별을 알려주도록 방치하는 것 역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헌재는 이번에 위헌 대신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며 의료법의 해당 조항을 오는 2009년 12월31일까지 개정하라고 국회에 촉구했다. 논란이 되는 것은 그때까지 현행 태아성감별 금지 조항의 효력을 인정한 점이다. 곧 없어지기로 예정된 법을 과연 누가 제대로 지킬 것인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정 변호사의 견해는 어떨까.
“법률 공백으로 인한 부작용 방지를 위한 부득이한 조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어떤 법률 조항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해 위헌이라면 위헌 결정과 동시에 효력이 상실돼야 합니다. ‘잠정적’이란 단서가 붙긴 했어도 위헌인 조항이 계속 적용되는 것은 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입법부로서도 입법 공백을 메우기 위해 최대한 신속히 대체입법을 마련할 테니까요.”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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