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지신의 지혜로 전통 이어가야

훈육의 기능을 살피기에 앞서 교육의 목적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한다. 교육은 학생들을 지적·정서적·신체적으로 건전하게 발달시킴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사회에 성공적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활동이다. 학생들이 사회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는 우선 공동체 생활에 필요한 규칙과 질서를 준수하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 이들이 성년이 되기 전에 이러한 태도를 습득하지 못한다면 그 사회는 곧 붕괴되고 말 것이다. 규칙과 질서를 지킨다는 것은 경우에 따라 개인의 욕구나 자유를 제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훈육이다. 물론 훈육에는 외적인 통제가 수반된다. 그러나 이는 수단일 뿐 목적이 아니다. 훈육이 지니는 궁극적인 교육목적은 외적 규제를 통해 자기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기름으로써 다른 사람과 조화롭게 어울려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훈육은 학생의 건전한 발달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좋은 교육과 좋은 환경만이 건강한 발달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학생 스스로 발달해야 한다. 즉, 자기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계획을 수립해 이를 실천에 옮기는 것이 건강한 발달에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생의 자기관리능력이 필수적이며, 이러한 관리능력은 올바른 생활습관의 형성으로부터 길러진다. 훈육은 바로 올바른 생활습관의 형성을 위해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낳은 세계적인 바이올린 연주자 정경화는 언젠가 언론과의 대담을 통해 훌륭한 연주자가 갖추어야 할 조건을 재능, 지능, 훈육 등의 3가지로 들고 그중 훈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건강한 습관 형성을 통한 자기관리능력을 지칭했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훈육은 교육의 중요한 부분이다. 훈육을 통해 학생들은 자기관리와 사회적응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훈육은 학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부모도 가정에서 자녀를 훈육한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점은 교육을 훈육과 등식화하는 사고는 금물이라는 것이다. 교육에는 훈육 이외에도 많은 의미가 내포돼 있음을 알아야 한다. 훈육은 체벌과 동일시돼서는 안 된다. 체벌은 부정적인 형태의 훈육이다. 더욱이 훈육의 궁극적인 목적이 획일성을 위한 억압이나 제재가 돼서도 안 된다. 훈육이 이렇게 해석될 때 학생들은 자율성을 상실하고 외적인 통제에 의해서만 움직이게 된다.
과거의 제도나 전통은 구태의연한 폐습처럼 배척되고 오로지 새것만이 환영받는 풍조는 어찌 보면 인류역사를 통해 늘 존재해 왔다. 특히 디지털 시대의 도래가 이를 한층 가속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침체된 사회를 변화시키고 나아가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데 기여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그런데 과거를 배척하고 부정하기에 앞서 선행돼야 할 것이 있다. 바로 과거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분석이다. 비판의 대상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건전하고 예리한 비판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를 제대로 파악하고 그를 토대로 현명한 취사선택을 하는 것이야말로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지혜다.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유서 깊은 교육적 전통인 훈육을 재음미하고 그중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는 자세가 필요한 때다.
중앙대 교수·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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