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닷컴] 충무로 이야기꾼 유하 감독이 이번에는 '이야기'대신 '영상'을 택했다. 그 스스로도 말했듯이 이때문에 영화는 풍성하고 파격적인 영상을 지속적으로 제공한다.
영화 '쌍화점'은 조인성과 주진모의 동성애 연기때문에 제작때부터 관심을 모았다. 그리고 공개된 영상은 상상 그 이상의 것을 보여줬다. 영화가 12월 30일에 개봉되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내년부터 대다수의 일반관객들이 본다는 점을 감안하면 2009년 영화의 시작을 '파격'으로 '쌍화점'이 출발신호를 알린 셈이다.
작자 미상의 고려가요 '쌍화점'을 기반으로 등장인물들의 사랑과 애증, 집착 등이 끈적하게 버무려져 스크린 한가득 채우는 영화 '쌍화점'은 고려가 원나라의 속국으로 전락한 14세기 무렵 원의 억압 속에서 고려를 지키려는 왕 (주진모)은 여자를 품을 수 없기에 외모가 출중한 사대부 집안의 자제들로 구성된 친위부대 건룡위의 수장 홍림 (조인선)과 사랑을 나눈다. 문제의 발단은 원이 후사를 빌미로 왕을 바꾸려는 계략을 세우면서부터다. 왕은 궁여지책으로 홍림과 왕후 (송지효)를 대리 합궁할 것을 명하지만, 이로인해 세 사람에게 돌이킬 수 없는 사태로 몰아가면서 평안해보이는 운명이 혼란 속으로 빠지고 만다.
감독이 '이야기'대신 '영상'을 선택하면서 내용은 그리 복잡하지 않지만, '영상'으로 영화를 끌고가기에는 힘이 달렸다. 분명 조인성과 주진모의 정사장면을 비롯한 볼꺼리 가득한 영상은 근래에 '파격'이라 불리웠던 영화 '미인도'와 견줄만하긴 했지만, 인물들의 감정선이 급격하게 변하는 모습이나 그 변화의 이야기 축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함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영화에서 감정을 뽑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행위 자체보다는 감정을 뽑아내는게 더 어려웠다"는 조인성이나 "노출이 저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저에게 중요한 것은 감정의 흐름 위에서 어떻게 연기를 해서 어떻게 표현을 해야할까이다"라는 송지효의 말처럼 파격의 영상 위에 감정을 올리는 것이 쉽지는 않은 일이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은 따라가는 정도의 수준에서 그쳐버렸다.
그러나 무게감있는 연기로 강력한 카리스마와 사랑을 하는 나약한 한 인간을 동시에 보여준 왕 주진모의 발견은 뜻밖의 수확이라 할 수 있다. 영화 초반 관심은 조인성에게 몰렸지만, 영화가 끝난 후의 눈길은 현대극의 느낌을 풍기면서 무엇인가 부족한 조인성과 달리 완벽한 이중적 성격의 왕을 보여준 주진모가 차지했다.
영화 '쌍화점'은 12월 30일 개봉된다.
유명준 기자 neocross@segye.com 팀블로그 http://comm.blog.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