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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호칼럼] 미국서 만난 진짜 훌륭한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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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07-30 01:54:36 수정 : 2012-07-30 01:5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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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영원한 은사’와 감격적 재회
최선일 때 떠나는 그의 모습에 감동

10년 전 필자가 미국 유타 주의 브리검영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을 때 내 아들의 담임이었던 교사를 얼마 전 다시 만났다. 어떤 의미에서 매우 감격스럽고 의미심장한 재회였다. 당시 아들에게 미국은 전혀 낯선 땅이었고 영어는 독해불능의 외국어였다. 학급에서 유일한 외국인이었던 아이를 1년 동안 지극한 정성으로 지도해 준 그 교사는 이후 아들의 마음속에 ‘영원한 은사’로 자리 잡았다. 그 교사는 모든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매사에 열정적이었다. ‘유타 주에 갈 기회가 생기면 은사를 꼭 뵙고 싶다’던 아들의 염원이 이루어진 셈이다.

그런데 그가 얼마 전 은퇴를 했다는 것이다. 본인이 원했다면 몇 해는 더 교단에 있을 수 있었는데 우리 식으로 하자면 ‘명퇴’를 한 셈이다. 그렇다고 우리처럼 명퇴에 대한 반대급부가 있는 것도 아니다. 주변의 많은 학부모, 학생, 동료교사가 만류했다고 한다. 내가 생각해도 그렇게 훌륭한 교사의 명퇴는 미국 교육계의 손실이란 생각이 들면서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명퇴의 동기를 묻는 나의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은 감동적이었다. 그의 차분한 토로를 정리하면 이렇다.

“나는 교직을 천직으로 알고 아이를 열심히 가르치고 돌봤다. 아이에 대한 사랑과 정열에는 아직도 변함이 없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고 경륜이 쌓여가면서 스스로 인정하기 싫은 변화가 느껴졌다. 그 중 몇 가지만 고백하겠다. 초등학교 교사는 특히 인내심이 많아야 한다. 그런데 천성적으로 인내심이 강했던 내가 언제부턴가 성급해지고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참을성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졌다. 난 원래 남의 얘기를 잘 듣는 편이었다. 동료교사, 학부모, 심지어 학생의 의견이나 건의를 항상 진지하게 경청하곤 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내가 옳다는 생각이 점점 굳어지고 있더라. 난 언제나 학생이 하교하고 난 후에 교실에 남아 다음날의 활동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왔다. 그 시간이야말로 내게 가장 소중하고 효율적인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점차 줄어가고 있는 것을 느꼈다. 나도 교단에 더 남아있고 싶었다. 그리고 아직은 그럴 만한 에너지와 열의도 있다. 고맙게도 아이들은 나더러 전혀 늙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냉철히 판단해 보면, 내가 최선(best)의 상태일 때 떠나는 것이 맞다. 나는 감수성이 극도로 예민한 초등학교 학생에게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어쩌면 그들은 오래도록 나의 이미지를 기억할지도 모른다. 그들이 간직한 아름다운 내 이미지가 퇴색하기 전에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말로 긴 여운을 남겼다. ‘코니쉬 선생님, 사랑해요’라는 아이들의 외침이 가장 그리울 것이라고. 

우리 가족은 한없이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육십을 바라보는 필자의 나이에 걸맞지 않게 눈시울을 적시는 애잔함도 밀려왔다. 10년 전 아들은 ‘우리 선생님’ 자랑을 많이 했다. 그때는 그 교사가 아들을 잘 배려해줘서 그러려니 했다. 물론 내심 매우 고마웠다. 그런데 이번 만남에서 받은 느낌은 단순한 고마움 이상이었다. ‘이분이 이렇게 훌륭하신 선생님이었구나’하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다음 순간 오싹한 소름이 끼쳤다. 나는 학생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치고 있을까. 과연 지금 나는 최선의 상태인가. 내 두뇌 속에서 오랫동안 고착화되고 정형화돼버린 지식만을 전달하는 것은 아닐까. 매시간의 수업에 대해 얼마나 열심히 준비하고 진지하게 고민하는가. 불현듯 뇌리를 스치는 이런 질문은 곧 무거운 자성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분을 다시 만나길 참 잘했다고.

이성호 중앙대 교수·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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