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차별 없애야 교육인플레 해소 지난 총선에서 격돌했던 여야가 공통으로 내건 공약 중 대학 등록금에 관한 부분이 시선을 끈다. 새 국회가 개원되면 여야 의원들은 서민의 대변자를 자처하면서 마치 선심이나 쓰듯이 ‘반값’ 혹은 ‘무료’ 등록금의 입법화를 추진할 듯하다. 대학을 무슨 백화점 세일품목이나 구호품쯤으로 여기는 모양새다. 교육의 본질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이들과는 무관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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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호 중앙대 교수·교육학 |
우리나라에서 대학은 더 이상 ‘고등교육’을 위한 기관이 아니며 ‘대졸 실업률’이라는 용어는 특별한 의미가 없다. 게다가 양적 팽창으로 인한 대학교육의 질적 저하는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설상가상으로 대학교육의 비용도 만만치 않다. 2011년의 경우 웬만한 사립대의 한 해 등록금은 800만원을 웃돌며, 대학등록금으로 지출한 돈은 15조원이 넘는다.
이러한 고비용 교육 인플레의 해결을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고등학교의 진로교육 기능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직업교육과 취업지도가 강화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산업체와의 연계교육이나 실습교육의 내실화가 절실하다. 스위스의 경우처럼, 직업고등학교를 전일제가 아닌 파트타임제로 운영함으로써 수업과 실습을 병행하는 방식을 고려해 볼 만하다.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마이스터고교의 확대 및 보편화도 하나의 대안이다. 아울러, 일반계 고등학교도 미국과 같이 취업반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되면 많은 학생이 굳이 대학에 진학해서 고가의 등록금과 장시간을 투자하지 않고서도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게 된다.
고등학교에서의 직업교육을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고교교육을 대학진학과 취업으로 이원화함으로써 사회계층을 고착화시킨다는 것이다. 만일 진학과 취업의 구분이 영구적인 것이라면 이 비판은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취업을 선택한 고교 졸업생에게도 대학의 문호가 개방되는 체제 하에서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본다.
고비용 교육 인플레를 억제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관건은 학력차별의 척결이다. 과거 대학이 희소가치를 누리던 시절에는 어느 정도의 학력차별이 용인됐지만 지금은 우리 사회에서 추방돼야 할 병적 현상이다. 이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없이는 고등학교에서의 직업교육은 공염불에 불과할 수 있다.
사실 우리 공직사회에서는 꽤 오래전에 학력조항이 철폐됐다. 결국 학력차별이란 공식적인 제도나 명문화된 규정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관행인 셈이다. 이는 하루아침에 고쳐지지 않는다. 사회 전체의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중요하다. 고졸 취업자가 자신의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기량을 발휘함으로써 사회에 귀감이 된다면 그 또한 학력차별 추방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고졸 사원들이 우리나라 굴지의 기업체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이제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일단 아무 대학이나 가고 보자’는 식의 생각을 접고 교육의 진정한 가치와 실용성을 중시하는 합리적인 결정을 내려 달라고. 끝으로, 정치인들이 아무 생각 없이 외쳐대는 ‘반값’ 혹은 ‘무상’ 교육은 고질적 교육 인플레를 통제할 수 없는 지경으로 악화시켜 대학교육의 붕괴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성호 중앙대 교수·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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