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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호칼럼] 지식의 가치 실용성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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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11-25 22:19:57 수정 : 2012-11-25 22: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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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세·성공의 도구로 지식 가치 왜곡
知行일치 현자의 가르침 되새겨야
우리나라에서는 대학 졸업생의 취업률이 대학평가의 주요 지표로 사용되고 있다. 대학평가가 대학의 명성과 지위는 물론이고 정부의 각종 재정 지원과도 직결되는 상황이다 보니 일부 대학은 졸업생의 취업률을 터무니없이 부풀리기까지 한다. 취업률을 중시하는 대학평가 제도는 지식의 실용적 가치를 전제로 하고 있다. 즉, 대학이 사회에서 써먹을 수 있는 지식을 가르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식의 가장 중요한 존재 이유는 그 실용성에만 있는 것인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식의 실용성이 강조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전통사회에서의 지식은 대중에게는 접근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운 것이었고, 심지어 서양에서조차 실생활에 필요한 오늘날의 공학이나 의학 등은 장인의 기술 정도로 치부됐다.

이렇게 볼 때 ‘지적 실용주의’는 상당히 근대적이고 합리적인 발상이다. 사회로부터 유리된 지식은 신비롭기는 하나 거의 해독 불가능한 경전과 다를 바 없고 이런 지식을 탐구하는 사람은 속세를 철저하게 등진 구도자가 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대학이 시대나 사회의 요구와는 동떨어진 지식을 가르침으로써 실업자를 양산한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근대적이고 합리적인 실용주의와는 분명 거리가 있어 보인다. 탁월한 두뇌의 소유자가 법대나 의대 등으로 몰리는 현상이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그 도가 지나치다. 취업 잘 되고 돈벌이 잘 되는 전공분야로 우수한 학생이 지나치게 편중되고 있다.

경제학이나 경영학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무조건 전공하겠다고 한다. 결국 나이 어린 학생의 입장에서 지식이나 학문의 가치는 해당 분야 전공자의 취업 현황, 그리고 그들의 보수에 따라 결정되는 셈이다. 이러다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소위 서열화가 대학 간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대학 내에서도 발생한다. 서로 다른 전공 간의 순위 매김이 학생의 선호도에 따라 이루어진다. 급기야 몇 해 전에는 학생 사이에서 인기가 낮은 특정 학문 분야의 위기설이 대두되기에 이르렀다. 이쯤 되면 실용주의가 아니라 상업주의다. 물론 지식도 경우에 따라 상업행위의 대상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지식의 가치가 상업적 효용성에 의해서만 결정돼서는 안 된다.

지식은 상품도 서비스도 아니다. 지식의 가장 근본적인 요소는 인간과 사물을 보는 관점이다. 예를 들어 문화라는 현상의 사회학적 설명은 심리학적 분석과 다를 수 있다.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중 더 잘 팔리는 쪽이 타당한 관점은 아니다. 양자 모두 문화를 이해하는 데 대등하게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고매하고 온화한 인품의 소유자였다. 그럼에도 그는 유독 소피스트를 혐오하고 경멸했다. 그 이유는 소피스트가 지식을 출세와 성공의 도구로만 간주하고 이를 상품처럼 값을 매겨 젊은이에게 ‘판매’했기 때문이다. 앎과 실천의 일치를 강조했고 지식의 도덕성을 중시했던 현자의 가르침을 이 시점에서 되새겨 볼 만하다.

영국의 한 역사가는 저 웅대했던 로마제국의 멸망을 한탄하며 제국이 쇠락하게 된 한 원인으로 ‘천박한 실용주의’를 손꼽는다. 로마의 젊은 인재가 오로지 사회적 지위와 물질적 풍요로움에만 현혹돼 수사학이나 웅변술 같은 실용적 지식만을 추구했고, 이에 고대 그리스의 문화유산에 내포된 위대한 혼과 정신, 그리고 가치 등이 상실됨으로써 제국이 몰락의 길을 걷게 됐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 역사가의 외침이 우리를 향한 경고라고 생각하니 왠지 섬뜩한 느낌이 든다.

중앙대 교수·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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