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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기획]소방관 83% '마음의 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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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03-26 13:18:36 수정 : 2008-03-26 13: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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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외상후 스트레스 경험… 대부분 방치

악몽·환청·불면증·죄책감 등에 시달려
◇서울 은평소방서에 설치된 2001년 홍제동 화재사고 순직 소방관 6명의 추모 동판.
“지하도에서 뿜어내는 시커먼 연기와 시민들의 절규로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도착 즉시 지하로 뛰어내려갔다. 여기저기 정신을 잃고 쓰러진 사람들과 객차에서 불타고 있는 시신들, 그리고 매캐한 연기로 가득했다. 그런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쓰러진 승객을 겨우 부축해 호흡기를 나눠 쓰며 나오는데 갑자기 숨이 막혀 의식을 잃었다.”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구조활동 중 유독가스를 마시고 쓰러졌던 대구서부소방서 변재관 소방교는 아직도 악몽 속을 헤맨다. 유독가스에 손상된 몸은 어느 정도 회복됐지만 문득문득 그날의 끔찍한 광경과 죽음의 공포가 떠올라 자신도 모르게 몸서리친다. 화상 자국처럼 잘 지워지지 않는 ‘정신적 흉터’를 갖고 사는 셈이다.

많은 소방관들이 변 소방관처럼 업무 도중 입은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를 숙명처럼 안고 산다. 업무의 특성상 어느 직종보다 트라우마 발병 가능성이 높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선 소방관 전문 치료기관을 따로 두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정부도 지자체도 예산부족을 내세워 이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고, 아직 실태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취재팀이 소방관 3028명을 상대로 트라우마 실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소방관의 트라우마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소방관 5명 중 4명(83%)은 크고 작은 트라우마를 경험했고, 특히 5명 중 1명(23%)은 자주 경험하고 있었다. 화상이나 호흡기 질환 등 육체적 외상(61%)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주관식 설문에선 더욱 생생한 실상이 드러났다. 소방관들은 자신이 앓고 있는 정신적 상처의 구체적 내용과 함께 ▲악몽·환청 ▲죄책감·불안 ▲우울증·불면증 ▲공격성 등 다양한 후유증을 호소했다.

사고현장에서 본 훼손된 시신의 모습과 특유의 냄새 등 잔상에 시달리는 소방관이 적지 않았다. 한 소방관은 “지하철 레일에 깔려 심하게 훼손된 시신을 직접 수습했는데 역겨운 느낌에 한동안 많이 괴로웠다”, 또 다른 소방관은 “이 설문지를 작성하는 중에도 갑자기 불에 훼손된 시신 냄새가 나는 듯하다”고 밝혔다.

구조하던 시민이 죽었을 때도 큰 허탈감과 자책감에 시달렸다. 1996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때 투입된 한 소방대원은 “무너진 건물더미에 끼어 있던 두 사람을 구하려고 1시간 이상 작업했지만 결국 둘 다 숨졌다. 지금도 살려 달라는 목소리가 귓가에 윙윙거린다”고 말했다.

동료의 죽음도 큰 고통으로 남는다. 소방관 6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은 2001년 서울 홍제동 참사 때 현장진압에 나섰던 한 소방관은 “같이 출동한 동료가 순직한 모습을 보고서도 2시간이나 잔불 정리를 했는데 이후 불면증과 삶에 대한 회의에 시달렸다”고 적었다.

이상규 한림대 의대 교수는 “트라우마는 만성화될 경우 매우 위험하므로 장기적으로 꾸준한 약물치료와 상담을 받아야 한다”면서 “특히 이번 조사 결과처럼 발생 위험이 매우 높은 소방직종은 정부 차원에서 조기 발견 및 치료 시스템을 만들어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특별기획취재팀=채희창·김동진·
김태훈·양원보·송원영 기자
tams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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