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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나의 필름 포커스] 라벤더의 연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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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07-11 02:41:30 수정 : 2008-07-11 02:4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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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한 명상시… 인간과 자연, 음악의 황홀한 조화
사랑이 신비한 것은 삶의 모든 규칙과 관습을 넘어서 가능하다는 데 있다. 그래서 사랑은 국경만 넘는 것이 아니라 나이 차도 넘어선다. ‘라벤더의 연인들’은 노년의 영국 여성과 폴란드 청년 사이에 벌어지는 사랑의 신비를 황홀한 바이올린 선율에 실어 탐색하는 우아한 작품이다. 마치 사랑에 대한 명상시를 감상하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라디오 시대인 1930년대, 유려한 자연풍광이 삶을 지배하는 작은 바닷가 마을에 두 자매가 노년의 일상을 보내고 있다. 라디오를 들으며 거실에서 독서와 뜨개질을 하고 정원을 가꾸는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던 중 한 청년이 느닷없이 끼어든다. 지난 밤 폭풍우에 배가 난파돼 해변으로 떠밀려 온 안드레아(다니엘 브륄)를 구조한 우슬라(주디 덴치)와 자넷(매기 스미스) 자매의 일상은 급변한다.

일상을 지배하던 자매의 안정과 고요함은 청년에 대한 설렘과 흥분을 감춘 기묘한 공기를 집안에 살포한다. 발목을 다친 안드레아를 간호하면서 두 자매는 조금씩 그를 알아가고 더욱 그에게 매혹된다. 안드레아가 폴란드 사람인걸 어렵사리 알아낸 우슬라는 온갖 가재도구에 영어 단어를 붙여놓고 영어를 가르치며 그와 소통을 시도한다.

동생 우슬라의 감정을 눈치챈 자넷은 언니답게 그 감정을 다독거리지만 사랑의 감정은 기침처럼 숨길 수 없는 법. 실은 그런 자넷이나 툴툴거리는 하녀 도카스(미리엄 마골리스)도 각자의 방식대로 안드레아에 대한 설렘을 경험한다. 안드레아가 회복되면서 결국 예정된 이별이 다가오지만 사랑의 여운은 노년의 삶에 활력과 윤기를 준 것은 축복이다. 아마도 그런 사랑이 가능한 것은 오랜 세월을 살아낸 노년의 지혜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무엇보다 마음을 끄는 것은 연기 달인 배우들의 세밀한 감정선을 외시화하는 표정과 자태들이다. ‘007시리즈’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보스역을 해낸 주디 덴치의 이미지 변신은 놀랍다. 그는 서리가 내린 머리를 곱게 빗은 소녀 같은 애잔한 이미지 속에서 배어나오는 사랑의 떨림과 흥분을 제대로 연기했다. ‘해리 포터 시리즈’로 잘 알려진 매기 스미스도 그에 걸맞게 유장한 연기를 펼쳐낸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흔히 두 남자배우의 캐릭터와 연기로 이루어진 버디영화의 또 다른 형태, 즉 노장 여배우의 버디영화를 완성해 낸다. 미세한 감성의 떨림까지 잡아내는 나이젤 헤스의 음악적 해석과 조슈아 벨의 바이올린 연주가 영화음악의 깊은 경지를 보여준다. 특히 마지막에 나오는 ‘바이올린 오케스트라 판타지’ 장면은 자연과 인간, 음악이 조화를 이루는 황홀함을 선사한다.

동국대 교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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