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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리뷰] 과학기술과 규제의 함수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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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3-02 20:23:30 수정 : 2009-03-02 20: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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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케이블TV 기득권 보호탓

IPTV서비스 제도화 늦춰져

신기술의 자유로운 사업화 위해

기술중립적 규제정책 도입해야
권영선 KAIST 교수·경제학
과학기술과 규제제도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어떤 학자는 과학기술이 규제제도를 결정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학자는 규제제도가 과학기술의 형태나 발전과정에 간여한다고 한다. 예를 들면, 방송사업자와 신문사업자는 경쟁사업자임에도 다른 형태의 정부 규제를 받는다. 신문사업자는 정부에 등록하면 신문을 발행할 수 있으나 방송사업자는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처럼 방송사업자가 신문사업자에 비해 강한 규제를 받게 된 것은 근본적으로 방송에 사용되는 주파수의 제약에서 기인한다. 주파수 제약은 주파수 이용기술의 한계에서 기인한 만큼 방송사업자 허가제도는 기술적 한계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는 반대로 기존 규제제도가 새로운 기술을 이용한 산업의 태동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 발생한 대표적인 사례가 IPTV서비스이다. IPTV서비스는 약간의 기술적 차이를 제외하고는 기존 케이블TV서비스와 같은 유료 다채널서비스일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기술적으로 IPTV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은 이미 수년 전에 갖추어졌으나 기존 방송업계의 견제로 인한 제도화의 지연으로 작년 후반에야 가까스로 제공될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같은 유료 다채널서비스임에 불구하고 케이블TV와 다른 법령에 의해 다른 규제를 받게 되었다. 기존 사회제도가 신기술의 사업화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한 대표적 사례인 것이다.

이처럼 과학기술과 규제제도의 관계에 대해 두 가지 상충된 견해가 존재하는 것 같으나, 과학기술의 생애주기적 관점에서 보면 양자는 보완관계에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새로운 과학기술이 탄생하면 그 기술을 이용한 신제품이나 신규 서비스가 발명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산업이 탄생된다. 무선통신기술이 개발된 이후 방송산업이 탄생한 것과 1990년대 이동전화산업이 꽃을 피운 것이 좋은 예다.

새로운 산업이 성장단계로 진입하면서 규모의 경제효과로 인해 산업구조가 독과점적 구조로 변화하면 정부는 소비자 후생 보호를 위한 규제제도를 만들게 된다. 그러나 기존산업을 규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는 기존산업의 독과점적 위치를 위협하는 혁신적 신기술이 등장할 때 오히려 기존산업을 보호하는 도구로서 사용되곤 한다. 기존산업에 위협이 되는 신기술은 해당 산업을 규제하는 규제기관에도 위협이 되기 때문에, 기존산업을 중심으로 형성된 생태계는 조직적으로 신기술을 이용한 경쟁제품이나 서비스의 진입을 지연하거나 저지하는 유인을 갖기 마련이다. 어느 나라보다 우수한 통신망을 갖추었다는 우리나라에서 IPTV서비스가 다른 국가에 비해 늦게 제공되기 시작한 주요 원인의 하나를 바로 이와 같은 기존 방송산업 생태계의 기득권 보호 노력에서 찾을 수 있다.

자유로운 과학기술의 발전과 진흥을 위해 정부는 기술중립적인 규제정책을 사용해야 한다. 기존제도가 기존기술과 산업구조에 기반을 두고 있는 반면 새로운 기술은 제도적 기반 없이 개발된다. 전문가가 아닌 정부나 국회는 새로운 기술을 잘 이해하기 어렵고 기존기술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려고 하기에 기존기술과 산업의 입장에서 신기술을 기존 제도권으로 흡수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기술을 이용한 경쟁서비스가 가급적 활성화되지 못하도록 기득권층은 제도를 왜곡시킨다. 결국 기술중립적인 제도가 아니고 기존기술 편향적인 제도가 흔히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기술중립적 규제정책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신기술 등장 시 원칙적으로 정부의 인허가 없이 자유로이 사업화를 하도록 해야 한다. 새로운 기술을 이용한 서비스를 규제할 마땅한 법령이 없다면 먼저 자유롭게 사업을 하도록 허용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사후에 보완해 나가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 즉, 금지된 것 이외에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일반적 허용 예외적 금지정책’이 적용되는 법령을 늘려 나가야 한다.

권영선 KAIST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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